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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니 최 Jun 22. 2022

시들지 않는 한 송이

<베르사유의 장미> 감상문

시들지 않는 한 송이

<베르사유의 장미> 감상문 



         

  <베르사유의 장미>는 1970년대에 연재되며, 연재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이케다 리요코의 작품이다. 프랑스 비운의 왕비이자, ‘베르사유의 장미’로 불렸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별칭과 같은 제목을 하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의 공주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동맹을 위해 루이 15세의 손자, 루이 16세에게 시집보내졌다. 본디 성격이 천진난만한 미인으로 황태자비 시절부터 모든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는다. 궁중의 모든 생활이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그녀의 남편인 루이 16세는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사슴 사냥과 자물쇠 만들기에만 열중한다. 본인을 둘러싼 귀족 부인들의 시기와 질투도 그녀를 지치게 한다. 그런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인물이자, 마리 앙투아네트가 끝까지 의지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호위무사인 오스칼이다. 오스칼은 프랑스 대귀족 집안의 막내딸로, 장군인 아버지의 바람에 의해 아들로 키워진 인물이다. 오스칼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시집을 온 날부터 그녀의 호위를 맡으며, 어쩌면 가장 가까이에서 프랑스 혁명을 지켜보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베르사유의 장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상의 인물과 실존 인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가 대표적인 실존 인물이고, 오스칼과 그의 소꿉친구이자 연인인 앙드레가 대표적인 가상 인물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 동안 내가 본 작품들은 마리 앙투아네트에만 집중을 하여 이야기를 풀어냈지, <베르사유의 장미>처럼 가상의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며 이야기를 풀어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베르사유의 장미>는 왜 가상의 인물, 오스칼을 탄생시켜 주인공으로 삼았는가 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작가가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자연스레 끌어들이기 위해 오스칼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켰다 생각한다. 오스칼 귀족출신으로 극 초반에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곁에서 ‘왕족’들을 이해하게 되고, 극의 후반에는 자신이 가르치는 병사들을 보며 혁명을 일으키는 ‘평민’들의 곁에 머무르게 된다. 이 작품 속에서 ‘왕족’과 ‘평민’, 두 신분의 입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며, 이해하는 인물이 바로 이 오스칼인 것이다. 독자들은 그런 오스칼의 시선을 따라가기 때문에, 당시 시대상과 각 계층간의 일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보다 다양한 시각으로 이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왕족을 지키던 오스칼은 끝에 시민의 편에 서서 바스티유 감옥을 향해 달려가게 되는데, 이 장면이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담아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작가는 어쩌면, 오스칼이라는 인물을 통해 본인이 생각하는 ‘혁명’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베르사유의 장미>가 결코, ‘학습’을 위한 역사만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허구의 인물인 오스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는 점 등, <베르사유의 장미>는 분명 우리가 읽던 역사 만화와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베르사유의 장미>를 통해 프랑스 혁명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베르사유의 장미>가 가진 탄탄한 스토리텔링 때문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꾀어 국고를 낭비하게 했던 포리냑크 백작 부인과, 그녀를 곤경에 빠트린 목걸이 사건과 같은 실제 사건들이 등장하여 극의 사실성을 더해주었으며, 혁명 당시 평민들의 생활과 베르사유 궁을 향해 행진을 하는 모습 등은 당시 삽화를 그대로 재현하는 둥 이야기 곳곳에 실제 상황이 녹아있다. 하지만 이것은 극의 사실성을 더하기 위한 장치이지, <베르사유의 장미> 그 자체를 역사의 기록, 혹은 증언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주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픽션이니까. 

  하지만 이 ‘허구의 이야기’가 주는 힘은 대단하다. <베르사유의 장미>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각 인물들은 무언가를 대변하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궁 안의 호화스럽지만 외로운 삶과 왕족을 대변하고, 궁 밖의 서민들의 비참한 삶은 로자리와 후에 등장하는 병사들을 통해 보여준다. 각 상황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이 긴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다. 흐름과 사건을 우선시 하는 일반 역사 만화들과 달리 ‘인물’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각 인물들에 공감까지 할 수 있다. 이것이 허구의 이야기, <베르사유의 장미>가 가진 힘이다. 

  <베르사유의 장미>는 분명 허구의 이야기고,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실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을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 역사는 기록된 자들만을 남긴다. 비록 역사엔 기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시대를 산 이들 중에는 분명, ‘오스칼’과 같은 이, ‘앙드레’, ‘로자리’와 같은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기록되지 않았다 하더라고, 그들을 가짜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허구의 이야기는 역사에 남지 않는 이들을 위한 기록이라 생각된다. 오스칼이 했던 말처럼 ‘역사의 이름 없는 영웅’들을 남긴 만화. 그런 이들을 위해서라도 ‘허구의 이야기’는 계속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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