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보통의 하루, 퍼펙트데이즈
새해 첫 영화로 <퍼펙트데이즈>를 봤다. 때마침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영화이기도 했고, 내 SNS 타임라인에 새해 추천 영화로 꼽는 사람이 많기도 했다.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한 미덕이 꽉 찬 작품이었다.
도쿄 시내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는 ‘히라야마’는 새벽같이 눈을 뜨면 지체 없이 작업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집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꺼내 마신다. 작은 밴에는 온갖 청소 용품으로 가득하다. 화장실 안에 누가 있는지 살피고, 없으면 사각지대까지 손거울로 비춰 말끔히 청소한다. 장면에 나오지 않지만 후배 청소부 말에 따르면 직접 화장실 세제까지 제조해 청소에 열과 성을 다한다. 점심은 간단히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로 때우고,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필름카메라로 나뭇잎 사이로 삐쳐 나오는 햇살을 찍는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만나는 여성과는 어색한 눈인사를 나눈다. 퇴근하면 옷을 갈아입고, 대중목욕탕을 가고, 단골 이자카야에 가 얼음 가득 담긴 하이볼을 마시며, 집에 와서는 책을 읽다 잠든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다. 주말엔 조금 다르다. 작업복을 가지고 빨래방을 찾고, 그 사이 사진관과 중고서점 그리고 단골 바를 찾는다. 그 바의 여자 주인장은 곱게 늙은 중년의 얼굴이다. 동네 뭇중년 남성들에게 애정 받는 인물임이다. 히라야마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일상은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하다. 보고만 있어도 평화로움 그 자체다. 배경이 되는 계절도 어쩜 늦봄, 초 여름이다. 거실에 누워 살랑 부는 바람이 화면 밖까지 느껴질 정도다. 그런 그의 일상에 균열이 찾아온다. 기분 좋은 균열, 썩 달갑지 않은 균열.
‘10점 만점에 X점’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후배 청소부에게는 ‘10점 만점에 10점’ 짜리 여자친구가 있다. 하지만 그 어린 여자친구는 올드팝을 즐겨 듣는 히라야마의 뺨에 가볍게 키스하며 감정을 표현한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듯 만족하며 퇴근한 그날이 지나고 얼마 후, 후배 청소부는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두고 그 탓에 히라야마는 철야 작업까지 하게 된다. 그의 루틴을 지킬 새도 없이, 작업복을 제대로 벗어 놓을 새도 없이.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는 어느 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조카가 집 앞에 찾아온다. 조카가 청소하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따라다니는 사이 그가 늘 청소하는 화장실 모퉁이 빙고 게임판이 그려진 종이쪽지를 발견한다. 동그라미와 엑스. 얼굴도 모르지만 이 단순한 조합의 대화는 그에게 소소한 재미를 준다. 가출한 딸을 찾아온 여동생은 그가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것으로 보이는 고급 초콜릿을 전하고, 병상에 위독한 아버지의 소식을 전한다.
이때 평화로운 일상 속, 고요한 표정만을 짓던 히라야마가 가장 격하게 감정을 표출한다. 그가 어쩌다 청소부가 됐는지 직접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이
장면에서 그의 순탄치 않은 어떤 과거, 부유하지만 마음은 불우했던 과거를 가늠케 한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주말. 그는 현상한 사진이 덧없다는 듯 찢어버리고, 단골 바의 여주인장이 모르는 남자와 포옹하는 장면을 본 직 후, 일탈한다.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 들고 강변에서 술을 마신다. 모르는 남자는 히라야마에게 자신이 그 여주안장의 전남편이며, 위독하다는 고백을 한다. 마치, 자신들이 포옹하는 것을 본 히라야마에게 해명하듯.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책임감, 성실함, 양심 등의 단어가 떠올랐다. 요즘엔 이런 것들이 미련함의 다른 말인 것 같다. 사실은 내가 자라면서 세뇌받았던, 지켜야 할 가치였다. 그러나 점점 이 가치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잡지사라는 특수한 조직에 있던 나는 일반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 혹은 공무원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고인 물’ 같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야말로 원오브뎀(One of Them)의 삶을 사는 사람들. 그들에게 과연 책임감이란 있을까? 내가 없어도 이 회사는 잘 돌아갈 텐데 내가 굳이 열심히 할 필요 있나?라는 생각을 다수가 할 것이라고 여겼다.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 보니 그 생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정말 ‘굳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동료가 있다. 열심히 더 일한다고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덜한다고 해서 덜 받는 것도 아닌데 ‘굳이’ 누굴 위해 열심히 하냐는 것이 그의 논리다. 회사에 과몰입해 괴로울 때는 그 말이 몹시 위로가 된다. 내가 1인분의 몫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고 느낄 때 ‘굳이’ 정신을 상기한다. 그러면 난 회사에서 한발 뺄 수 있다. 숨통이 트인다.
<퍼펙트데이즈>에서는 하루, 하루 열심히 화장실 청소 하는 히라야마에게 후배는 “굳이 왜 그렇게까지?”라고 묻는다. 어차피 더러워질 곳을 히라야마는 왜 그토록 열심히 청소하는 것일까?
정확히 그 질문에 답하지 않지만 아마도 히라야마는 청소부라는 역할에 대한 책임감, 매일이 주는 단순한 성실함,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느끼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 때문이 아닐까?
나는 일하며 한 발을 빼는 ‘굳이’ 정신도, 남들이 경악할 정도로 일에 정성을 쏟는 ‘그렇게까지’ 정신도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와 밀땅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히라야마의 그 어떤 날처럼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자극과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주, 인사평가 시즌에 맞춰 팀장님과 면담을 했다. 나는 지난 2년간 더 이상 이 팀에 머물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더 늦기 전에 팀을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 밖에 팀에 있으면서 느끼는 부조리함에 대해서 성토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 지금이 아니면 좋은 타이밍은 없다는 말이 동력이 됐다.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될지,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다만, 나는 이 요동치는 마음과 붕 떠 있는 마음을, 지금은 ‘그렇게까지’의 정신으로 일에 몰입하고 싶다. 언젠가 나의 ’퍼펙트 데이‘가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