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시절 나는 대학교의 뽕을 뽑아먹겠다는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찾다 보니 알게 된 적성검사. 나의 성격을 분석하여 적합한 직업을 찾아준다는 말에 솔깃하여 친구들과 우르르 신청하였다. 그 당시 나는 실제로 유치원 교사와 승무원의 길 두 개를 놓고 재고 있었다. 잘할 수 있는 직업은 유치원 교사인데 가슴이 뛰는 것은 승무원 쪽이니 당최 혼자 결정하고 해결할 수가 없었다. 소그룹 방에서 안내와 함께 다양한 문항에 솔직히 체크하였고, 며칠 후 큰 강의실에서 이것을 다 함께 해석해 주는 것을 들었다.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는 영어 4글자로 나를 평가하고 직업까지 알려준다니 이게 뭐야 싶었지만 나는 그 네 글자가 퍽 마음에 들었다. 그 네 글자는 다양한 이력서에 잘 사용하였고 덕분에 항상 서류 심사에서는 탈락한 적이 없었다.
이것이 나의 MBTI와의 첫 만남이다. 물론 13년이 훌쩍 넘은 시간이 흘렀기에 지금도 ENFJ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변에서도 "선생님 I인 줄 알았어요.", "선생님 다시 해봐요 F 아니고 T에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13년 전에도 지금에도 바뀌지 않는 것은 바로 미래지향적 J! 완벽한 미래 계획형이다.
사실 처음부터 계획형은 아니었다. 내가 매일 엄마에게 혼난 이유도 '내 것을 내가 못 챙긴다.', '제발 해야 할 것 먼저 해놓고 다른 거를 해라'였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여느 또래가 그러하듯 이제 바뀐 나를 보여주겠다 마음먹었다. 그 당시 다이어리가 유행하였는데, 나는 예쁜 캐릭터가 그려진 아기자기한 다이어리보다 심플하면서도 뭔가 있어 보이는 플랭클린 다이어리가 마음에 들어 몇 달 동안 용돈을 모으고 모아서 갖게 되었다.
플랭클린 다이어리는 5년 후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고 장기, 중기, 단기 목표를 가지 뻗듯 세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후 일 년, 한 달, 하루의 해야 할 일 적어 내려간다. 하루 해야 할 일은 다시 중요도에 따라 A, B, C로 나누고 해야 할 순서에 따라 A1, A2,..., C1로 적는다. A는 오늘 꼭 해야 할 일, B는 오늘 꼭 해야 하지는 않지만 조만간 해야 할 일, C는 중요하지는 않지만 하면 좋은 일이었다. 일의 중요도와 마감도에 따라 재배분하기 위해서는 일을 아주 세분화하여 생각하는 작업을 요하였다.
중학교 1학년이 오늘 꼭 해야 할 일은 숙제뿐이었고, 중요하진 않지만 하면 좋은 일은 예습과 복습뿐이었다. 나는 다 하고 난 후 체크박스를 지우는 재미로 꽤 오래 썼었던 것 같다. 후년도 5년 계획 시 수능 준비를 적으면서 나의 5년 후도 지금과 같을 수밖에 없음에 좌절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플랭클린 다이어리는 대학교에 들어가며 다시 사용하였다. 대학교는 아주 다채롭게 쓸 일거리가 많았고 써야 할 과제도 많았다. 5년 후에는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질지 고민하며 쓰는 것도 꽤나 재미있었다. 그렇게 나는 계획에 대한 강박이 생기기 시작했고 한다고 적은 일을 다 하지 못하였을 땐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늘 못한 일을 내일의 나에게 미루기엔 내일의 나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계획형 성향은 나에게 입학부터 졸업까지 1번도 빠지지 않고 성적장학금을 모두 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지만 조급하고 강박적이며 주위를 둘러볼 여유 없는 나로 만들었다.
올 장학금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공부하면서도 관광경영학과 복수전공(이후 부전공으로 변경)도 하였다. 노는 것도 좋아하여 계획하며 놀았다. 7시까지 집에 들어가기 위해 3~4시부터 술집에 입장하여 놀았다. 유아교육학과 학생회장 또한 너무 높은 학점은 친사회성에 대한 이력서 보충이 필요하다는 주위의 조언에 시작하였으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가장 예쁜 20대 초반. 나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갈아 넣으며 꼭 해야 할 일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와 같았다.
30대 중반의 워킹맘이 된 지금 누가 나에게 MBTI를 묻는다면 웃으며 "EJEJ요"라고 이야기한다. 10여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은, 이후에도 바뀌지 않을 성향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