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짓기를 말할 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

초등 글짓기의 시작 -ep1 "서술" 보다는 "묘사"를

by 제이티

글짓기를 말할 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

하얀 A4 종이, 몽당연필, 그리고 선생님의 한마디 자신의 경험을 담아서 글을 써 보아라.

글을 써보라고 했을 때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내 경험은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가 서 지겨운 수업 듣고, 급식 먹는 게 다인데, 무슨 경험을 쓰라고 하는 건지 막막했다. 흰 종이 위에 무언가를 써내려 간다는 그 행동 자체가 공포였고, 맞춤법 신경 쓰라 서론은 어쩌고 본론은 어쩌고 근거를 대야 한다는 둥 누구 하나 라면 끓이는 방법처럼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당연히 글은 타고난 글쟁이들이 쓰는 것이며, 책은 TV나 라디오에 나오는 작가들이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글쓰기 에는 왕도가 없다고 하던데 그냥 왼쪽으로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써내려 가는 게 방법이라고 한 선생님의 대답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성의 없어 보였다. 그런데 내가 교사가 되어서 “글을 쓸 때는 자신의 경험을 담아서 솔직하게 쓰는 거 야” 이렇게 내뱉는 나의 혀와 입술이 한없이 부끄러워 보였다.

막상 해보면 알겠지만 처음 글을 쓰려고 하면 눈앞에 있는 A4용지가 엄청나게 큰 종이로 보인다. 상당수가 절반을 채우는 것도 어려워한다. 엉뚱한 얘기를 써놓거나 도저히 쓸려고 해도 쓸 말이 없다. 머릿속은 만리장성만큼이나 장황하고 대단한데 손은 어째서인지 머리를 따라가지 못한다. 머릿속 생각의 반만큼이나 써 내려갔으면 좋겠는데, 다 쓰고 다시 읽어보면, 몇 년 전 찍은 사진처럼 이건 내가 쓴 게 아 니라고 어린아이처럼 우기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가 무엇일까? 누구나 다 아는 자신의 경험을 담아서 솔직하게 구체 적으로 쓰라는 말은 왠지 운동은 몸에 좋으니까 매일 규칙적으로 30분씩 하란 말과 다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운동을 어떻게 하는가가 남은 문제인 거 같다. 글쓰기에 대한 울렁증과 과장된 공포증을 어떻게 극복하고, 내 생각을 말하듯이 손으로 써 내려갈 수 있을까? 쓰는 사람도 즐겁고 읽는 사람도 즐거운 글 한마디로 감동적인 글을 쓰려면 역시나 좋은 문장을 사용해야 한다. 어떤 것이 좋은 문장이고 좋은 문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사실 왕도가 따로 없다.





"서술” 보다는 “묘사”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상황을 설명해주는 게 서술이라면 사진을 찍은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게 묘사다. “매일 음악을 들으며 조깅을 한다”는 서술 문장이고 “집에 돌아오면 신상 미즈노 러닝화를 신고 애플 이어 팟을 꽂은 채로 BTS의 봄날을 흥얼거리면서 오산천 1바퀴를 쉬지 않고 달린다.”는 묘사 문장이다.

서술은 단박에 한 문장으로 상황을 정리해버리니까 문장에 속도가 붙는다.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길게 묘사하기보다는 재빨리 정리해서 끝내버리고 싶다. 하지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조깅을 했다 사실 자체가 아니라, 진짜 달리는 그 모습이 마치 눈에 보이는 듯해야 한다. 그래야 공감을 할 수 있고 진짜 했구나 를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오늘 배가 고파서 치킨을 시켰는데, 배달이 늦어져서 치킨이 다 식어서 왔다. 그래서 왕 짜증이 났다.”


“밤에 혼자 먹는 치킨처럼 달콤한 게 없다. 역시나 핸드폰을 열고 요기요 배달 앱으로 BHC 뿌링클 치킨을 장바구니에 넣고 결재를 했다. 배달 비 2000원이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배달 아저씨도 먹고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아 무리 초인종 소리를 기다려도 울리지 않았다. 끝내 내가 받은 치킨은 이것은 바삭바삭한 과자 같은 껍질이 아니라 다 퍼진 수제비였다. 다신 시키지 말아야지 하면 서 입으로 꾸역꾸역 넣었다.”


독자만을 위해 묘사를 하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글 쓰는 사람도 자신을 성찰하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거리를 두고 대상을 그려 보이는 묘사가 필요하다. 서술과 묘사를 번갈아 쓰다 보면 때로는 속도를 내고 때로는 장면을 그려 주 어 글에 탄력이 생긴다. 마치 단짠 단짠처럼 끊임없이 입속에 들어가는 맛있는 음식이 된다.





“비유적 표현을 쓰라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 일상 경험에서”



“비유” 라 함은 두 사물 사이에 공통점을 빗대어 표현하는 말이라고들 한다. 꾀꼬 리 같은 목소리, 앵두 같은 입술, 바다와 같은 마음 등이다. 하지만 여자 친구에게 연애편지를 써본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너를 좋아해 왜냐하면 너는 앵두 같은 입술과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렇게 편지를 썼다면 만약 글을 처음 배워나가는 어린아이가 썼다면 감동이었겠지만 저 정도 문장으로는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기는커녕, 평생 모쏠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 다면 어떻게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자기 이야기를 쓰라는 것이다. 그것도 처음에 사용하기 쉬운 방법을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기분이 안 좋은 상태를 표현한다고 하자 예를 들어 짜증, 분노, 공포, 불안 등. 이러한 추상적인 감정표현은 언어의 맛을 느 낄 수가 없다.

“언제 가장 공포스럽니?” 물어보았을 때 학생의 솔직한 대답은 “몰래 컴퓨터 하고 있는데 엄마가 뒤에 서 있을 때요” 이때 나는 무언가를 크게 깨달았다. 모두가 공 감하고 재미있는 글이 어려운 게 아니 구나!라고 이를 바로 수업에 적용해 보았다. 아주 방법은 간단하다. 언제 기쁘고 행복한지 혹 은 언제 화가 나고 억울한지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방법이다.

“시간표에 없는 체육을 선생님이 갑자기 하자고 할 때”(기쁨) “친구랑 같이 떠들었는데 나만 혼낼 때, 또 일렀다고 더 혼날 때”(억울) “아침에 카레 먹고 왔는데, 급식에 또 카레 나올 때. 또 저녁에 남은 카레 먹을 때”(짜증) “학원 땡땡이치고 조마조마했는데 안 걸렸을 때”(안도) “엄마가 모임 간 날 (기쁨) 아빠가 치킨을 시켜주니까”


기가 막히고 참신한 표현들이 쏟아져 나왔다. 책에서 멋진 인용문 적고, 유명한 사람들이 글귀를 퍼 나르고 글에 몰래 훔쳐서 사용했던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우리가 ‘토지’ 박경리 작가처럼, 혹은 ‘개미’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무라카미 하루끼처럼 대단한 사람들을 흉내 낼 필요가 없다. 이것은 마치 이제 막 수영을 시작한 꿈나무에게 올림픽 선수처럼 훈련을 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린 물살을 가르며 기록을 단축하며 경쟁에서 이기는 올림픽 선수가 될 필요가 없다. 그저 물에 뜨고 내 몸 하나 지키고 건강을 위해서 수영을 하면 그뿐이지!


일단, 내 경험 내 이야기를 쓰면 된다. 아이들처럼 감정에 솔직하고 쉽게 말이다.




“글짓기의 연료는 독서다”



자동차의 연료가 석유듯이 글짓기의 연료는 당연히 독서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글을 잘 쓰는 건 아니 지만 책을 읽진 않고서는 도저히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어 린 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부모의 표정과 말투 행동 버릇 하나하나 따라 하듯이 자 신도 모르게 글을 쓸 때는 어느 작가의 문체와 필법이 나오기 마련이다. 거기다 훌륭한 작가들의 맛깔나는 언어적 표현은 때로는 가슴을 울리고 당연한 일상 속에 서 자연스러운 감동을 안겨다 준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떡볶이가 엄마가 해준 떡 볶이란다. 우스갯소리겠지만 엄마가 해준 떡볶이는 분명 다시다와 미원을 넣지 안 았을 것이며 그렇게 맵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건강한 맛을 추구하기 때문이 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추천해주는 책은 분명 몸에 좋은 독서임에는 틀림없 다. 그런데 맛이 없다. 주로 대학 가기 위한 필독도서 전집 아니면 지식도서, 보나 마나 100년 200년 전 작가들의 책일 것이니 말이다.


대체 어떤 학생이 스카이 캐슬에서 나오는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총 균 쇠”를 읽는단 말인가? 일단 지식도서보다는 소설을 읽는 게 바람직하다. 과연 초등학생이 why 한국사 세계사를 읽는다 해서 역사를 이해했을 거라 생각하는가? 물론 을지문덕 살수대첩 광개토대왕 이순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있지만, 단순히 거 기 까지 다. 그냥 아는 것이다.


이야기가 있는 스토리텔링 도서가 읽는 것이 먼저다. 소설을 읽으면서 해야 할 건 두 가지다. 첫째는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소설 속의 흐름은 보통 주인공이 나 오고 반드시 사건이 생기고 이를 해결하면서 상처를 입는다거나 성장한다거나 아 무튼 기-승-전-결 흐름으로 진행된다. 결론은 해피 엔딩이든 새드 엔딩이든 끝나게 마련이다. 이때 자연스럽게 “인과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어떤 사건이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반드시 상황 묘사가 나오고 주인공의 말과 행동에서 성격이 나오고 사건이 일어날 복선과 암시가 분명히 나온다. 이는 곧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예측하게 한다. 바로 읽는 거 자체만으로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이미 뇌에서 시냅스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능력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려 면 퍼즐 조각조각이 이어지듯이 암시와 반전이 있게 마련이다. 추리 소설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도 훌륭한 교재가 될 수 있다.


또 하나 해야 할 것은 앞서 말한 소설 속의 맛깔나는 ‘묘사’를 느끼는 게 중요하 다. 언어의 맛을 느끼고 감동을 받는 게 먼저다. 예를 들어 ‘어린 왕자’ 책에 유명한 대사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는 보고 싶은 감정에다가 설렘과 흥분을 추가로 느끼게 해 준다. 자연스럽게 책을 읽으면서 상상을 하고 만약 비슷한 경험이 있으면 공감이 더 크게 온다.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다르게 나타내는 게 작가이며,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스토리가 있는 책을 먼저 읽고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 이 되면 언어의 맛을 느끼는 즐거움을 누리면 된다. 그다음에 글쓰기는 아주 재미있는 놀이가 될 것이다. 할 말 다하고 살면 답답함이 없지 않은가? 비록 할 말은 다 못 하더라도 내 생각과 고민을 독서라는 물감을 흰색 종이 위에 토해 놓기만 해도, 근사한 작품이 될 것이며


적어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는 알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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