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기업 적응기
나는 전형적인 K기업에 다니고 있다고 자부한다.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한데, 이왕이면 90-2000년 대 한국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나쁘게 말하면 꼰대 문화, 좋게 말하면 정(情) 문화가 팽배한 곳.
고리타분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로 꼰대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말했듯 자신의 원칙이 분명한 꼰대를 존준하고 존경한다.
내로남불식 꼰대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자신만의 소신과 주관대로 삶을 살아가고, 타인과 자신을 동일선상에서 엄격하게 대하는 꼰대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꼰대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지만 경력직으로 완정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만 했던 나에겐 그 문화가 꽤 도움이 됐다.
처음 팀에 왔을 때, 가장 싹싹하게 나를 챙겨주던 과장님이 말했다.
“대리님, 점심 약속 없죠? 내가 한 2주 치는 잡아줄게”
말은 안 했지만 사실,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회사에 출근해서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가 점심 메이트를 찾는 일이었다. 예의상 하루 이틀은 함께 먹어주겠지만 회사 분위기에 따라 점심 먹는 무리가 어떻게 나뉠지 모르니, 걱정이었다. 이직하면서 가장 걱정됐던 텃세에 대한 두려움도 이것의 일부였다.
그런데 너무 고맙게도 점심 약속을 알아서 잡아준다니!
그 말처럼 나는 매일 점심을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먹었다. 오늘은 옆 파트 파트장님, 내일은 이번에 다른 팀에서 발령 온 누구…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덕분에 1:1 인터뷰에 강한, 아니 1:1 대화에 강한 나는 팀원들과 점심시간 동안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안 그런 팀도 있다고는 하는데 우리 팀은 점심시간에 팀원 중 누군가 혼자 남아 있는 게 보이면 꼭 챙기려 한다. 자발적 혼밥을 그리 허하지 않는 분위기다. 조금 유난스러울 수 있긴 데, 경력직들이 적응하는데 꽤 도움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귀찮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이 문화의 덕을 많이 받았기에 이후에 나보다 늦게 입사한 경력직들을 챙기려 노력하곤 했다. 어디까지나 그가 새로운 점심 메이트를 찾기 전까지!
K기업 문화로 느껴지는 또 다른 문화는 20분 일찍 출근, 10분 일찍 점심이다.
내가 출근하고 한동안 당황했던 지점인데, 회사 업무 시작 시간은 8시 30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빨리 출근해 자리에 앉아 있다.
이전 회사보다 출퇴근 시간이 1/3로 줄어든 나는 입사 초기 꽤 여유 있게 출근했다. 긴장을 많이 한 탓에
더욱 부지런을 떨었는데, '이쯤 되면 내가 1등으로 출근했겠지?'라는 마음으로 사무실을 가지만 이게 웬걸.
8시 10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무실에는 대부분의 팀원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10시까지 출근하는 것도 버거웠던 잡지사와는 너무 다른 풍경이었다.
얘기 들어보니 회사에서 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새벽 시간에 출발하지 않으면 차가 막혀 아예 지각을 하게 되기 때문에 아예 일찍 서둘러 출근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점심시간 풍경도 새롭다. 1시 30분부터 1시까지 1시간 반 정도 점심을 먹는데, 사람들은 20분부터 엉덩이가 들썩였다. 한 건물에 모든 직원들이 그 시간을 지키려고 하면 엘리베이터 탑승 자체가 힘들어졌다. 잡지사는 점심시간이라는 게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외부 업체와의 미팅이 점심에 많이 잡히기도 하고, 대충 12시쯤 나갔다가 1~2시쯤 사무실에 들어오면 무난한 수준, 하지만 칼 같이 시간이 정해져 있는 이곳은 달랐다. 일반 회사의 기준으로 잡지사 기자들의 근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셈이다.
점심에 신입을 챙겨주는 것과 같이 이 역시 나에게는 회사가 요구하는 근무시간을 지키고, 그 시간을 지킴으로써 얻게 되는 내 시간을 관리하는데 도움이 됐다. 근무시간이 타이트하게 정해져 있으니 그 시간 안에 내 일을 해내는 것. 불가피하게 야근을 하게 될 때는 연장근무 신청을 해서 팀장의 결재를 받는 것.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그 안에는 명확한 규칙이 존재했고 그것을 지키는 것은 개인의 몫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K기업 특유의 허례허식 같은 규율, 상명하복식 보고, 불필요한 회식 등 이해되지 않는 것투성이다. 한국 사회에 세대갈등이 팽배하듯 회사 역시 불합리한 것들을 암묵적으로 지킬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그걸 차마 겉으로 티 내지 못하고 속앓이 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 갈등이 존재하는 곳에서 나는 일한다. 이 회사가 이 과도기를 어떻게 지나가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나는 어쨌든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을 보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