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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Teacher Jul 10. 2023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아이

좌충우돌 청신경종양 입문기

" 일 좀 그만 벌려! 수습 가능한 거야?"


  살면서 지금껏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을 손꼽으라면 아마 가장 먼저 답할 수 있는 말 일 것이다. 특출 나게 잘난 것도, 잘하는 것도 없는 나였지만 열정과 욕심은 그 누구에도 뒤지지 않았다. 욕심에 앞서 저질러 놓은 일은 열정에 의해 추진력을 가동하였지만, 아쉽게도 뒷심은 부족하여 늘 뒷수습은 부모님의 몫이었다. 제출해야 하는 숙제들도 비싼 학원들을 정리하는 일도 말이다. 어느 순간 하고 싶다는 욕심은 '어차피 끝을 보지 못할 텐데', '이번 하고 싶음은 며칠이나 갈 수 있는 생각일까?'라는 생각에 추진력을 잃었다.


  나는 누구보다 평범한 아이였다. 중, 고등학교에서 전교에서 반 정도의  석차를 가지고 그다지 눈에 띄지 않고, 하라는 거 꼬박꼬박 해오지만 그렇다고 뭐 하나 두각을 보이는 과목이 없는 아이다. 공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공부하는 것이 딱 눈에 보이는 아이. 선생님의 눈을 피해 그 당시 유행하였던 인터넷 소설을 읽기도 하고, 프로게이머가 지역에 왔다는 소식에 야자를 부모님 몰래 빠지기도 하는 평범한 여중, 여고생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기억하는 나는 다른 아이였다. '나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한 아이.' 사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하였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물어보면 수능을 잘 보기 위해서라고 다 답하면서  수능으로 대학과 인생이 결정된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럼 시험 성적이라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시험에서 내가 정한 점수대가 나오지 않거나 실수로 아는 문제가 틀리면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 내내 악을 쓰고 울었다. 그리고 그 후는 당연히 다시 공부하거나 오답노트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학교에 들어오니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내가 도전할 수 있는 것들이 눈에 펼쳐진 듯 아주 많이 과제로 제시되고 있었고, 걷기만 하던 내가 빠른 경보 정도만 하면 되는 난이도부터 하늘의 별따기처럼 보이는 과제들도 있었다. 또다시 나의 '일 벌임 성향'은 꿈틀거렸다. 뭐든 해보고 싶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내가 받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받아보자라는 생각에 가득 찼다. 그렇게 걷기에서 경보, 경보에서 달리기, 달리기에서 오래 달리기로 넘어가며 나는 내가 벌린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기쁨을 느꼈다. 그 결과 총 8학기 동안 11번의 다양한 장학금을 받았으며 나는 4년 동안 대학교에 낸 등록금보다 장학금으로 받은 금액이 더 많게 되었다.   


 그렇게 마무리하는 기쁨까지 느끼고 나니 잘하고 싶은 내가 떠올랐다. 어느 순간 나는 도전하는 욕심으로 시작한 일을 잘하고 두각을 내고 싶은 내가 일을 처리하고 마무리까지 하게 되었다. 한 번에 두 개 세 개를 병행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유아교육학과의 수업을 듣고 다시 관광 경영학과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총학생회 선거를 위한 비서일을 하면서도 유아교육과 학생회장을 하고 있고, 성적 장학금을 받고, 승무원 준비를 병행하였으니 하루 24시간은 너무 짧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리고 내가 생활하는 모든 것이 내가 해결해야 할 퀘스트와 같았다. 그 퀘스트를 해결하면 더 높은 도전과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하였던 모든 도전들은 내가 성공을 하였든 성공을 하지 못하였든 나의 삶의 자양분이 되었고, 내 삶에서 중요한 실천적 지식이 되어주었다. 나는 점점 스스로 그러한 나에 도취되고 있었다.


  결국 승무원 도전은 졸업을 코앞에 두고 포기하고 '유아교육학과'에서 배운 것들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취업도 하나의 퀘스트였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취업을 하고 나니 삶이 재미가 없었다. 생존기를 6개월 지내고 나는 다시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을 준비했다. 결과는 초수 합격! 합격의 경험이 높아지자 자존감은 하늘을 찔렀다. 그러니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혼을 핑계로 그만둔 후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교 부설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재취업하였다. 일과 석서과정을 병행하던 중 논문을 시작하는 초입에 임신을 알게 되었다. 죽을 것 같았던 입덧과 불안했던 임신과정 중에도 학업도 논문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2월 논문을 발표하며 졸업하고 1주일 뒤 첫 아이를 출산하였다.


 "일 좀 그만 벌려! 수습은 가능한 거야?"라는 주변의 물음에 "당연하지"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다 잘하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구 어게인 지는 모르겠지만 알리고 싶었다. 그 사이 주변의 걱정은 "일 좀 그만 벌려! 너 몸도 생각해야지" "너 지금 너의 몸을 혹사하는 것을 넘어서 학대하고 있는 거야.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잘하고 있는 거야."라고 알려주는 주변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나는 그 말조차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더 할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그렇게 나는 점점 도전의 욕심에서 나 자신의 레벨업에 도취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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