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많아서 피곤해

질문은 내가 할게, 답은 누가 할래?

by 집필앤하이드

기자는 질문을 업으로 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조금 과장을 하자면) 사명감을 가지고 물어야 한다. 10년 동안 그 일을 하면서 살아서 그런지 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묻고, 또 쉽게 답한다. 이런 이유로 처음 보는 사람과도 ‘스몰토크’도 곧 잘하는 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MBTI에서 내향형이 우세하다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에 의아함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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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나는 줄곧 그렇게 적혀 있다. 어린 시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주민에게는 무조건 인사를 해야 한다는 엄마의 가르침에 쉽게 따라가지 못했던 건 기본적으로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며, 낯가림이 심한 성격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오빠에 비해 인사성이 밝지 못하다는 평을 받아야 했다. 억울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학창 시절의 여러 가지 경험을 토대로 나는 전교생 대부분과 “안녕”이라는 인사를 나누고, 선생님들과는 좋은 관계를 맺으며 성장했다. 잡지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나는 인터뷰이에게 ‘친한 척’을 해여 했다. 상대에게 나는 초면이지만, 나에게 상대는 구면인, 내적친밀감으로 원웨이로 느낄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내가 인터뷰한 셀럽들 중에는 자신의 입으로 ‘내성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의 입에서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들의 답을 들어야 했기에 최대한 친근하고 격 없이 대화를 이끌어야 했다.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는데도 평소에 나는 꽤나 자주 ’그런‘ 대화를 일삼는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 이후로 나의 질문이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연애 초반, 아직 손도 잡지 않았던 때라 둘만 있는 시간이 조금 어색하곤 했다. 특히 차 안에서는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니, 밖에 보이는 풍경, 지금 들리는 음악, 평소에 하는 생각 등을 대화 소재로 삼았다. 대화의 패턴을 잠잠이 지켜보니, 나는 그에게 질문하는데 그는 나에게 별로 궁금해하는게 없었다. 그나마 그가 질문을 할 때는 굉장히 예의 바른게 내게 양해를 구했다.

(심지어 첫 데이트에는 ‘외람되지만’이라는 부사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소개팅을 하든 썸을 타는 관계든 나에게 호감이 있으면 궁금한 게 많아야 하는데 이 남자는 좋아한다면서 묻지 않았다. 이상하다 느꼈지만 애써 외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다짐하듯 말했다.

“혹시 내가 질문을 많이 안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는데 절대 너에게 관심 없어서가 아니야. 설명하자면 우리 집 가풍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부모님은 상대가 말하기 전에는 질문을 잘하지 않으셔. 엄청 궁금하지만 참는 거지.”

그 덕에 그에 대한 오해는 사그라들었고, 나는 그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서운하거나 섭섭한 감정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그가 묻든 말든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조잘조잘 대곤 했다. 웃음 외에는 리액션이 크지 않는 사람이라 조금 답답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땐 혼자 얘기를 다 한 후,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고는 한다. 지금은 그 말이 모는 말끝에 붙는 관용구가 돼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심지어 우리 집 고양이에게조차.

“오늘 까까를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조조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바람에 옆에 있던 남편이 빵 터질 때도 있다.

나는 내 궁금증이 꼭 풀려야 직성이 풀린다는 걸 알았다.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 요일별 만큼의 속옷과 양말을 가지고 있었고, 옷도 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몇 벌 되지 않았다. 연애하면서 한 두 벌씩 사주기 시작한 게 이젠 제법 아침에 뭐 입을지 고민하는 수준에 다다랐다. 결혼하고 얼마 후, 남편이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우리 팀 매니저가 나한테 ‘과장님은 좋은 옷을 잘 입는 같아요’라고 하더라?”


그의 옷장에 있는 옷의 상당 부분에 지분이 있는 나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의아했다. 그 ‘좋은 옷’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딱히 값 비싼 옷이 없을뿐더러 나 역시 아울렛에서 폴로, 브룩스브라더스 수준으로 선물했기 때문이다.


“그래? 도대체 어떤 옷을 보고 그렇게 느꼈대? 네가 가지고 있는 좋은 옷이라곤 폴로 거 아니야?”

“그러게?”

“안 물어봤어?”

“응”

“왜?”

“그냥, 대화를 별로 이어가고 싶지 않았거든”

“안 궁금해?”

“아니. 근데 네 얘기 듣고 보니 궁금해”


나는 남들 눈에 좋게 보이는 남편의 옷이 무엇인지 여전히 몹시 궁금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궁금하지 않았던 남편이 신기하다.

사소하지만 어떤 데이터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늘 만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가는 곳만 가니 활동범위는 줄어들고,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걸 반드시 알아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점점 살아가는데 ‘메타인지’의 중요성은 커지고, 내가 아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의 간극은 커진다. 그런 의미로 다른 것도 아닌 나를 향한 질문엔 주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금 회사에서는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없어진다. 그리고 그 궁금증도 사라진다. 무엇을 묻든 ‘원래 그렇다’는 권태로운 답변과 ‘알아서 뭐 하나’싶은 시큰둥한 마음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까라면 까!’라는 말을 강압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닌 순리로 느껴지는 순간, 나는 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까?
타인에게 나는 어떻게 보일까?
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질문하지 않을까?
……
나는 왜 조회수도 안 나오는 글을 쓰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