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에게
노희경 작가를 좋아한다.
그가 쓴 드라마는 거의 다 봤고,
몇 편은 수도 없이 다시 봤다.
그의 작품에는 꽤 자주, 과거의 자신 혹은 과거의 가족과 화해하지 못한 인물이 종종 등장한다.
고상한 척 구는 엄마에게 상처 받았던 <그사세>의 주준영이 그랬고, 맏이라고 늘 희생만 했던 <꽃보다 아름다워>의 미옥이 그랬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못내 극복하지 못했던 <굿바이 솔로>의 유지안이 그랬다.
한참 지나도, 너무 가까운 이들이 줬던 상처라 좀처럼 둔감해지지 않는 일이 있다.
세상에 나홀로 남겨진 기분, 그 누구에게도 공감받거나 위로받지 못할 거라며 자포자기하게 되는 마음.
누구의 탓인지, 알고 싶지도 않은 병명으로 두 차례의 수술을 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26~7살, 그러니까 지금부터 10년 전쯤 있었던 일이다.
그때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도 엄마에게 알리기 두려웠던 시절.
제발저렸는지 나는 하필 자궁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알리기 두려웠다.
엄마는 나와 달리 작은 것에도 크게 반응하는 성격의 사람이고, 난 엄마의 유난스러움이 나와 당시 내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벌어지게 할까봐 두려웠다. 그리고 겁 난 나보다 더 겁을 먹은 엄마를 보는게 더 겁이 났다.
그래서 비밀리에 두 차례의 수술을 했다.
그냥 뒀다면, 암세포로 변질됐을 수도 있을 거라는 의사의 말에 난 공포를 느꼈다.
무사히 두 번의 수술을 마치고, 드는 생각은 철 없게도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자" 였다.
그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건,
강아지를 키우는 거였다.
마침 친구의 직장동료의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다는 말에, 내 맘은 요동쳤고
내 마음대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가족과 같이 살 때였는데, 일단 데리고 와서 얼마간 키우다 보면 정이 들테고,
그럼 자연스럽게 강아지를 위한 가족의 틈이 생길거라고. 난 생각했다.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살자, 에는 책임감 따위는 없었다.
강아지가 자라면서 사고 치는 규모는 점점 커졌고, 엄마는 스트레스를 받아 했다.
나는 못 본척 했다.
내가 야근하고 집에 와도 오줌 싸며 반겨주는 유일한 가족, 밍키가 그저 사랑스러웠으니까.
나는 때마다 강아지 산책을 시켜주는게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몰랐다.
무지하고, 이기적이었다.
사고치는 밍키에겐 나는 고작 "너 자꾸 사고치면 안돼"라며 귓속말을 하는 것 말곤 달리 방법을 몰랐다.
무지하고 이기적이었던 내가 겪어야 할 대가는 꽤 컸다.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동안 내 가족들은 밍키를 다른 곳으로 보낸 것이었다.
한 마디 상의도 없었다. 물론 예고 같지 않은 예고는 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엄마가 말버릇처럼 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역시나 안일한 생각이었다.
내가 친구들과 여행에 간 사이 밍키는 이미 다른 집 강아지가 돼 버렸다.
상실감, 배신감, 분노, 화...
어떤 과정과 시간을 통해 내 그 감정들이 풀렸는지는 모른다.
한달내내 본체만체 했던 가족과 어떻게 말을 다시 섞게 됐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시간이 흘렀고, 지금이 됐다.
이후
내가 왜 그토록 무모하게 강아지를 데리고 왔는지 엄마한테 말한 적은 있다.
엄마는 왜 그런 상황에서 당신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냐고 했지만, 나는 그보다 나와 상의없이 강아지를 보내버렸을 때 내 감정이 어땠을지 이해받고 싶었다.
엄마는 항변했다.
강아지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힘들었고, 또 힘들었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그래서 나는 이해하기로 했다. 진짜 그러려고 했다.
나는 정말 무지했고, 이기적이었으니까. 그런 내가 어쩔 수 없었듯이 엄마도 그랬을 거라고.
그러다 최근에 밍키의 소식을 듣게 됐다.
원래 키우려고 데리고 간 사람에게 한 번 더 파양을 당했다고.
지금 주인과 연락은 닿지 않는다고.
사실 난, 밍키를 그렇게 보내고 남의 집 강아지 사진만 보며 "귀엽다"며 폰 사진함에 저장만 해둔다.
혼자 살고 있지만 강아지를 키울 수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밍키에 대한 미안함을 무엇으로 사죄할 수 있을지 고민 끝에 내가 가장 먼저 한 건 동물단체에 소액이나마 기부하는 것. 그리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것.
나한테 밍키는 유난스러울만큼 상처로 남은 존재다.
내가 원망스럽고, 후회되는 시간에 남은 추억이다.
그래서 가족들 누구에게도 사과를 요구한 적은 없다.
내가 원인제공 했으니, 나는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여겼다.
밍키를 그렇게 방치한 건 나니까, 내 잘못이니까.
그런데 며칠 전, 티비에 나온, 좋은 주인을 만나 자기 수명껏 잘 살다간 강아지를 보며
"저렇게 먼저 보내고 어떻게 살아? 나는 못 키워"라고 말하는 위선자의 말에 화가 났다.
우리가 제 수명을 다할 때까지 강아지를 오랫동안 키워본적이나 있냐고.
왜 그런 가증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착한 척이냐고.
그래서 멀쩡한 강아지를 그렇게 보냈냐고.
난 사과 받고 싶었다.
반발하고 싶었고, 아프게 찌르고 싶었다.
엄마의 진두지휘하에 움직였을 행동대장에게 사과 받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는 하냐고, 지금까지도 밍키 생각만 하면 움찔하는 나를 알기는 하냐고.
"너 혼자 사는데 왜 강아지 안키우냐?"라는 질문을 하는 네가 보기에 내가 그렇게 여전히 철없어 보이냐고.
그때의 나를 원망하고 싶고,
지금의 당신에게 사과 받고 싶다.
나의 무지함과 이기심에 대한 속죄는 내가 할 테고, 그 이유로 당신의 행동이 정당화 될 순 없으니
난 그거대로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