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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아사쿠사와 스카이 트리

- 고전과 현대의 오묘한 공존과 조화

오전 7시 눈을 떴다. 타지에서의 낯섦. 




순간적으로 어제의 장소인지 확인한다. 오늘의 나는 현해탄을 건너 일본의 심장 동경에 와 있다. 깨끗하고 맑은 향기가 나는 시트와 베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방안이다. 

왼손을 뻗어 커튼을 젖히자 낮은 지붕의 주택가와 멀리 고층 빌딩의 창문들이 보인다. 간 밤에 먹고 마신 찌그러진 맥주캔은 침대 밑에 널 부르져 있다. 주섬 주섬 세면실로 가 따듯한 물로 몸을 씻었다. 

작고 아담한 욕실 크기. 딱 혼자만의 배설과 씻김이 어우리는 초미니 욕실이다.

단지 불편함이 있다면 방바닥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 문을 열고 나가기가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아침 식사를 위해 2층 식당으로 갔다. 이미 부지런한 사람들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 중이다. 두 사람 혹은 홀로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다. 아침 식단은 우유, 오렌지, 죽, 빵, 주먹밥. 감자 샐러드 등이다. 모든 것을 정결하고 거추장스러운 음식은 없다. 먹고 비우기 알맞은 만큼 접시에 담고 창가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한국에서 홀로, 일본에서도 홀로 어디를 간들 혼자라는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어제와 닮은 흐린 하늘이다. 비는 역시 보슬 보슬비이다.

오늘은 일본 여행 일정 중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날이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은 둘째 날이 중요하다. 아소쿠사 신사에 깊숙이 들어간 뒤 600미터 고공의 스카이트리 전망대를 수직으로 오른 후, 넓고도 넓은 우에노 공원에서 산책을 한 후 명품 거리 긴자를 주마간산으로 둘러본 후 시부야와 신주쿠에서 일본인들의 면상과 패션 스타일을 훔쳐본 후 롯폰기 빌딩에서 모리츠 미술관으로 스며들어야 하는 일정이다.


오늘도 많은 전철을 환승해야 할 것이며 발바닥을 택시 바퀴로 삼아 돌아다녀야 할 판이다.

호텔에서 아사쿠사까지는 지근거리이기 때문에 한 번의 환승으로 이동할 수 있다.

전철 안은 출근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인들의 모습을 그다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 전철 노선이 시내 중심가로 이어지지 않고 약간 시 외곽으로 뻗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철역에서 내려 환승역을 찾는데 묘하게도 다시 역 밖으로 나와 이동해야 하는 구조였다.

내가 환승위치를 잘못 찾았는지는 몰라도 약간 불편한 구조였다. 그러나 나는 우연히 길가에서 아주 오래된 너무나 오래된 고서점가를 발견했다. 

옛날 책들이 빼곡히 낡은 종이를 누렇게 드러내며 가로 혹은 세로로 누워 있었고 건물 자체는 책과 함께 오랜 세월을 보낸 듯 낡았지만 깊은 문화의 향기가 풍겼다.

아주 오래된 색 바랜 목간판은  고서점의 빛나는 훈장이었다. 나는 다시 환승을 하여 아사쿠사역에 도착을 했다.


아사쿠사 센소사 호조문


전철 밖으로 나오자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여기저기 아사쿠사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보였다.

나를 처음 맞이한 것은 고양이 세 마리였다. 작은 가게 문 앞에서 세 녀석은 아침잠이 덜 깬 모양으로 하품을 하며 엎어져 있었다. 일본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참으로 까마귀와 고양이가 흔한 나라이다. 

고양이 골목을 조금 빠져나오자 아사쿠사 정문이 보였다. 그리고 무게 670kg, 높이 4m인 카미나리몬이 보였다. 아주 큰 붉은색 전등에 뇌문이라는 검은색의 한자어가 보였다. 

고개를 들어 밑면을 바라보면 용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다. 그리고 황금색으로 박아 넣은 금룡산이라는 목간판도 보였다. 이른 아침이라 한산한 편이다. 센소지까지 이어져 있는 좌우 양측은 일본 전통 가옥식 

아사쿠사 정문과 밑 부분에 용이 새겨진 카미나리몬


상점들이 약 300미터까지 이어져 있다. 본당이 있는 호조문까지 이어져 있는 나카미 세도리이다. 

아직 장사 개시 전이다. 아마 센소지를 한 바퀴 돌고 나오면 일제히 가게 문을 열고 갖가지 기념품과 먹거리들이 풍작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센소지 대본당 앞으로 나아가자 대향로 속에서 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청동 향로 조코로이다. 향을 피워 각자의 소원을 빌고 향의 연기를 쐬면 건강이 좋다고 한다.

나는 100엔짜리 향을 사고 정성껏 불을 붙인 후 두 손으로 마주 잡고 성심성의껏 소망을 빌었다.

그리고 본당 앞에서 동전을 던지며 재차 내 간절한 소망을 소원했다.


일본의 절은 우리와 달리 단청이 없다.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색채가 완전히 배제된 단순함 그 자체이다. 기둥과 벽면, 문 그리고 지붕을 갖춘 단순구조이다. 붉은색 기둥과 드문드문 흰 벽이 자리 잡고 아주 큰 창이 달린 모자를 쓴 듯 지붕은 지상으로 내려앉는 팔자형의 우주선 같다.


센소지 주변은 작은 법당들이 아담한 정원 속에 자리 잡고 일본 여인들의 기도하는 모습도 잠시 엿볼 수 있다. 이리저리 경내를 둘러보다가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약간 물고기 비린내 냄새가 풍겨 진원지를 찾아가니 아기자

센소지 대본당, 단청없이 붉은 색 기둥이 특이하다


기한 일본식 정원이 소담하게 펼쳐져 있었다. 엷은 분홍색과 검은 점을 잔등에 달고 지느러미를 잉어 떼들이 물속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다시 나카미 세도리 쪽으로 나오자 불과 몇 분전까지 한산하던 거리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고 작고 아담한 가게에서는 일본 전통식 먹거리와 소품들을 팔고 있었다. 그중 나는 카미나리몬에 적혀있던 '뇌문'이라는 글자를 품고 있는 고양이 인형을 하나 구입했다. 나카미 세도리 주변으로 일본 전통 가옥들이 즐비해 있는데 비록 질서 정연한 현대식 건물은 아니지만 옛 모습 그대로 투박한 목재들이 들어가고 나오는 울퉁불퉁한 모습이 일본 자체를 느낄 수 있었다.

센소사의 안팎의 다양한 풍경들,  대도시와 조화를 이룬 평화로운 사찰


역시 골목 구석구석은 누군가 진공청소기로 빨아 버린 듯 담배꽁초 하나, 휴지 하나 없는 깔끔 그 자체의 거리였다. 나는 사실 일본을 대표하는 유명 관광지이기 때문에 그러하겠지 라는 생각을 했지만 2박 3일 내내 동경 어느 거리, 후미진 주택가의 골목길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일본인들은 거리에 휴지 자체를 버리지 않는 습성을 갖춘 듯했다. 쓰레기를 줍기보다 아예 버리지 않는 습관이 그들에게는 하나의 생활양식이며 시민의 상식으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다시 카미나리몬 쪽으로 나오자 나카미세 거리에는 인력거꾼들이 외국인 관광객들과 흥정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개 젊은 친구들로 구성된 그들은 그야말로 허벅지가 꿀벅지 마냥 탄탄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두 번째 방문지인 도쿄 스카이 트리가 흐린 하늘에서 승천하듯 몸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림짐작으로 지근거리에 있는 듯 판단하여 도보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내 건널목을 건너자 도쿄를 파고드는 바다 길과 오다이바로 이동할 수 있는 수상 택시가 보였다. 그리고  맥주잔과 거품 모양을 한 아사히 맥주 본사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비는 여전히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고 나는 천천히 수미다 강이 흐르는 아즈마바시 다리를 건너 스카이 트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붉은색 난간과 가로등. 물결을 타고 넘어온 강바람이 이방인의 귀밑머리를 파고든다. 맞은편 낯선 남자는 비닐 투명 우산을 들고 걸어온다. 

나카미세 거리에서 바라 본 아사히 그리고 스카이 트리 건축물


수미 강 주변을 따라 높고 낮은 건물들이 일렬종대로 늘어서 있고 벼랑같이 우뚝 선 22미터의 아사히 건물은 호박색 창문들이 수직으로 치솟아 맨 꼭대기의 하얀 거품 모양을 내고 있다.


그 옆 슈퍼 드라이 홀 옥상에 프랑스 작가 필립 스파크 작품으로 '황금 불꽃'이라는 의미로 작품을 설치했지만 어린아이의 '누런 똥'모양으로 엎어져 있다. 그 아래 아사히 맥주를 파는 레스토랑을 돌아 스카이 트리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사쿠사에서 눈대중으로 봤을 때 무척 가까운 거리에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예상외로 먼 거리였다. 그러나 골목골목을 유영하듯 빠져나가다 보면 일본인들의 살림살이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역시 휴지 하나, 담배꽁초 하나 볼 수 없다. 소박한 자전거와 이름 모를 들꽃과 같은 화분이 문 앞에 놓여 있다. 단독주택이라고 하나 우리 식의 마당을 가진 형태가 아니라 땅콩 주택식 구조이다. 매우 작고 아담하다.

이와 달리 스카이 트리는 지축을 박차고 하늘 높이 뻗은 우람한 남근 철의 모습이었다. 고개를 완전히 꺾어도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끝 모를 아득함이었다.

수미다 강변으로 아사히  건물과 우람한 남근철의 스카이트리


634미터, 도쿄타워의 두배이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인공 건축물이다. 고개를 45도 이상 꺾어도 그 끝을 볼 수가 없어 아예 바닥에 드러누운 채 바라봐야 한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람객들이 붐비고 있었다. 티켓 판매처로 가자 뱀 꼬리 마냥 꾸불꾸불 길게 줄이 이어져 있다. 티켓 요금은 우리 돈으로 2만 원이다. 다소 비싼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이 남근 철의 귀두까지 오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쑤웅하는 소리와 함께 위로, 위로 올라갔고 전광판에는 현재 고도와 소요 시간이 붉은색으로 점멸되고 있다. 

나는 회색 철기둥 사이로 동경 일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를 고대하며 비싼 입장권을 매만졌다. 그러나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안개와 구름...보슬비의 수직 낙하뿐.

겨우 흘러가는 운무의 빈 공간 사이로 수미다 강과 아사히 맥주 본사 등이 보일 뿐이다. 대실망이다.

원둘레를 한 바퀴 돌아도 안개와 구름으로 가려진 시야는 옷을 벗을 줄 몰랐다.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높은 곳을 계속 오르고자 하는 것인지. 어젯밤의 도쿄타워로 만족하지 못하고 반복적인 높이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으니 스스로 부끄럽다. 나는 급실망 감을 안고 다시 지층으로 내려와 우에노 공원으로 가기 위해 스카이트리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150엔을 주고 탔다. 이 버스는 약 20분 정도 달려 공원 정문 앞에 하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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