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것도, 받는 것도 어색해
새 직장에 입사한 지 5개월 차.
사람들은 회사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팀장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불만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잘해도 생전 칭찬이라는 걸 안 해요"
라는 거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회사에 와서 처음으로 받은 과제를 팀장에게 보고했을 때,
그는 별말 하지 않았다.
그리곤 다음 날, 차장을 통해 "전 대리 고생했다"라는 말을 들었다.
팀장과 내 자리는 바로 코 앞, 언제든 나를 불러 세울 수 있는 물리적 거리에 있었건만,
그는 당사자인 나에게 칭찬을 하는 게 어려웠던 모양이다.
팀장은 아마도 칭찬에 인색하기 보단, 당사자에게 직접 칭찬하는 걸 영 어색해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말하길,
소위 말해 옛날 사람인 팀장은
(자신이 좋아하는)술을 사주는 방식으로 칭찬을 한다고 했다.
술자리가 힘든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운 자리일 수 있지만, 그 의미를 곱씹으면 꽤 기분 좋은 자리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입사 이후 한 달에 한 번꼴로 회식 아닌 회식(물론 인원은 4인)을 했으니
나는 제법 칭찬을 여러 번 들은 셈이다.
사람마다 사는 법, 사랑하는 법이 다르듯
칭찬하는 법도 저마다 다른 걸 어쩌랴,
싶지만 우리는 왜 이렇게 칭찬하는 말을 대놓고 하길 어려워, 아니 어색해하는지 싶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대놓고 칭찬을 듣는 것도 쉽지 않다.
오늘 만난 친구는 요즘 '될놈될'모드라고 했다.
어쩌다 얻어걸려 좋은 결과물을 내 직속 상사에게 직접적으로 칭찬받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8월이면 출산을 하는 친구는
"이 몸으로 열심히 하는 걸 갸륵하게 본 게 아닐까 싶어"
라며 상사의 칭찬을 축소(?)시켰다.
그러니까, 그녀는 (나에게 부끄러워서) 자신이 들은 칭찬이 출중한 실력 때문이 아니라 상사가 저신의 이런저런 상황을 감안해서 한 인사치레 말 정도로 '퉁'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만삭의 몸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도 칭찬'거리'가 되지만, 난 꼭 그것만은 아니라고 짚어주고 싶었다.
칭찬의 의미와 방향을 말이다.
"아냐, 그건 네가 임신을 했건, 안 했건 언제고 드러났을 실력이야. 몇 년간 네가 해온 것들이 지금 빛을 발하는 거야"
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 역시 그녀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 나를 띄워주면 고소공포증에 걸린 환자처럼 현기증을 느끼며 손사래를 친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별것도 아닌데요 뭐!"
그러면서 내심 정말 잘하고 싶어서 애쓰고, 애썼으면서 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츤데레'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는 그게 결코 좋은 말 같지 않다.
좋으면서 싫은 척하고, 칭찬하고 싶으면서 애써 지적할 거리를 찾고, 입은 웃으면서 말은 거칠고 세게 말하는 것. 내가 정말 싫어하는 내 모습이 '츤데레'인 것 같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우리는 칭찬하는 것 못지않게, 듣는 것을 이토록 어색해할까?
어색함이라는 감정은 낯섦에서 기인한다.
칭찬은 낯설다.
하는 것도, 받는 것도.
하지만 그 낯섦은 반복적인 학습과 경험을 통해 익숙해진다.
앞으로 나는 그 낯섦에 익숙해지려한다.
츤데레가 아니라 그냥 좋은 감정을 좋은 대로 잘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칭찬과 친해지기.
돈 한 푼 안들지만 가치있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