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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Mar 03. 2024

인사평가 불만족

B+ 이게 내 점수라고?

인사평가 시즌이다.

그 덕에 요 며칠 마음이 뒤숭숭하다. 나는 아주 다행히 평균 수준의 점수를 받았다.
생각해 보니 이 회사에 와서 세 번째로 받는 평가다.


내가 다녔던 잡지사에서 직급이나 인사평가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기껏 나눠봤자 기자와 편집장 혹은 차장과 부장 그리고 이하 평사원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호칭도 편집장 아니면 선배뿐인, 직급이 매우 단조로운 조직. 그러니 인사평가가 나와도 예민해질 필요가 없었다. 그 평가로 영향받는 건 그야말로 ‘기분’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중에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면 약간에 인센티브는 있었지만 어차피 기자들의 월급은 박봉이라 거기에서 누가 얼마 더 받는다고 해서 자극받는 일은 없었다. 그 대신 우리는 매달 한 권의 책으로 평가를 받았다.


기발한 기획이 돋보이는 기사, 다른 누구도 섭외하지 못한 연예인과의 인터뷰, 기똥 차게 잘 쓴 칼럼 …그 평가자는 업계 내 동료들이었다. 회사에서 하는 인사평가보다 그들의 눈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일반 회사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를 평가하는 팀장의 눈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야 나의 인사평가 점수를 잘 받을 수 있으니.

사실 우리 회사는 과장까지는 호봉제라 인사평가에 따라 월급이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평가 점수가 축적 돼 추후에 승진할 때는 영향을 줄 수 있다. 일단 잘 받고 보는 것이 이득인 셈이다.


처음 이직할 때 제시한 연봉과 직급을 보고 난 좀 놀랐다.

10년 넘게 잡지사에서 일한 사람의 연봉은 금융업계로 이직하면 대리 수준 연봉보다 낮았다.

충격이었다.

 

내 연봉을 고려할 때 내 직급은 대리였고, 내 연차를 고려하면 내 직급은 과장이었다. 회사는 당연히 전자를 제시했고 나는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 않고 수락했다.  

내 이직의 목표의 가장 큰 부분은 연봉이 매우 컸으니, 그걸 취하는 것이 실리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을 후회하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순간순간 현타가 오고 화남이 올 때 ‘금융치료’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뿐이었다.


이직하고 처음 인사평가를 받았을 때 난생처음으로 A를 받았다.

나를 뽑은 팀장님은 (진의가 어떻든) 회사, 콕 집어 인사팀의 행태를 못마땅해했고, 나에게 미안해했다.

과장으로 입사해도 될 연차인데, 연차를 너무 깎아서 왔다고. 단순히 그런 온정주의에만 끌려 내린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콘텐츠 기획자로서 나를 활용하기 위한 일종의 도모였다고 본다. 그 이유가 뭐든 나는 팀장님 덕에 나는 입사하고 1년 만에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입사 2년 차에는 B, 3년이 된 지금은 B+.

나는 내 점수에 만족한다. 아니, 사실 그 마저도 감지덕지다.


내 반응에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 S는 말한다. 그렇게 겸손한 모습을 팀장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고. 그러면 앞으로도 쭈욱 그 정도 평가만 받아도 괜찮은 애로 낙인찍히게 된다고.


사실 나는 이 회사에 와서 정치력을 ‘1’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자존감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 내가 과연 이 회사에서, 이 팀에서 쓸모가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내가 입사할 때 가졌던 마음과는 너무 달라졌다.

나를 뽑은 사람이 알겠지, 내 쓸모를! 했던 마음이 지금은 어떻게든 내가 내 쓸모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3년쯤 지나니 이 회사를 쭉 다닌다면, 내 수명을 늘리려면 결국 내 쓸모를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인사평가는 나의 그 쓸모를 인정받고, 가치를 따지는 일일 것이다. 이는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모두에게 예외 없이 적용된다.


2010년부터 직장생활을 했음에도 나는 이런 평가에 익숙지 않다.

잡지사 생활을 하면서는 늘 이런 평가에는 거리를 두며 살아왔던 것 같다. 어차피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잘했는가는 잡지의 형태로 드러났고, 나는 거기에서 내 쓸모를 확인했다. 그러니 상사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연봉을 떠나서 내가 납득하느냐가 중요했으니까.


요즘 나는 내 결과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가를 자문한다. 그 질문에 답은 대부분 ‘노’다.

바닥난 자존감은 거기에서 기인한다.


잡지 기자로서 일에 자신감을 얻었던 때를 생각해 보면 자기 확신이었다. 화보 촬영을 할 때나 원고를 쓸 때, ‘내 눈에 괜찮은가?’부터 체크를 했다. 그렇다면 디렉터 선배나 편집장의 컨펌도 두렵지 않았다. 원고를 쓸 때도 이 글을 처음으로 읽을 사람들에게 의문점을 주지 않나, 여기에서 더 묻지 않은 것, 다루지 않은 것이 없나 거기에서 확신을 얻으면 나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지금은 그 어떤 질문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자신도 없다.

 

이런 순간을 해마다 연초가 되면 겪어야 하다니. 경쟁이나 평가에 연연하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는 직장인의 삶은 여전히 낯설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나는 분명 열심히 잘했는데 저평가한 팀장에게 당당하게 맞설 수 있을 만큼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다. 지금 내 평가에 불만족스러운 원인은 후하게 인심 쓴 평가자가 아닌 나 자신에게 있다. 내년에는 좀 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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