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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김인순 옮김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속살을 차오르게 하는 치유의 소설. 이제껏 이토록 지적이면서 우아한 사랑 이야기는 없었다.




종이 약국. 참으로 재미있는 제목이다. 통상적인 판단은 종이를 파는 약국이다. 그러나 이 문장의 의미를 조금 살펴보면 그 판매의 품목이 이상하다. 종이를 팔다니......


종이는 책을 상징하고 약국은 약사의 처방에 따른 치유를 상징한다. 


즉 책을 파는 동네책방인데 조금 특이하게 파리 센 강 위의 수상 서점이라는 점과 손님이 책을 선택하는 구매방식이 아니라 책방 주인이 손님의 심리 상태를 진단 처방한 후 판매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이 판매의 성공요인은 아마 모르는 책이 없을 정도의 박학다식함과 인간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해 낼 수 있는 심리학적인 전문 지식이다. 단 한 권의 책을 팔기 위한 주인장의 노력은 슈퍼맨 그 이상이다.

이 소설의 전반부만 보면 책방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엮은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금만 더 읽어보면 책방 주인의 사랑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선물한 선배는 내가 책방에 관심이 많다는 이유로 이 책을 선택한 것 같은데 제대로 책을 읽지 않고 선물한 것 같다.




우연히 발견한 21년 전의 편지 한 통. 오랜 연인의 죽기 직전의 고백. 미워서 헤어진 것이 아닌 죽음의 병에 있었음을. 그리고 그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그를 보고 싶어 했다는 것.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둔 옛사랑의 아픔이 되살아 나고 그녀의 마지막 소망마저 팽개쳐 버린 그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부여 안고 수상 서점인 종이약국의 닻을 풀고 센 강을 질주하고 만다. 


넌 네가 갈망하는 그걸. 마농에게 주지 않았다. 너는 마농을 기억하길 거부했어. 

그녀의 이름을 말하길. 날마다 사랑과 애정에 마음으로 떠올리길. 그 대신 너는 그녀를 불태웠어. 이런 망할 장 페르뒤. 이런 망할 너는 두려움을 선택했어.


연인의 고향으로 찾아가는 여로는 프랑스 특유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등장하고 기항지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서사구조를 풍성하게 만든다.

연인 마농과 관련된 특정한 공간이 나타나면 그녀와의 달콤한 사랑의 추억들이 회상되고 때론 마농의 일기들이 중간중간에 나타나 소설의 지루함을 극복하고 있다.

이 소설은 사랑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여로형 구조로서 죽은 연인에 대한 씻김을 통해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 가는 종결 구조를 갖고 있다. 어쩌면 그는 21년 전의 연인과의 상처로 인해 나이 50이 되어도 그 어떤 여자와도 사랑을 나눌 수 없었다. 

결국 한 통의 편지는 고통과 아픔을 주었지만 그것을 치유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연인을 얻게 된다. 


끝과 새 출발 사이에 중간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요? 장 페르뒤. 그건 상처 받은 시간이에요. 그 시간은 늪이고 그 속에 꿈과 근심과 잊힌 계획들이 쌓여 있어요. 그 시간 동안은 걸음걸이가 갈수록 무거워지죠. 이별과 그 새 출발 사이의 그 과도기를 과소평가하지 말아요. 


치유 속에 만난 연인. 21년 만에 새롭게 사귄 연인.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울까?

단지 이 단순한 사랑의 이야기를 장편의 형태로 구성한 작가의 능력도 대단하지만 문체는 번역의 수준을 떠나 지루한 측면이 있다. 사랑의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읽어야 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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