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는 사랑을 싣고

더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변비가 있다.

by 집필앤하이드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는 나의 고질병 중 하나다. 기억을 더듬어 유년시절을 떠올리면 내 주거지는 대부분 아파트였지만 그중 2~3년은 조금 튄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소똥 냄새가 진동하고, 도로는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고, 주인을 잃은 건지 주인이 버린 건지 알 수 없는 동네 개들이 빈번하게 보이던 시골에서 산 적이 있다. 지금은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일찍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정도로 오래전이고, 현재 그곳은 번듯하게 잘빠진 아파트로 꽉 차 있다. 어쩌다 아빠의 사업 이슈로 그곳에 임시적으로 살아야 했다. 잠시 사는 곳이니 특별히 집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할 생각도 안 했던 모양이다. 보일러가 꽤 대중화가 됐고, 대중화장실에 양변기까지는 몰라도 화변기(쪼그려 앉아서 볼일을 보는 것) 정도는 있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연탄으로 불을 때고, 집 밖을 나가야 화장실, 그것도 푸세식화장실을 쓸 수 있었으니 말이다.

미취학 아동이었던 난 그 화장실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화장실에서 발을 헛디뎌 빠지기라도 할까 봐 엄마는 집 앞마당 어딘가에 볼일을 보고 삽으로 마당 밖에 버리는 방법을 알려줬다. 어차피 마당 밖 땅도 우리 땅이니 크게 상관이 없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집 근처가 워낙 허허벌판이라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다. 게다가 집 근처에는 사람이라면 사죽을 못 쓰는 순한 똥개들이 많아 뒤처리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 정말 나는 개가 사람 인분 먹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여러 번 봤다) 아무리 그래도 화장실 가는 일은 늘 곤혹스러웠다. 특히나 큰 일을 볼 때면 애먹었다. 나보다 장이 다른 쪽으로 좋지 않던 오빠는 배출이라도 제법 잘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쭈그려 앉아 아무리 힘을 줘도 나올 것이 나오지 않았다. 어느 때는 다리가 저려 엉거주춤 울며 집에 들어간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엄마가 잠시 쉬다 보면 나올 거라고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성공한 경험도 자주 있었다.


내 변비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유년기가 지나고 청소년이 돼도 나는 좀처럼 집 밖에서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그나마 집에 와야 마음 놓고 화장실을 썼지만 그마저도 타이밍을 놓치면 이 얄궂은 것들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힘들게 힘들게 배출에 성공해도 물기가 없는 이 배출물들은 자주 변기를 막아 버렸다. 변기에 물이 내려가지 않은 것은 물론 역류한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피해는 오롯이 나의 가족 구성원에게 돌아갔다.

아빠는 나와 체질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변기 뚫는 책임이 자주 주어졌다. 나는 그때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수치스럽고 창피했다. 오빠는 늘 구박하고 짜증 냈다. 화장실 갈 때마다 변기가 막혀 있고, 때론 내가 뒷수습을 잘하지 못해 그 책임을 옴팡 써야 하는 날도 있었으니까. 아무튼 변비로 고생하고 배출에 성공해도 뒷수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진땀 빼는 일이 많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하다. 그때만큼 심하지 않지만 컨디션이 좀 나쁘거나 지나치게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은 날은 여전히 화장실에서는 괴롭다. 연애할 때 가장 난처한 것이 연인과 여행 가 화장실을 같이 써야 할 때였다. 다행히 그동안은 가족에게 보여준만큼의 불상사가 일어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새로운 가족이 생기니, 그 상황은 도무지 피해 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지난 주말 내내 삼시 세 끼를 내내 빵으로 먹었다. 월요일 저녁이 되자마자 신호가 왔고, 난 지체 없이 화장실에 갔다. 변기 물을 내리니, 시냇물처럼 맥없이 흘렀다. 변비 인생 nn연차면 물이 내려가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망. 했. 다.

가뜩이나 화장실 사용할 때면 남편을 멀찍이 어딘가로 보내거나 잠시 유튜브 시청에 집중하라고 권하던 나였는데.. 바로 옆에 도구가 있어 힘을 써봤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고, 나는 좀, 아니 많이 피곤했다.

남편에게는 화장실 변기가 좀 시원찮은데, 물이 내려가긴 한다 정도로만 언급했다.


다음날 아침 나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하는 남편이 나지막하게 화장실에서 읊조리는 소리는 알람 소리의 요란함보다 더욱 나를 더 자극했다.

“아..”씨..”
“하....”

불현듯 어젯밤 장면이 떠올랐다.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을 쓰던 남편은 이 시원찮은 변기에 얼마나 당황하고 짜증이 났을까? 혹시 밤새 변기 물이 역류했으면 어쩌지? 결혼 생활이란 볼꼴 못볼꼴 서로에게 다 보여주는 것이라던데 이런 것까지 보여줘야 하는 건가? 뭐든 확실한 남편이니 저걸 어떻게든 뚫으려고 할 텐데 안 뚫리면 어쩌지?... 오만 가지 생각으로 나는 일찍이 잠에서 깼지만 남편이 화장실 문을 열 때까지는 차마 눈을 뜰 수 없었다.

눈동자는 이미 굴러가고 있었지만 내 눈꺼풀은 붙어 있었다.

5~10분 정도가 흘렀을까? 얼마간 실랑이를 끝내고 나온 남편은

“어제 뚫은 거 아니었어? 도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라고 물으며 평소와 같이 아침 인사를 건네고 출근했다.

난 모른 척 “으음?”대답을 얼버무리고 마저 출근 준비를 했다.

남편에게 카톡으로 미안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에게 잔뜩 짜증 났을 거라 예상했는데 남편은 평소와 같이 다정하고 스윗했다.

이렇게 짱돌똥을 싸는 나여도 괜찮다고? 이렇게 무책임한 나여도 괜찮다고?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은 내가 오랫동안 이상적으로 꿈꿔왔던 것을 실현시켜주고 있다. 이제 결혼 한지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그는 정말 그렇다. 그런데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결혼 생활에 나의 변비와 막힌 변기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화장실에 똥냄새만 나도 코를 붙잡고 방향제 뿌리라고 난리치며 깔끔 떨던 나와 그 바쁜 아침 출근 시간에 기꺼이 뚫어뻥으로 변기를 뚫어버리는 남편.


나는 내 가족이 그러했듯, 이것을 진정한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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