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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크레이지

- 유지성 지음

달릴 수 있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멋진 일은 없는 것 같다


나의 지식이 독한 삶의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 사막으로 나는 가자

                                ---유치환 생명의 서


삶의 권태와 무료. 존재에 대한 끝없는 자문과 회의. 

무엇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자아의 정체성과 마땅한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우리는 길을 떠난다.

길 밖에 또 다른 자아가 있고 참된 자아를 만날 수 있다. 때론 맨 바람과 땅의 중력을 견디며 낯선 지역을 한발 한발 앞으로 걷기도 하고 어떤 이는 심장의 고통과 온몸의 골격을 만끽하고자 거친 길을 뜀박질하기도 한다. 

그렇다. 가끔 고통의 심연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건져 올려 새로운 삶의 길로 나아가기도 한다.

극한의 고통. 그 속에 오직 남는 것은 희미한 존재의 알갱이들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모한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1호 사막 레이스 그랜드슬래머 유지성(사진 참조: 유지성 블로그)


사하라 사막과 아타카마 사막, 고비 사막, 남극 레이스, 다이아몬드 울트라 레이스 등 한국인 최초로 사막 마라톤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유지성 씨는 단순히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 뛰고 달렸다.그는 자신이 '병든 나무'라 여기지 않고 오직 재미와 자유를 위해 사막을 달렸다.

나는 사막에서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갈 때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아무 생각 없이 자신에게만 충실하면 되는 무공해 자유. 아름다운 휴양지나 아늑한 호텔에서 느끼는 편안한 휴식과 자유도 좋지만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얻는 자유는 그 깊이가 다르다는 걸 사막에 오면 느낄 수 있다.


사막은 생명이 사라진 불모의 땅이지만 생명을 느끼게 하는 역설적인 땅이다. 오직 자신의 몸만 의지한 채 영상 50도를 뛰어넘는 사막을 달리고 극한의 모래 언덕을 넘어 길 아닌 길을 계속 달려야 한다. 

발바닥은 물집 투성이고 길 위에서 도와줄 사람은 거의 없다. 오직 자신과의 싸움이며 사막은 그 전쟁터이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그 목적은 저마다 다르지만 거대한 사막의 벌판에서 심장의 고통과 발바닥의 찢어지는 아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뜨거운 태양의 작열, 허벅지 근육이 끊어질 듯한 극한의 상황에서 누구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만난다. 모든 껍데기들이 사라진 순간 오직 나만 남는 셈이다.


이런 희열에 중독된 자들은 세계의 오지들을 찾아다니며 보통 사람들은 절대 볼 수 없는 대자연의 풍광을 만끽하고 그 속에 존재하는 자아의 진면목을 발견한다. 
세계 각지의 오지 레이스에 도전하는 실전 여행가(사진 출처: 유지성 블로그)


쪽빛의 푸른 하늘과 그 경계면에서 수평으로 이어진 모래 언덕. 그리고 달리는 인간의 행렬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드넓은 평야에 우뚝 솟은 설산과 맑고 차가운 얼음 계곡물이 흘러내리고 사막의 밤하늘은 별들의 잔치이다. 그 속에서 이뤄지는 참여자들 간의 우정과 연대, 협력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사막에서는 상하 귀천도 없으며 남녀노소의 구별도 전혀 없다.

또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수한 웃음과 친절은 오지 달리기 여행자들을 더욱 즐겁게 만든다. 

사막과 계곡 사이를 달리고 황량한 들판을 질주하고, 눈길과 얼음길을 내달리는 크레이지들의 레이스는 부러움을 넘어 다른 사람들에게 도전 의식을 갖게 한다. 


시인 유치환은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지"라고 말하고 있다.

삶이 위태로울 때 사막은 구원의 장소이며 그 길을 달린다면 참된 자아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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