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경험에 대해 생각하다
20대 초반에 나는 막연히 무조건 다양한 경험이 좋다고 말했다.
이유는 '젊으니까'였다. 그게 논리적으로 얼마나 합당한 이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좋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생각의 이유는 다르다.
젊지 않아도 경험은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그 이유는 내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들을 알아 가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동네 교회에 버려져 있던 고양이를 선배가 '냥줍'해서 임보했던 고양이.
이제 세상에 태어난 지 3개월 남짓됐다.
나는 이 작은 존재를 통해 고양이를 키워보고, 또 죽을 때까지 돌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고양이, 누군가가 키우는 반려동물을 보며 남다르게 이입할 것이다.
좀 더 확장된다면, 내가 사는 세상의 동물들과 자연을 생각할 것이다.
몇 년 간 서핑에 빠져 사는 선배는 텀블러를 사용하며, 제주도에 가면 전기차를 애용한다.
일회용품 쓰기가 싫어 배달음식이 꺼려진다고도 한다.
물론 여전히 SPA 브랜드의 옷을 즐겨 사 입지만, 그녀가 패션업계 종사하는 걸 고려한다면 충분히 양해 가능하다.
다양한 경험이 중요한 건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임신한 친구나 형제가 있어 지하철 임산부석에 쉽사리 앉지 못하는 것,
내 부모나 형제, 친구 같은 사람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분노하는 것.
뭐 그런 것들 말이다.
몇 해 전, 세월호 사건 당시 뉴스에서는 한시도 빠짐없이 사건을 다루고 있었고, TV를 보던 엄마가 말했다.
"언제까지 저 얘기만 하려나.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난 그 말을 듣고 조금 화가 났지만 말했다.
"엄마, 내가 만약 저 배 안에 갇혀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엄마를 설득하는 건 퍽 쉬운 일이었다.
다양한 경험의 가치는 이력서에 한 줄을 써넣거나, 누군가와 대화하다 잘난 척할 수 있는 한 마디를 더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다양한 경험의 진짜 가치는 내 삶의 관점, 세계관이 확장되는 것이다.
조금 피곤하고 괴롭긴 해도, 내가 정도를 지키며, 최대한 악하지 않은 결정과 삶을 살려는 이유는 다양한 경험 속에 있다.
결론은 난 집사가 됐고, 내 인생은 이 전보다 더 풍부해지리라는 것! 그리고 육체적으로 내가 이 고양이를 키울지는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이 고양이가 나를 키울 것이라는 것!
��이 공간을 빌어 내 고양이 자랑 좀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