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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

- 안도현 지음

안도현 특유의 시인적 직관과 통찰, 품격 높은 상상력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유일무이한 평전




백석. 백기행.

나는 시인을 사랑한다. 

그의 시는 

북방 지역의 특이한 방언을 활용한 낯설면서도 친근하기도 한 오묘한 느낌. 민족의 원형적 심상을 찾을 수 있는 다양한 세시풍속들, 그리고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무수한 지방 음식물들의 향연, 한 줄 한 줄 시행의 감각적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탁월한 표현력 등을 보여준다.
함흥 영생여고 영어교사 시절의 백석

그러나 이런 분석적인 비평 외곽에 유폐된 감동의 근거는 한지에 먹물이 스며 들 듯 가슴속으로 젖어오는 아련한 슬픔 같은 것들이다. 

나는 '흰 바람벽이 있어' 중 하나의 시구를 사랑한다.


하늘이 이 세상에 내일 적에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백석과의 정서적 합일이랄까.  

어느 날 이 시구는 내 마음의 우울을 걷어 내는 높고 높은 바람 같은 것이었다.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묘한 쓸쓸함이 밀려온다.

고도의 압축과 난해한 상징적 표현이 거세된 백석의 시는 한 편의 짧은 영화를 본 듯하다. 마치 내 눈과 코와 혀로 시행을 애무한 듯 내 온몸은 그와 일체를 이룬다.

화자가 슬프고 외로우면 나도 동질의 감정에 푹 빠져든다. 이것이 백석의 힘이다.

시란 총체성을 띄고 있는 언어의 지도이다. 그 고유한 성질을 입체적으로 분석했을 때 온전히 한 편의 시를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총체성은 시인과 시대의 고찰이 아주 주요한 핵심이다.

결국 시의 창작은 시인의 것이며 시인은 시대의 반영자이다. 

안도현의 책은 시인과 시대를 모두 담고 있는 총체적인 백석 평전이다.


백석의 유일한 시집 '사슴' 초판본

일제 강점기의 암흑 속에서 조선인의 정서를 탁월한 시적 언어와 소재를 통해 표현해 내었으며 서구의 문예이론을 교조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표현기법을 통해 당대 문인들의 현학적인 창작 행위에 경종을 울리며 조선 시 문단의 중심적인 인물로 활약했던 백석. 

시 창작 외에 뛰어난 편집 능력을 발휘하여 각종 문예 잡지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뿐인가? 

훤칠한 키와 서남아시아 풍의 이목구비, 검은 바다 물결 같은 올백의 헤어 스타일. 최신 유행의 양복을 착용한 세련된 멋쟁이였다. 

그는 역설적이게도 민족적인 수난 시대에서 가장 빛났던 인물이었다. 시인과 편집자, 영어 교사로서 경성과 함흥을 오가며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높고 높은 사슴과 같은 사람이었다. 통영의 처녀, 난과의 연애의 아픔마저 그를 아름답게 만든다.

주변 문인들의 친일 행위와 변절 속에서 끝까지 자존과 지조를 지켰으며 결코 일본어로 시를 쓰지 않았던 시인이었다.


그러나 만주 신징으로 떠나면서 사랑도 잃고 시마저 잃고 만다.


어쩔 수 없는 밥벌이 때문에 만주국의 괴뢰 정부에서 일을 하면서  오랫동안 만주 벌판에서 방황한다. 그리고 맞이한 해방과 전쟁.

현대사의 비극과 함께 그의 비극도 시작된다. 결코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선택할 수 없었던 자유주의자 백석은 자신의 시 정신을 이데올로기 앞에 포기하고 한낱 삼수 관평 지역의 양치기와 농사꾼으로 살아야 했다.

유일한 시집 '사슴'으로 백석의 이름을 조선 문단에 알렸고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끝으로 경성의 모던 보이는 사라져 버렸다.
1995년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백석과 그의 가족들


한국 전쟁으로 북한에 남은 '백석'은 아동 문학 평론가와 동화시 작가, 번역가로서 생존할 뿐 경성의 백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문학에 대한 순결 주의자였던 그가 주체 문학이니 수령님의 영도니, 사회주의 혁명 완수라는 거칠고 어지러운 구호 앞에 얼마나 고통받았을지 짐작인 든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 문학에 대한 신념을 버리고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구호성 시어를 과도하게 난발하며 충성 서약식 작품을 발표해야 했던 백석.


북한에서 발표한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슬프기 그지없다. 심지어 대남 선전문까지 써야 했던 그의 비루한 삶이 가엾기도 하다. 시대와의 불화. 한 위대한 시인은 그렇게 사라져 간 것이다.

그러나 백석은 이곳 남한 땅에 다시 살아 나와 경성 모던 보이의 아름다운 시 향연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시인 백석의 진짜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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