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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Apr 05. 2021

여차하면

어쩔 수 없지 뭐. 말고.

나는 적응을 꽤 잘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직장에 가서도, 낯선 여행지에 가서도, 적응력은 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대부분의 경우엔 장점이자 강점이 되지만,

연애에서만큼은 그렇지 않다.


반복되는 상대의 패턴에 쉽게 적응하고 길들여져,

영문도 모른 채 연락이 끊기거나 어긋났을 때 적잖이 당황하고 괴로워한다.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다.

퇴근하면서 연락하는 , 자기 전에 통화하는  등 내가 아니 우리가 암묵적으로 정한 규칙에 균열이 생겼을 

오만가지 잡념에 빠져들고 이윽고 관계마저 되짚어 보곤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 사이는 이대로 괜찮을까?'

피곤한 일이다.


그러니 헤어질 때 얼마나 힘들겠는가?

미련 때문인지, 사라진 습관 때문인지 슬픔은 배가 된다.


최근 그 비스름한 일이 생겼고 친구 C는 말했다.

"지금 우리 나이 때에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알아? '여차하면'이야. 여차하면 그만두고, 여차하면 다른 남자 만나고..."


그래 생각해보면 그건 꽤 쿨한 멋진 에티튜드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어쩔 수 없지'라는 말보다 새로운 대안을 찾아줄 수 있는 말이라 더 희망적이고, 또 용감하게 느껴진다. 강력한 힘이 내포돼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설사 여차하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맥이 풀린 느낌이 들지 않는다.

포기마저도 크나큰 용기와 결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을 것 같다.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작아지는 건 나다.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맥이 풀리는 것 역시 나다.

일단 해보되, 여차하면 포기하자.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다. 일단 해보는 것도, 이쯤 되면 그냥 '툭' 건드리는 수준은 아닐 테니.

여차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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