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않던 게 불편해지면서 : 페미니즘
고백하자면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의심(!) 받았던 건 꽤 오래전이다.
지금부터 15년 전이었나?
당시 나는 한 언론사의 대학생 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날은 타 언론사 대학생 기자들과 체육대회를 했다.
나는 달리기는 몰라도 구기종목만큼은 꽤 잘하는 편이었다.
사건은 남녀가 짝을 이뤄하는 '짝피구'를 하면서 벌어졌다.
나와 짝이 된 오빠는 그야말로 운동 따위는 담을 쌓고 사는 것 같던 공대생.
비실비실한 몸에 운동신경이라곤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그런 남자였다.
짝피구의 규칙은 둘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이 공에 맞지 않게 보호해주면 되는 거였다.
그러니까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사람은 날아오는 공을 얼마든지 맞아도 되지만, 그 뒤에 있는 사람이 맞을 경우엔 아웃이 되는 거였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남자가 방패막이, 여자가 그 뒤에 섰다.
나도 별생각 없이 그 오빠 뒤에 숨었다.
시작과 동시에 나는 공에 맞았다.
굼뜬 그 오빠와 짝을 이루어 게임을 하는 내내 나는 공 한 번 만져보지도 못하고 아웃의 연속이었다.
승부욕이 있던 나는 순간 화가 나 심판에게
"그냥 제가 방패막이하면 안 될까요?"
라고 말했지만, 그 말에 주변 사람들은 웃겨 죽겠다는 듯한 표정뿐이었다.
허무하게 짝피구는 끝이 났다.
구기종목 하나는 자신 있던 나는 약이 바짝 올라 친구에게 짜증 섞인 하소연을 했다.
그날 밤, 뒤풀이 술자리에서 짝피구에서 같은 편에 섰던, 페로몬 냄새를 잔뜩 풍기는 오빠 한 명이 술기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야! 너 페미니스트냐??"
순간 난 기분이 나빴지만 페미니스트의 뜻도 잘 몰랐고, 그 맥락에서 그 오빠가 나를 향해 그 단어를 쓰는 까닭도 몰랐다. 난 그 말에 그저 "뭐라고요?"라고 반문하는 것 외에는 받아칠 마땅한 리액션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 마감 중인 잡지사 선배가 나에게 카톡을 했다.
이번 달 마감 주제가 '페미니즘이 내 연애에 미친 영향' 그 비스름한 것인데, 내 생각을 묻는 거였다.
페미니스트가 나의 연애를 어렵게 만들었는지, 또 사는 게 불편해졌는지 등.
"글쎄, 내 연애를 페미니즘이 어렵게 만든 것 같지는 않고, 혹시 모를 미래의 불행을 미리 차단해준 것 같긴 해요"
내 대답은 그랬다.
근 2년간 내 연애를 힘들게 한 건, 나의 환경, 나이 등이지 페미니즘은 아니었다.
되레, 내가 페미니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찝찝한 마음으로 상대를 쭈욱 만나 결혼까지 했다면...
상상만으로도 괴로워진다.
사실 나는 여성학을 교양과목으로 가르치는 여대를 나왔다.
여중-여고-여대, 거기에 여초 회사. 나는 상대적으로 다른 여성들에 비해 성차별을 겪는 일은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했던 순간은 이따금씩 찾아왔다.
7년 사귄 남자 친구의 매형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상사로 새로 온 여성을 두고
"내가 술자리에서 제대로 보여줬지. 그 여자 조지려고"라고 말했던 순간,
흔들리는 내 동공을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후에 얘기를 나눠보니 남자 친구는 그 자리에서 그런 얘기가 오고 간지도 모르고 있었고,
연신 당시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정치인, 연예인의 끊어진 밥줄을 걱정했다.
나는 투사처럼 싸웠다.
"너는 네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흥분하냐"라는 말을 들었다.
내 일은 아니지만,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고 했지만, 그는 좀처럼 공감하지 못했다.
1년 반 전에 헤어진 남자 친구는 문제작(?)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같이 보러 가자는 내 제안을 꽤 젠틀하게 거절했다. “너랑 싸우기 싫어”
남성 커뮤니티에서 보니, 그 영화를 보고 나온 연인은 무조건 싸운다더라. 가 이유였다.
소설까지 본 나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는 내 말보다는 커뮤니티의 키보드 워리어들의 말을 더욱 신뢰했다. 다른 것에는 선뜻 양보하던 그는 그 영화 앞에서는 완강했다.
결국 난 혼자 그 영화를 보러 갔다. 그는 아마 영영 그 영화의 내용을 모를 것이다.
앱으로 만난 초등학교 선생이라는 한 남자는 "남자는.."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도대체 그토록 평범한 질문에 왜 이토록 희한하게 답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될 지경이었다.
"고기 좋아하세요?"
"남자는 다 고기 좋아해요"
"TV 잘 안 보세요?"
"남자는 TV 잘 안 봐요"
그러다 <나 혼자 산다>의 기안 84를 존경한다는 말에 나의 임계치는 다다랗고, 급기야 언쟁 끝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기안 84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나의 말에 이유를 물으며 그는 열심히 기안 84를 옹호했고, 갑자기 해마다 있는 성소수자 퍼레이드에 대해서도 비하하기 시작했다. 난 성소수자들의 성결정권은 찬반 논쟁거리가
안되는 극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했다. 먹힐리 없었다.
나는 이들과 인연을 이어나가지 않은 것에 감사하다.
지금 당장 외롭긴 하지만, 불행하진 않으니.
현명했던 과거의 나를 칭찬하는 바다.
그리고 특별한 페미니즘 운동을 실천하고 있진 않지만
나는 앞으로도 종종 불편할 것이다.
그리고 불편한 순간이 점차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