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지 않은 사람 – 모나리자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을 떠올려 본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원고를 도장 찍듯이 찍어내던 나날, 분명 몇 푼 쓰지도 않은 것 같은데 금세 고갈된 통장, 버스, 지하철 내내 몸을 구겨야 했던 고된 출퇴근…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사람 문제였다.
본인이 현직 기자였던 시절 미친 듯이 일했으니, 후배 너네들도 마땅히 나만큼은 일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듯이 굴었던 상사, 한 두 살 차이 나는 후배를 “아가”라 칭해야지만 겨우 자신이 선배로서 우위를 차지한다고 믿었던 상사, 몸은 정규직이건만 출퇴근 시간만은 자포자기한 프리랜서 같던 후배, 시시 때때로 감정 곡선이 변하던 동기, 첫 이직을 앞두고 있는 후배에게 악담 아닌 악담을 해댔던 선배….
사회생활을 하며 불가피하게 형성되는 그 관계 속에서 나의 마음은 참으로 자주 다쳤다. 동시에, 그 관계를 통해 다친 자리가 아물곤 했다.
좋은데 싫고, 싫은데 좋은 것. 그것이 나의 사회생활 속 ‘관계’였다.
그 덕분에 사람을 대하고, 적당히 무시하고, 대우해 주는 법도 배웠다. 진짜 사회성 있는 인간이 된 것이다.
지난해 우연히도 내가 이직한 회사에 친구 K가 입사했다.
한창 회사 얘기를 하던 중 K가 말했다.
“이 회사 사람들은… 음. 좀 대하기 쉬운 것 같아”
그 이유인즉슨, 인사성 바르고 인상까지 좋은(더 정확히 말하면 예쁜) 친구는 회사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목례를 한다고 했다. 그런 낯선 사람의 인사에 사람들은 웃으며 답례하고, 그걸 꽤 좋게 보는 것 같다고.
내가 몸 담았던 잡지사에서 K와 같은 행동을 하면 어떤 평가를 할까 생각해 봤다.
낯선 사람에게 우호적인 시선보다는 경계부터 하고, 미소보다는 무표정으로 대하는 것이 조금 더 신비롭거나, 시크해 보인다고 여기는 것이 분명 있다. 알고 보면 모르는 거 많고, 허점 투성이이면서, 그걸 숨기려고 더 그렇게 애썼던 것 같다.
전 직장, 내가 몸 담았던 곳의 사람들을 흉보려 꺼낸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이 지닌 모난 구석이 결코 개인의 본성이 아니라 환경적 탓이 크다는 걸 말하고 싶을뿐이다.
확실히 지금 회사 사람들은 그리 까칠하지 않다. 어느 곳도 모나지 않고 둥근 편에 속한다. 개 중엔 분명 모난 사람이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다.
이 얘기를 들은 나보다 몇 년 이 회사에 먼저 입사한 경력직 J과장이 말했다.
“맞아요. 여기 회사 사람들은 여유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지나치게 여유로워서 문제지”
맞다. 지금 회사는 사람들이 여유로워서 일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늘 안되면 내일 하면 되고, 내일 안되면 모레, 이번주에 안되면 다음 주에 하면 된다.
데드라인, 그러니까 목숨을 걸만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건 별로 없다. 물론, 돈과 결부된 것은 목숨만큼 지키지만, 그 외에 일들은 그렇게 사활을 걸 만큼 필사적인 건 없다.
그래서 일할 때 답답한 경우가 많다.
잡지사는 데드라인이 있다. 매달 그 날짜에 책이 서점에 진열돼 있어야 한다. 그걸 어기는 잡지는 월간지가 아니다. 그 데드라인은 사람을 좀 모나게 만든다. 여유를 앗아가고 뾰족한 모를 남긴다.
글을 쓸 때도 그 모난 모양이 날카롭고 예리한 시각을 만들고, 아름다운 비주얼을 만들어 낸다.
언젠가 잡지 글에 바쁘면 나쁘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아무리 봐도 정확한 표현이다.
사람이 바쁘면 나빠진다.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누군가를 챙겨야 할 여유가 없어진다. 일하고, 집에 오면 자기 바쁘다. 경주마처럼 데드라인을 향해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결승점에 도착해 있고, 그제야 돌아온 길을 살펴보면 놓치는 것들이 많아진다.
그때 난 친구들의 결혼식도 못 가고,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도 함께하지 못했다. 가족들의 생일을 챙기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전 직장에서 나는 데드라인을 잘 지키는 편이었다. 그걸로 성실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소위 말해 그 업계에서 칭찬으로 쓰이는 ‘미친놈’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너 같은 범생이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반면 이 회사에서 나는 꽤 여유롭고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이다. 두 딸을 키우느라 현실적인 문제에 지쳐 있는 K차장은 입사한 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 나에게 말했다.
“요즘 대리님을 보면서 행복이 뭔가 고민해요. 첫째 딸이 행복하고 싶다는데 그걸 어떻게 이뤄줘야 할지….”
전 직장을 퇴사하기 전, 나는 송곳 같은 스스로에게 찔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진짜 마음을 터 놓는 친구 말고는 한없이 날카롭게 굴었다. 내 모습에서 나를 괴롭혔던 상사들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 모나지 않은 사람인 건지, 그 모를 잠시 숨기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지금의 회사에서 나는 꽤 둥글둥글한 사람으로 통한다는 것. 그로 인해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만, 이전만큼 날카롭게 글 쓸 능력이 사라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 역시나 모든 걸 가질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