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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이 시대를 가장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헌사




그 해 여름 힘든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뭔지 모를 불안감이 밤낮으로 엄습하고 있었다.

눈을 뜬 하루는 24시간의 의미를 찾는 고행의 날이었고 실수와 실패로 점철된 과거의 기억이 끊임없이 희망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래서 내일은 불안했고 그 어떤 희망의 근거를 찾기 어려웠다.

왜 나는 인생이 이렇게 불행의 연속일까. 내겐 왜 행운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이것이 운명인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불편할 때 우연히 정동에 있는 서울 미술관에 갔었다.

그때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를 보았다.

풀 고갱의 작품

139*374.7cm에 달하는 대작.  한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는 압도적인 그림 앞에서 나는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는 저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일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삶의 기쁨과 고통을 표현한 작품을 보며 고갱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침묵만 이어지고 있다.



위화는 소설 ‘인생’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1960년 중국 저장성 항저우 태생의 위화


그렇다. 우리의 삶 자체가 인생인지 모른다. 우연과 무의미의 결정체인 인간이 그 어떤 특별한 의미를 탐색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주어진 삶을 묵묵히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삶. 무엇으로 꾸미지도 않고 숨기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진짜 인생이지 않을까?

그 어떤 종교적인 명상과 고행, 방황과 방랑 속에서 삶의 깨달음을 얻기보다 설상가상으로 이어지는 삶의 불행 속에서도 꿋꿋이 머리를 들고 힘겨운 삶을 살아내는 것이 정답일지 모른다.



이것은 소설 '인생'의 주인공 ‘푸구이’의 전 생애를 통해 알 수 있다.

부잣집 도련님의 태어난 푸구이. 어렸을 때부터 구제불능의 망나니로 자라난 그였지만 다행히 심성만은 착하고 성실한 인물이었다. 비록 주색잡기로 가산을 탕진하고 비단옷 대신 거친 옷을 입고 호미를 쥔 채 온종일 밭일을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푸구이. 그러나 갑자기 국민당군에 끌려가 죽음의 전장 속에서 지옥 같은 삶아 살아내고 이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오지만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아들 유칭과 아내의 죽음, 그리고 딸과 사위, 손자의 연이은 죽음.  결국 남은 것은 늙은 소와 푸구이뿐.
장예모 감독의 인생 작품,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


광풍과 같았던 중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푸구이 삶은 불행의 연속이고 저주받은 인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구이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말한다.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나는 말이세. 바로 운명이었던 것 거라네” 


전재산을 탕진하고 모든 가족들이 자신의 곁을 떠났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평범하게 살았다고 자평한다.

운명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평범하지 않은 삶마저 평범하다고 말하는 그의 회한.

자신보다 불행하게 살다 간 많은 중국 민중들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며 평범한 삶이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낙천적인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삶은 주어진 운명에 따라 삶을 살아내는 것이 인생인지 모른다.


이 소설의 원제는 ‘살아간다는 것’이다. 액자식 구성으로 전개되는 서사는 안타까움과 슬픔의 연속이지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는 푸구이 가족의 일상도 독자들에게 기쁨을 준다.

어쩜 위화는 '웃음과 눈물, 환희와 고통이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작가'인지 모른다.
위화는 억지로 슬픔을 자아내지 않고 독자의 깊은 내면에서 슬픔을 끌어올리는 문장의 힘이 있다. 그 어떤 미사여구 없이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온 중국 민중의 극한 고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며 장예모 감독이 연출하여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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