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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선언

- 블랑쉬 드 리슈몽 지음, 김성희 옮김

방황이 아닌 방랑이다. 무슨 차이일까. 목적의 유무일까...

방랑은 목적의식적이다. 황폐한 자아를 허리에 차고 무지개 너머 새로운 자아를 찾아 나서는 여행이다. 

방황은 목적지 없는 우왕좌왕에 가깝다.  여행과 방랑은 유사하다.

저자 블랑쉬 드 리슈몽은 15살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남동생의 죽음 앞에서 헤어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 시나이 사막으로 길을 떠난다.


사막은 어떤 곳인가. 생명이 소멸된 척박한 모래의 땅. 태양만이 군림하는 열사의 땅이지 않는가. 또한 낮과 밤의 큰 일교차. 인적 없는 길 위에서 별과 바람을 벗 삼아 절대 고독 속에서 자아를 조명하는 구도의 장소. 

그것이 사막이다.

일찍이 유치환은 "생명의 서"를 통해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자"라고 했다. 존재에 대한 회의.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아무런 이유가 보이지 않을 때 "그 열열한 고독"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나는 내 영혼을 긁어내고 싶었다. 내 모든 꿈을 잊고 싶었다. 나를 지우고 싶었다.


블로그 사진 참조


저자는 카라반의 행렬과 동행하며 사막 속의 고행을 통해 존재의 깊은 곳으로 침잠하며 자아를 탐색한다. 고통의 극단 속에서 새로운 자아는 탄생하는 법. 잠깐의 일상으로의 복귀는 이 타고난 방랑자의 외출을 막지 못했다. 다시 사하라 사막의 밀수업을 일삼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그 극단의 위험까지 달려간다. 


방랑자는 단지 길을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유동하는 방랑의 여행에서 부동의 여행으로 전환한다. 그 결정적 계기는 인도 여행을 통해 발견한 영혼의 깨달음이었다. 


진정한 방랑자는 길을 떠나지 않고도 자신의 존재만으로 우리를 존재하게 만든다. 내면의 힘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저자는 자신의 방랑기뿐 만 아니라 방랑에 대한 다양한 인용구를 제시하며 자신의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문장은 쉽고 단순하여 짧은 시간 내 일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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