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일 놈의 기억력
인간은 기억으로 산다고 생각한다.
오은영 박사가 언젠가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밤새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 '무언가를 위해 성실하게 해냈던 기억'을 안기는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나의 그 기억력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곤란해하기도 하고, 당황해하기도 하고, 또 신기해하기도 한다.
내 기억력은 보통 내가 보고, 겪었던 것을 통해 느낀 감정과 통한다.
사실 기반보다는 감정 기반이다.
그래서 꽤 많이 왜곡되고, 과장된다.
삶에 도움이 되는 건 좋은 기억만은 아니다.
나빴던 기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힘들 때마다 내가 최악이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많이 울고, 애쓰고, 마음을 썼던 시간들.
하다못해 운동하다 극한에 다다르면 난 가장 힘들었던 때를 기억하며
'그때보다는 힘들지 않잖아'라고 되뇐다.
최근 1~2년간은 최악의 기억이 쌓이지 않았다.
전직 같은 이직을 한지 이제 2년 차에 접어들었고, 원하던 대로 승진을 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힘들지 않으니, 또 인생이 심심한 것 같고,
이렇게 살아도 괜찮나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브런치를 떠나 있던 사이
난 연애를 시작했고, 그토록 원하던 결혼도 꿈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행복하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난 분명 기억력이 좋고, 그 기억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라 자신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처럼 기억을 활용하는 능력은
쓰지 않으면 쉽게 마모돼 뭉뚝해지는 모양이다.
오늘부터 브런치 글 발행을 다시 시작합니다.
그동안 허기진 배를 허겁지겁 채우듯 열심히 읽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일단 다시 써보는 것에 방점을 두려 합니다.
잡지사에 일하면서 더 이상 내 안에 쌓인 것이 없어 쓸 게 없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이제는 쌓인 것을 내놓아도 되지 않을까요?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오니 가장 마지막 글이 저의 고양이 '조조'의 이야기더라고요.
저와 동거한 지 곧 1년이 다 돼 가는 고양이는
1kg 겨우 넘었는데 지금은 무려 5kg이 됐어요.
그 무게만큼 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죠.
그 사이 중성화 수술도 했고, 성장통 같이 아프기도 했는데 지금은 자기주장 강한 고양이로 성장했습니다.
그때 당장은 제가 조조를 키우게 되겠지만, 결국엔 조조가 나를 성장시킬 거라 확신했는데, 역시나 그랬습니다. 조조 덕분에 장롱 면허를 꺼내 들고 차를 가지고 도로에 나왔으니깐요.
열심히, 꾸준히, 성실하게 다시 써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