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배 vs 좋은 상사

좋은 리더란 무엇인가?

by 집필앤하이드

전 직장에서 이직한 이유는 몇 가지 있다. 그중에 하나는 내 스스로가 점점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팀원 2~3명을 데리고 한 파트를 이루며 일을 할 때였다. 고작 그 정도 규모로 이뤄진 한 파트를 이끄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그들이 내 맘처럼 움직일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팀원 1은 외고 출신에 SKY대학 중 한 곳을 졸업한 인재였다. 영어도 잘하고, 얼굴도 이쁘장하며, 기자로서 가져야 할 의식과 소양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는 데드라인을 지키지 못했다. 근태도 좋지 않았다. 평소엔 오전 10시까지 출근하고, 마감 때는 철야근무를 하는 것을 고려해 점심시간 전, 즉 12시 전에만 출근해도 수용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는 출근 시간을 지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마감 때는 오후 3~4시에 출근할 때도 있었다. 그나마 그런 늦은 출근이 용서되려면 새벽에 퇴근하면서 원고 하나라도 책상에 올라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 결과물 없이 새벽 퇴근하고, 오후 출근하는 일이 잦았다. 막판엔 그와 나 서로 감정이 악화될 대로 악화 돼 “도대체 선배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말까지 들었고, 나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치면서까지 격노했다.

팀원 2는 그에 비해선 모범적이었다. 그러나 팀원 1과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 나에게 싸 잡혀서 욕먹기 일쑤였다. 팀원 1보다 몇 년 선배였지만 내 눈엔 거의 티 나지 않는 수준이었고, 팀원 2도 못지않게 마감을 지키지 못해 애를 먹였다. 그러나 내가 한번씩 버럭 할 때마다 움찔하는 바람에 내가 뭔가 잘못됐구다는 걸 느끼게 해 줬다. 마감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건, 잡지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동이다. 원고가 넘어오지 않으면, 디자이너는 레이아웃을 잡을 수 없고, 인쇄소가 제때 돌아가지 않는다. 원고 컨펌을 위해 늦은 시간까지 그의 원고를 기다려야 하는 나와 편집장의 입장도 난처한 건 매한가지였다.


팀원 3은 이제 대학교를 막 졸업한 어시스턴트였다. 눈치 백 단이라 내가 원하는 것을 착착 알아서 잘 해냈지만, 그를 칭찬하면 할수록 선배인 팀원 1,2와 내 사이에서 줄 타는 듯했다. '이 싸움에서 과연 누가 이길까? 이긴 사람이 내편! 인 식의 태도랄까?' 사실 팀원 중에 내가 일적으로 가장 의지한 건 여우 같은 팀원 3이었지만 그와의 결말도 썩 부드럽진 않았다.

이렇게 팀원들과 고군분투하면서 내 자신이 너무 낯설었고, 오만하다 느껴졌다. 나에겐 저런 시절이 없었나, 왜 태생부터 마감 잘 치는 월간지 기자였던 것처럼 행세하는지 아니꼽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스로가 꼰대라는 건 진작에 인정했고, 나는 절대 좋은 선배,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며 자책했다. 팀원이던 시절 내가 좋아하고 존경했던 팀장 선배를 떠올릴 때면 비교 돼 더욱 괴로웠다.

먼 나라로 이주한 그 선배를 몇 년 만에 만난 날, 나는 성토했다.

“저는 선배 같은 선배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선배는 어떻게 그렇게 후배들에게 너그럽고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된 거죠?”

팀원들의 고충도 잘 들어주고, 그지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편집장과 대신 싸워 주기도 한 그 선배는 나에겐 좋은 어른의 표본 그 자체였다. (선배는 나보다 7살이 많다) 선배는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듣다가 한 마디 했다.

“좋은 선배는 좋은 후배가 만들어주는 거 아니었어?
그땐 너네가 워낙 알아서 잘해줬잖아”

선배는 자책하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는 팀원들 탓을 하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난 디렉터로서, 팀장으로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을 찾자면, 나는 절대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시간도, 체력도, 마음도. 당시에 나는 남들보다 일찍 팀장이 됐다고 생각했다. 실무에 손을 떼기엔 아직 연차가 낮고, 나이도 어리다고 생각했기에 그 자리를 고사했다. 하지만 내가 거절한다고 없어질 자리는 아니었고, 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좋다는 조언과 충고에 덜컥 그 자리를 받아들였다. 관리자로만 자기 역할을 한정 짓는 전임자 팀장 선배와 달리 나는 실무도 열심히 하고, 관리도 잘하는 팀장이 되고 싶었다. 사실 관리라는 게 별거인가 싶었다. 얕잡아 본 것이다. 마감은 마감 대로 하고, 섭외, 촬영, 인터뷰 그리고 팀원들의 원고를 보는 것까지. 내 일만 하면 끝났던 팀원 시절과는 너무 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겐 완급조절과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시간도 없고 체력도 없고, 팀원에 대한 애정도 없으니 남아 있는 건 짜증 섞인 감정뿐이었다. 팀원들과 이성적인 대화보다는 감정적인 화풀이로 대했다. 칭찬엔 인색했고, 화가 많았다. 그 시절의 나를 관찰 카메라로 본다면 부끄러움에 내 머리를 다 쥐어뜯을지도 모른다.

이직한 회사에서 팀장을 보며, 그때의 내가 자꾸만 떠오른다. 안쓰럽기도 하고, 이해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팀장은 우리 팀 파트장에서 승진한 사람인데, 이 큰 조직에서는 파트장만 돼도 파트원을 다루면서 보고서 쓰는 수준의 실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꼼꼼하게 일 잘하는 파트장으로 파트원의 존경을 받았다. 무엇보다 팀장은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는 어쩌면 그 인정을 동력 삼아 지금도 일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팀장이 된 지금, 온화하고 합리적이었던 파트장 때 모습은 없다. 팀원들은 팀장에게 언제 보고해야 덜 혼날지 눈치만 본다. 날카롭고, 짜증나 있는 날이 많다. 막상 1:1로 면담하면 그는 여전히 예전 그 모습으로 부드럽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지만.

지난주, 팀장과 점심을 먹게 됐다. 이런저런 사적인 얘기들을 주고받다 팀장으로서 고충이 슬쩍 드러났다. 본인도 좋은 팀장에 대해 고민이 많다며, 주변 선배들에게 물어봤다고 했다. 팀원들 개개인의 고민과 커리어가 고민돼 일이 진척되지 않을 때가 있다고도 했다.

“선배들이 그러더라고. ‘나도 그랬어~ 근데 좋은 상사가 뭔지 알아?
이러니 저러니 해도 팀원 승진 잘 시켜주는 거야. 애들한테는 그게 최고야”

요즘 들어 팀장이 팀원들을 갈구고, 혼내는 이유를 성과로 찾는 듯했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면 직장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정답 같은 말이다. 회사원에게 가장 큰 성과는 승진이며, 가장 큰 보상은 월급이다. 승진해야 월급이 오른다. 그러니 승진 잘 시켜주는 능력 있는 팀장이 좋은 리더다. 하지만 해마다 직장인이 승진 대상자가 되진 않는다. 승진은 직장 생활하는데 아주 중요한 ‘이벤트’이지만 보통은 그냥 직장인의 삶을 산다. 보통의 삶에선 좋은 상사보다는 좋은 선배를 찾게 된다.


좋은 선배와 좋은 상사. 나의 전 직장과 현재 직장의 차이다. 나는 이 회사에서 좋은 선배를 찾지 못했다. 당연히도 누구 하나 그 역할을 자청하는 이도 없다.

그러면서 몇 년 전 내 좋은 선배가 해준 말을 자꾸만 되뇐다.

“좋은 선배는 좋은 후배가 만들어준다” 그래서 일단 내가 맡은 바를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 모습을 잘 알아 봐주는 좋은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 좋은 후배가 여러 번 되다 보면, 나도 좋은 선배가 돼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