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꼬투리 Mar 10. 2024

특별한 일을 하고 있었다는 ‘자만’

대체불가능한 일이 대체불가능한 사람을 만드는 건 아니다


잡지 기자로 일할 때는 꾀를 부릴 수 없었다. 그달에 내가 한 일들이 버젓이 책으로 티가 나기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은 일들도 있긴 하지만 정확히 에디터에게는 그 달에 할당돼 있는 '배당'기사가 있다. 연차가 높아지면 배당 기사 개수보다는 기사의 기획력에 따른 스케일이 더 중요해지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은 배당 기사 개수만으로 내가 한 일을 표 내기(?)에 충분했다.

일반 회사에 들어와 보니 그렇지 않다.

정확한 R&R이 있지 않는 이상,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

컴퓨터에 열심히 폴더를 만들고, 받은 메일&보낸 메일을 개인 컴퓨터에 열심히 저장한다. 나도 내가 한 일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기 십상이며, 인사평가에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나는 '대체불가능'한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그건 내가 조금 더 창의성을 발휘하는 영역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찾은 일이 잡지 기자이기도 했다. 명확하게 내 이름 세 글자가 잡지에 실리니, 그 일을 내가 아니면 누가 했단 말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대체불가능'한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게 됐다.

마감 기간에 내가 사라지면 그 기사를 쓸 사람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 기사를 기획한 사람만이 의도를 알고, 온전히 취재한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아니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 아니 내가 아니면 마감이 되지 않는다고 굳건히 믿었다. 희한하게도 마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주간에는 아팠던 적이 없다. 교묘하게 그보다 일찍, 그 이후에 몸이 아팠다. 마감이 너무 하기 싫을 때는 출퇴근 길에 죽지 않을 만큼 경미한 교통사고가 나기를 바라길 바랐던 적이 한두 번 아니다. 누가 대신 원고를 써줬으면 하는 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매우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자부심이자 자만심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반 직장인의 삶이 부럽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얕은 마음도 있었다.

루틴 한 업무를 하고 일정 시간만 지나면 일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워라밸 있는 삶. 퇴근 이후엔 셧다운 내리고 맘 편히 쉴 수 있는 삶.

겁 없이 전직 같은 이직을 한 건, 일은 물론 루틴 한 직장인의 삶도 안해봐서 그렇지 일단 하면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까짓 거' 대충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대체 불가능한 일을 10년 넘게 한 배테랑이란 말이다!라는 마음이 강했다.

오만했고, 거만했고, 자만했다.

직장인이 하는 일에서 가장 크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정리력'이다.

아무리 MBTI의 'P'성향이 강한 사람도 일할 때만큼은 'J'로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직장인은 그게 더욱 강해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한 일에 대한 정리가 잘 돼 있어야 할 말이 생긴다. 사실 잡지 기자는 업무 결과가 출판 돼 책으로 나오니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씩 리셋되기 때문이다. 언제 어떤 자료가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에 컴퓨터 폴더링도 잘해놔야 한다.

또한 논리력이다.

취업 준비할 때 각종 대기업이 인적성검사를 왜 그렇게 많이 했었는지 깨닫게 되는 지점이다. 특히 보고서를 쓸 때는 논리의 허점이 없어야 한다. 보고서에는 사업 추진 보고서, 사업 결과 보고서, 사업 현황 보고서 등이 있는데, 그 보고서에는 육하원칙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어야 하며, 빈틈없는 논리로 보고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 인터뷰 글 외에 각종 글을 쓰긴 했지만 논리적인 글은 완벽한 취재와 자료가 있어야 한다. 즉 부지런해야 근거자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기 효능감이다.

늘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과연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낄까? 내 머릿속 직장인의 모습은 삶에 찌들어 있는, 일을 통해 기쁨이라곤 하나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안에서도 일을 통해 희로애락을 느끼는 이들은 많다. 그러니 결국 잡지 기자고, 방송국 사람들이고, 직장인은 어차피 거기서 거기이며, 그 안에서 자기 효능감을 느끼는 건 모두 각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은 비단 대체 불가능한 일을 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업무를 프로페셔널하게 하거나, 다른 사람이 접근하지 않았던 영역을 시작한다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내가 잡지사를 다니면서 간과했던 지점이다.


나는 어느 시점부터 직장인의 삶을 존중하며 이해하게 됐다. 내가 잡지 기자로 평생 살았다면 절대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다. 그들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직장생활을 하고, 창의적인 일을 했다는 이유로 속단했던 것을 나는 점점 인정하고 정정하고 있다. 평범한 보통의 직장인이 된 지 3년이 돼서야 비로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인사평가 불만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