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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Mar 29. 2021

관종이 어때서?

모두가 관심을 원해

이직 3개월 차. 

이제는 제법 친해져 주변에서 나의 첫인상에 대해 한 마디씩 한다. 

차가워 보였다, 이직을 후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과묵해 보였다, 무서웠다...

어딜 가나 듣는 나의 첫인상들. 


나 역시 그 말을 내뱉은 이들에게 내가 느낀 첫인상도 말한다.

"홍 과장님은 대면으로 얘기할 때는 재미있는데, 메신저로 말하면 너무 차가워요"

"천 과장님은 정말 따뜻한 분 같아요. 처음부터 저에게 '괜찮냐'라고 많이 물어봐주셨잖아요"

...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첫인상에 대해 듣는 걸 꽤 흥미로워한다. 

점점 첫인상에 대해 진지하게 말해주는 사람들이 줄어든 탓도 있고, 새로운 환경을 접할 기회가 없어지는 탓도 있을 것이다. 


하루는 작정한 듯 옆자리에 앉은 과장이 진지하게 물었다.

"전대리님, 저는 어땠어요?"

난 기분 나쁘지 않게 성심성의껏 대답하다 물었다.

"그게 궁금하세요?"

"그럼요. 사실 그런 걸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연차가 쌓이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객관적인 평가를 듣는 경우는 극히 힘들다. 상사면 상사 인대로, 동료면 동료 인대로 솔직한 얘기를 하기엔 어려운 사이가 된다. 


기분 나쁠만한 단어를 애써 피하려는 내가 보였는지 옆자리에 앉은 과장은 대답을 채근했다.

"대리님, 둘러대지 말고 느낀 대로 말해봐요~"

그런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1X연차 미생이 아니라 1년 차 미생이지.

웃음으로 꽤 많은 부분을 때웠다. ㅎㅎ


나보다 7살은 많은 한 남자 차장님은 발목까지 오는 FILA스포츠 양말을 신는다. 

고작 대리인 나는 그 차장님에게 거침없이 농담을 던졌다.

"어우, 양말이..."

그러자 그 차장님은 제대로 미끼를 잘았다는 듯 

"이 양말이 어때서요!? 나 이거 매일 손빨래하는데?ㅎㅎㅎㅎ"

이 촌스러운 양말은 어렵디 어려운 차장님을 고작 대리가 농을 걸 수 있는 좋은 놀림거리이자 소재거리가 됐다.


시시덕 거리며 놀려대는 게 재미있었는지 어느 날은 그가 말했다.

"전대리가 막 대해서 난 너무 좋아"

내 거침없는 지적과 농담을 무례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인 그에게 감사했지만, 한편으로 얼마 전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 사람들한테 놀림받고 싶어. 요즘은 나를 놀리는 사람이 너무 없어!"

내가 누군가의 놀림감이 되고, 장난의 대상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고,

누군가가 만만하게 여기는 대상이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근엄한 분위기에 짓눌린 우리는 꽤 많이 지친다. 

나이나 연차에 걸맞지 않게 행동하면 나잇값 못하는 것 같은 생각, 

사람들이 얕볼지도 모르는 생각들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나를 포함)

만만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건 곧,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니까.

다들 마음 한편엔 관심종자의 씨 하나쯤은 품고 사는 거 아닐까?

나는 그 씨가 아보카도 씨만큼 제법 큰데, 당신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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