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태어났고, 그 에너지를 관리하며 지낸다.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그것을 루푸스 환자인 크리스틴 미저란디노는 숟가락으로 표현하였다. 나는 청신경종양을 앓게 되기 전까지는 무수히 많은 숟가락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였다. 그 숟가락은 아주 튼튼했고, 내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뜰 수 있었다. 나는 그 숟가락이 무기라도 되는 냥 휘두르고 다녔다.
청신경종양 발병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의 숟가락은 반의 반도 되지 않았다. 반의 반이 무엇인가. 손으로 꼽아보자면 한 열개쯤 되는 듯하였다. 그중 3개는 밥을 먹고 반신욕을 하는 것에 사용해야 했고, 5개는 큰 아이를 등·하원시키고, 책을 읽어주는 것에 사용해야 했다. 1개쯤은 매 마음 회복을 위해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필사하는 것에 집중했다. 나에게 여분의 숟가락은 단 하나였다.
그 마저 10개를 사용할 수 있는 날은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좋은 날에 한정되었다. 8~9개의 숟가락을 사용해야 하는 날이나, 몸이 좋다고 오인하여 10개를 미리 다 써버린 날은 저녁 시간은 초주검이 되었다.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나의 감정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날이 섰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음에 화가 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릴 때는 항상 너무 늦었다. 이미 나는 입에 칼을 문 괴물이 되어있었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지고, 두 아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번 이야기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세 번 이야기하게 하는 아이들에게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 일인 것 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들은 그다지 큰 것이 아니었다. 장난감 떨어뜨리지 마라, 뛰지 마라, 둘이 붙어서 싸우지 마라 … 뭐든 하지 마라!!!!!! 신랑도 예외는 아니었다. 설거지 소리가 너무 컸고, 몸이 괜찮나고 물어보는 것도 짜증이 났다. "보기에 괜찮아 보인다고 내가 괜찮겠어?" 탁 쏘아붙이고는 입을 닫았다. 더 말을 했다가는 온갖 속에 있는 말들이 다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조용히 집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신랑은 조용히 보고 있던 야구 소리를 줄였다. 그리고 나를 침실로 데려갔다. "힘들면 자도 돼. 뭐 안 해도 돼. 그냥 네 몸만 챙겼으면 좋겠어." 아주 부드럽게 말하였지만 단호했다. 더 이상 가족의 분위기를 망치지 말라는 뜻이었다.
가만히 누워 있자니 마음의 화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또다시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다 나는 피곤하고 에너지가 소진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 몸의 신호가 마음의 짜증으로 올라왔을 뿐이었다. 그 짜증 섞인 눈물이 후회로 바뀌었을 때, 나는 더 나 자신이 싫어졌다. 나 오늘 좀 별로였다. 내일은 좀 더 숟가락을 분배해서 써야지 다짐해 본다. 나의 숟가락이 내일은 하나만 더 있기를 바라며 이른 초저녁 눈물 젖은 베개를 끌어안고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