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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Dec 23. 2024

치과에 대한 단상 혹은 잡념

혼자 치과에 갔다


한 달 전, 친구들과 여행 갔다가 충치를 때운 금니가 빠졌다.

올해만 해도 두 번째, 다른 금니다.

휴지에 고이 접어 그대로  치과에 가져가니 너무 오래전에 치료한 거라 닳고 달아 다시 새롭게 치료하고 새 이로 갈아 껴야 한다고 했다.

그 여행이 11월이었으니 이제 한 달이 됐다.

회사 근처에 있는 치과는 사후관리를 꽤 열심히 하는 듯, 새로 끼운 치아가 괜찮은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다음 주에 재방문 예약을 잡으라고 했다.

치과 의자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치아는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때 치료받았던 거다. 그러니 벌써 30년쯤 된 것이다. 멀쩡한 치아도 이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망가질 법 하니, 나름 꽤 오래 버틴 셈이다.

오랜만에 치과 의자에 누우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유난히 지난 과거나 경험을 잘 기억력하는 나는, 나 홀로 치과에 갔던 그 길마저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정말이지,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다.


단상 1. 엄마는 나 혼자 치과에 보냈다.

지금도 그렇지만 30년쯤 전에는 치과는 보험 적용도 잘 되지 않아 치료비가 많이 들었다. 양치를 한다고 했는데, 방법이 문제였는지 나는 어금니 쪽에 꽤 골고루 4~5개의 충치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다. 바가지 씌우지 않고 치료비가 합리적인 동네 치과를 수소문한 엄마는 우리 집에서 걸어서 2~30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워낙 여러 날 치료를 해야 해서 그랬는지 엄마는 처음 몇 번은 같이 가고, 이후엔 나 혼자 치과를 보냈다. 입 안에서 굉음 소리를 내는 온갖 기계 앞에 무장해제 된 채로 나는 누워서 치료를 받았다. 아플 때면 울지도 않고 몸만 움찔움찔. 잘 참았던 것 같다. 그때 내가 가장 고민 됐던 건, 나 홀로 치과에 가서 치료의 고통을 이겨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치과 의자에 누워 눈을 감아야 하나, 떠야 하나 하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눈을 감자니 어색하고, 눈을 뜨자니 안경 렌즈에 훤히 보이는 내 충치가 민망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지금은 그 고민할 필요도 없어 입만 보이는 천을 덮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덕에 나는 나를 치료해 주는 선생님의 얼굴도 잘 모른다. 물론 원장님 프로필 사진을 봐서 얼핏 알지만 오며 가며 마주쳐도 아마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치과 치료를 받으며 어린 시절이 생각 나 며칠 전 엄마에게 “그때 나 혼자 치과에 갔었잖아~”라고 하니 엄마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한다. 나는 그냥 그랬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자책한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오빠가 책망하듯 말한다.

“야, 너 자꾸 과거 이야기 들추지 마~ 엄마가 미안해하잖아”

엄마 미안하라고 한 말은 아니고, 그냥 그때 내가 꽤나 용감한 초등학생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데 차마 그 말을 덧붙이진 못했다.

요즘은 2~3 정거장만 되는 거리라도 부모가 라이딩을 반드시 해준다고 하는데, 90년대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마을버스로 무려 5 정거장 되는 거리를 다녔다. 참, 독립적이었다.


단상 2. 침이 고인다

치아의 본을 뜨든, 제대로 치료 보정기를 붙이든, 무슨 이유가 됐든 이를 꽉 다물고 있어야 할 때가 있다. 혀 한쪽으로 솜을 껴 주는데 1~2분만 지나도 내 입 안에는 침이 한가득 고인다. 그 침은 어쩐지 찝찝해 삼키지도 못한 채 그대로 둔다. 솜이 잔뜩 젖고 나서야 그제야 정해진 시간이 된다. 평소에는 그 존재감도 느끼지 못했던 침이 내 입안에 이렇게 많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다.  병원에 가면 왜 이렇게 추잡해지는지 모르겠다. 스스로가 작아지는 것도 다 그 때문인 것 같다. 치과라면 그나마 목숨과는 가장 동 떨어져 있는 성격의 병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스케일링을 하고 나서는 새삼 내 입 안에 얼마나 많은 치석이 있었는지 깨닫는다. 시원한데 뭔가 헛헛한 기분? 한 겨울에 왁싱하고 나오면 딱 그런 기분이 든다. 아, 털이 보온 역할을 정말 하긴 하는구나 라는. 물론 스케일링은 그저 관리와 위생을 위해 하는 왁싱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단상 3. 치과 의자와 안마 의자

치과 의자는 꽤 안락하다. 오늘은 평소와 다른 치위생사 분이 나의 치료를 했다.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혀서 물구나무서는 듯한 위기감(?)까지 느껴졌다. 물론 나중엔 최대한 눕혀 놓고 각도를 맞춰 올리긴 했지만. 아무튼 입만 벌리라고 하지 않는다면 치과 의자는 수면마취제 없이도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은 안락함을 준다. 예전과 달리 치료도 많이 아프지 않아 참을만하다. 회사 점심시간 짬을 내 치료하는 데다가 날씨까지 추워지니 솔솔 잠까지 오려고 한다. 게다가 눈에 천까지 덮어주니 얼마나 숙면하기 좋은 환경인가? 물론 치과에서 잠을 잤다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내일은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다시 용감하게 산부인과 예약을 잡았다. 나와 남편의 현재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어떤 준비가 될 수도 있고, 어떤 포기가 될 수도 있고, 어떤 노력이 될 수도 있는 다짐을 하기 위한 병원행이다 어쩌면 내일 가는 병원에서도 오만가지 잡념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어떤 다짐을 하게 돼도 초등학생 그때의 나처럼 용감하게 잘 받아들이고 오리라.

그러니 어쨌거나 미리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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