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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김옥동 옮김

절제된 문장으로 강렬하게 그려 낸 한 노인의 실존적 투쟁과 불굴의 의지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다.


'노인과 바다'의 첫 문장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노인이 먼 바다의 망망대해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청새치를 낚았지만 귀항하는 도중에 못쓸 놈의 상어들의 습격을 받아 머리와 꼬리만 달랑 매달 채 돌아왔다'는 이야기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 치고 너무 단순한 서사구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노인과 바다'는 짧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한 노인의 삶의 철학과 가치관이 오롯이 반영되어 있다.

일반 어부들이 생각하는 바다는 침략과 약탈, 공격의 대상이지만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에게 바다는 인간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제공하는 은혜로운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노인은 바다를 '라 마르'라고 인식하는데 이는 이곳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바다를 부를 때 사용하는 스페인 말이다. 노인은 는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으며 큰 은혜를 베풀어 두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무엇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노인의 바다에 대한 애정은 바다 생명에 대한 연민과 미안함으로 연결된다.

그는 자신의 뱃전을 휘감고 도는 돌고래를 자식처럼 사랑했고 청새치 수놈을 낚아 칼질한 후 배 언저리를 맴도는 암놈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슬픔에 빠지기도 한다. 더구나 군함새와 휘파람새를 바라보며 작고 연약한 바닷새가 먹이를 찾기 위해 바다 위를 비상하는 것을 보며 측은한 마음을 먹곤 한다.

이처럼 오랫동안 바다 안에서 생을 일궈온 노인의 삶은 바다의 모든 것과 한 가족 인 셈이었다. 심지어 노인은 2박 3일에 걸쳐 사투를 벌인 청새치를 바라보며 동정과 찬사의 말을 내뱉는다.


노인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 큰 고기가 왠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저렇게도 당당한 거동. 저런 위엄을 보면 저놈을 먹을 자격이 있는 인간이란 단 한 명도 없어.....



그 어느 누구의 조력자도 없는 망망대해 속 작고 낡은 조각배에서 3일 동안 벌이는 노인의 사투는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젊었을 때 일요일 아침에 시작된 팔씨름을 막강 체력으로 월요일 아침까지 벌리며 결국 이긴 경험은 있지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700킬로 그램에 육박하는 청새치를 대적했다는 사실은 대단한 일이다. 심지어 포악한 상어들의 집단적인 공격에 거의 맨손으로 맞섰다는 사실은 단순한 노익장의 과시를 넘어 인간의 위대한 집념과 신념을 대변하기도 한다.


노인은 모든 고통과 마지막 남은 힘.
그리고 오래전에 사라진 자부심을 총동원해 고기의 마지막 고통과 맞섰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홀로 넓고 깊은 바다에서 몇 모금의 물과 몇 점의 고기로 연명하며 자신의 생존과 운명을 고독하게 개척한 노인의 모습에서 삶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오직 바람의 방향과 별자리, 변화무쌍한 구름의 모습을 관찰하며 조류의 흐름과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노인의 해박한 지식과 지혜는 바닷속에서 살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한편 '노인과 바다'는 인간의 실존, 자연친화적인 생태학적 관점과 더불어 기독교적인 상징 코드도 함께 담고 있다. 번역자 '김욱동'의 작품 해설에 따르면 이러하다.


기독교적 상징이나 이미지를 빼놓을 수 없다. 산티아고는 예수 그리스도와 닮은 인물이다.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성 야고보를 스페인어로 옮긴 것이다.  이는 산티아고의 고통과 희생, 겸손을 보여준다. 또한 상실을 이득으로 패배를 승리로 죽음을 부활로 바꾸는 영웅적 모습으로 그린다


기독교적인 모습은 소설 중간중간에 등장하곤 한다.  노인의 억센 손으로 낚싯줄을 끌어당길 때 느끼는 손바닥의 고통이 마치 손바닥에 못이 박힌 예수의 아픔을 연상하기도 하며, 돛을 어깨에 메고 모래 언덕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노인의 모습에서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예수의 모습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처럼 노인과 바다는 단순하게 허망하게 끝나버린 바다낚시 이야기가 아니라 고난에 맞선 인간의 사투, 해양 생물에 대한 사랑, 세대를 뛰어넘은 소년과의 우정. 마을 주민과의 연대 등을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헤밍웨이는 이 모든 것들을 단순 명료한 문체로 형상화했다. 일명 하드보일적인 스타일빙산 이론과 함께 과감한 생략과 대담한 간결함으로 표현되어 있다.

보다 읽기 쉽고 이해가 빠르게 표현됨으로써 누구나 쉽게 소설의 재미에 빠져 들게 하고 있다. 어릴 적 '노인과 바다'를 잊고 다시 한번 더 '노인과 바다'를 읽게 된다면 헤밍웨이의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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