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언제나
이직한 회사는 1년에 한 번, 그것도 연말에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다. 그래서 연차 쓰는 걸 지양하는 편이다. 자칫 잘못하면 마지막 인사도 못한 채, 동료가 떠난 텅 빈자리에 서운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보험사는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지점이 있어, 어느 지역에 발령이 나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리기도 한다. 나는 서울 본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경력직이라는 특수한 조건 탓에 지점으로 발령 날 일은 없다. 그러니 팀에 발령받아 온 지점 출신의 동료를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역할도 해야 한다.
그날이 올해도 변함없이 찾아왔다. 인사발령이라는 것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일이기도 하고, 비밀리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당사자조차도 발표날 직전에 알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작년 이맘때, 입사 이후 줄곧 가깝게 지낸 동료가 가족이 있는 지역으로 발령이 났다.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인사라는 것은 매우 예민한 부분이라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도 쉬쉬한다. 그 동료는 몇 번 팀을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때마다 좌절됐다. 모두 당시 욕심 많은 팀장이 유능한 그를 놓아주지 않은 탓이었다. 결혼한 이후,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는 그는 내내 주말 부부 생활을 했다. 가혹한 삶이라 생각했다. 금요일이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속터미널로 향하는 그의 고달픈 삶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동갑내기로 마음을 터놓고 꽤 가깝게 지냈기에 갑작스러운 발령에 너무 놀랐다. 심지어 나는 그가 인사발령 공지가 있는 날 연차를 쓰는 바람에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너무나 원했던 것을 알았기에 기꺼이 축하했지만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내 자리엔 멘톨맛이 진한 멘토스가 구비돼 있다. 입이 텁텁할 때 한 알씩 먹으면 코까지 뻥 뚫릴 정도로 개운해진다. 웃음기가 가득한 J과장은 처음엔 한 개만 먹겠다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것인 양 하나씩 빼먹기 시작했다. 2살 연상인 아내와 내가 동갑이라며 평소에 내게 시답잖은 농담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 그의 그런 뻔뻔한 행동이 불쾌하지 않았다. 되레 친근감의 표현이자 그 다운 행동이라 여겼다. 오늘은 그가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난다. 회사 건물은 같지만 층수가 달라 좀처럼 마주칠 일이 없을 듯하다. 다행히 그의 발령은 일찍이 알게 돼 그를 위한 멘토스 한통을 준비했다. 아침에 출근해 잘 가라며 인사하고 멘토스를 내미니,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고마워한다. 새로운 팀에서는 눈치 보여 먹을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며 엄살 피우며.
그러다 아침에 입사 이후 팀 자리 안내부터, 경력직 OT, 온갖 자잘한 것들까지 잘 대답해 주던 L차장의 발령 소식을 들었다. 당사자도 어젯밤에 팀장에게 들었다고 하니, 당황하긴 매한가지인 듯했다. 한 팀에 5년이나 있었으니 떠날 때가 됐다고 말하면서도, 발령 난 팀이 워낙 힘들기로 유명해 걱정도 했다.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지 4년이 됐고, 사실 대기업에서 회사 생활이란 이런 거라고 몸소 알려주는 이는 바로 L차장이었다. 여우처럼 상사의 마음을 잘 캐치하고, 일 머리도 좋아 상사 대부분은 그를 좋아했다. 동료로서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말하고 대처하는 그의 기회주의적인 언행이 조금 불쾌할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도움도 많이 받아 알게 모르게 의지를 많이 했었다. 그가 어딜 가나 잘 해낼 거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가 없는 이 팀에서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는 너무나 걱정된다.
그 어느 때보다 암울한 연말. 내가 연말마다 회사에서 겪는 이별과는 비할 바도 아닌 크고도 깊은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없을 것이다. 뉴스를 외면해 보려 영화를 찾아보고, 유튜브도 찾아보지만 그 감정은 제자리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기분마저도 그분들의 슬픔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 죄스럽다.
연말에 들뜨는 기분이 싫어 얼른 평범한 일 년 중 하루가 되길 바란 적이 많다. 올해는 그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모쪼록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새해에도 안녕하기를. 안녕이라는 말이 평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