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초등 글짓기의 시작 "내가 직접 고른 책이 읽힌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운동이 몸에 좋다고 하지만 올림픽 선수나 국가대표 선수 운동법이 과연 나에게 맞을까? 쉽게 말해 독서는 운동이랑 비슷하다. 누가 쇠 떵어리를 더 무겁게 한 번 더 들 던 간에 나에게 맞는 운동이 최고의 운동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맞는 독서법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약 여러분이 백화점에서 옷을 쇼핑한다고 가정해보자. 무턱대고 싸다고 사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군데 돌아다니다가 몇 번을 입어보고 정말 맘에 드는 옷을 골라 골라서 살 것이다. 물론 인터넷 쇼핑도 있지만 그래도 발품을 많이 팔아야 나에게 맞는 색이 어떤 건지 어떤 브랜드가 어깨 폭이 더 크게 나오는지 핏을 알 수 있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일단 서점에 직접 가서 옷 쇼핑하듯이 책 쇼핑하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 신간 베스트셀러에 사람이 모여든다고 해서 무턱대고 집었다간 얼마 후에 냄비 받침대로 전락하기 딱이다.
우선 맘에 드는 제목을 골라서 담담하게 목차를 살펴보자. 그러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문구나 단어가 나오면 멈칫한다. 당연히 익숙하고 친숙한 것부터 눈길이 가고 관심이 가게 된다.
자기가 익숙한 주제면 더 깊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혹시 모르는 주제가 나오면 새로운 지적 여행을 위한 출구가 열릴 것이다.
10분 정도만 투자하자. 1페이지를 넘기는데 모르는 어휘가 5개 이상 나오고 눈이 피로하고 현기증이 난다면 아무리 유명한 책이라 해도 덮어 두는 게 현명하다. 지금은 그 레벨을 쫓아갈 때가 아니다. 독서가 초보라면 쉽게 접할 수 있는 가벼운 에세이 나 청소년 소설을 추천한다. 물론 고전 문학작품도 추천 하지만 모르는 어휘가 많거나 이해하는데 난해한 구절이 많다면 읽기도 전에 질려서 두 번 다시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쉬운 책부터 차근차근히 읽어 나갈 필요가 있다. 필자도 독서를 꾸준히 하고 좋아 하지만 만약 10분 이상 읽는데 지루하거나 난해하면 고민하지 않고 바로 덮는다. 그러다가 다시 시간이 나면 열어보다가 그래도 읽히지 가 않으면 덮어버린다. 본인에게 있어서 “총, 균, 쇠”가 그런 책이었다. 무려 완독 하는데 2년 정도 걸린 거 같다. 겨우겨우 읽어내서 얻은 성취감보다는 어떻게 이렇게 어렵게 쓸 수가 있지.. 하는 아쉬움에 남은 책이었다. 책을 직접 고르고 나에게 맞는 책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은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추천 도서는 말 그대로 남이 추천해주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어떤 감정 상태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관심사가 아니라 학생이라면 읽어야 할 책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책은 ‘추천’이 아니라 ‘선택’이 되어야 한다. 본인의 두 눈과 손을 이용해 직접 보고 만지고 읽어보고, 사야 한다는 말이다. 엄마가 사준 옷만 입어서는 “인싸”가 될 수 없다. 내가 직접 쇼핑을 해야 몇 번이고 실패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듯이 쇼핑하듯이 그렇게 서점으로 달려가자. 웬만하면 인터넷 서점보다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오프라인 서점을 추천한다.
오랜 시간 고민하고 집어 든 책이 여러분의 인생의 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 사과를 그려 보아라 ‘ 했을 때 학생들은 과연 어떤 사과를 그릴까? 동화책 속에 나온 마치 백설 공주가 한 입 베어 물고 죽을 거 같은 새빨간 사과를 그리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 사과의 모습은 어떤가? 아마 그런 사과는 추석 선물세트에나 들어 있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보는 사과는 그렇게 빨갛지도 않을뿐더러 자세히 보면 초록색에다가 무늬도 많고 여러 색이 담겨 있다.
여기서 빨간 사과는 ’ 관념‘이다. 사과라면 이렇게 생겨야 한다고 우리 머릿속에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실제 사과의 모습이 바로 ’ 감각‘이다.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지고 맛보는 그 사과다.
그렇다면 어떤 사과가 진짜 사과일까? 백설 공주 사과는 절대 우리가 맛볼 수 없는 사과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왜 우린 백설 공주 사과를 그릴까? 우리 시대는 사과를 실제로 만지는 것보다 아이패드로 먼저 사과라는 단어를 알고 이미지를 먼저 느껴서 그렇지는 않을까? 감각보다는 이미 관념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영상매체의 보급화와 넘쳐나는 sns 이미지들로 인해 실제 맛보거나 가보지 않더라도 이미 가본 것처럼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간다. 그런데 글 또한 이런 현상이 많이 나온다. 문제는 이 경험들이 내가 직접 느낀 게 아니라 생각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명절”이라는 주제로 글쓰기를 해본다고 하자.
당연히 명절 에는 옹기종기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척들끼리 덕담을 주고받으며, 용돈도 받는 멋진 날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아이들이 경험하는 명절은 고향으로 가는 차들로 인해 꽉 막힌 고속도로 휴게소 긴 화장실 중에 오줌을 참았던 기억과 잠시 할머니 집에 들렀다 밥 먹고 올라가서 잠에 취해 비몽사몽 한 기억이 진짜 기억일 것이다. 거기에 설상가상 친척들이 준 용돈까지 엄마한테 뺏겼다면 분명 최악의 명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 명절‘이라는 주제로 글쓰기 주제를 내면 십중팔구 명절이라면 이럴 것이다라는 관념으로 쓰는 게 대부분이다. 선생님께 혼날까 봐 혹은 부모님에게 혼날까 봐 그런 것 일지 모르겠지만 혼날까 봐 자기 검열을 하며 쓴 글이 과연 좋은 글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글도 허락 맡고 눈치 보며 쓴다는 게 씁쓸한 현실 같아 슬프기까지 하다.
경험이 반드시 행복해야 되고 바람직해야 되고 훌륭할 필요가 없다. 때론 비참하고 더럽게 치사하고 억울한 게 인생이 아니던가? 있는 그대로 ’ 도덕적 검열‘을 피해 자기의 감각을 쓰도록 하자.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햇볕도 쨍한 게 바로 그게 진짜 인생이다.
아이들의 글쓰기 교육이 ‘아이들의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에 집중한다면 정작 글쓰기를 통한 어른들의 교육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어 하는 어떤 무엇을 알게 하는데’ 관심이 크다. 교육청이든 학교든 선생님이든 부모든 기존 질서를 정당화하는데 글쓰기가 억울하게 이용된다. 예를 들어 ‘환경보호’ ‘통일 분단’ ‘민족공동체’ 나라 사랑‘ ’ 호국 보훈 ‘인권’ ‘안전 글짓기’ 등 듣기만 해도 아이들의 일상과 거리가 꽤 먼 주제들이다. 당연히 여기서부터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에게 글짓기는 교내외 대회에서 상 받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이미 수상자 또한 정해진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에 글쓰기를 나랑 상관없는 그네들의 잔치라고 생각한다. 이미 아이들은 알고 있다. 누가 글을 잘 쓰고 누가 그림을 잘 그리고 누가 체육을 제일 잘하는지 오랜 시간 동안 보아 오면서 아이들은 수학을 포기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포기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정답은 간단하다 “쓰고 싶은 걸 쓰게 하자”
일단 주제부터가 아이들의 삶과 친숙해야 한다. 과연 환경보호와 양성평등 글짓기가 일상에서 몇 번이나 접할 수 있단 말인가? 대다수 학생들은 집 학교 학원 도서관 거기에 피시방 노래방 정도의 일상 경험을 한다. 주로 모든 경험은 학교에서 일어나고 끝난다고 해도 무방 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주제를 뽑는 게 자연스럽다.
“학교에서 똥을 싸도 되는가”
내가 글쓰기 첫 수업 할 때 항상 제일 먼저 사용하는 주제다. 일단 아이들이 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생까지 웃느라 벌써 5분을 까먹는다. 그리고 눈빛이 달라진다. 저런 걸로 어떻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거지? 호기심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보면서 확신한다. 이미 수업은 성공했다. 일단 아이들이 할 말이 많다. 왜냐 하면 똥을 한 번도 안 싸 본 사람도 없을뿐더러 쉬운 주제이지만 나중에 깊이 들어가면 심오한 철학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찬성 측 의견은 “생리현상이다”"나올 때 안 싸면 병에 걸린다 “"학교에 변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나름 예리하고 분석적인 주장이 나온다. 반대 측 의견은 “학교 변기는 적은데 사람은 많아서 위생적이지 않다” “학교에서 똥을 싸다간 애들에게 놀림거리가 된다” 나름 설득력 있는 주장들이 나온다.
거기에 자신의 경험 “애들이 놀릴 까 봐 참고 참다가 집까지 달려가서 변을 본 아찔 했던 기억”
“누가 용변을 본 후 물을 내리지 않아 당황했던 기억” 이런 사소한 모든 게 좋은 글감이 되고 그야말로 살아있는 글쓰기 재료가 된다.
학생들과 재미있게 수업했던 주제 몇 가지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1. 고자질은 나쁜 것일까?
2. 초등학생 용돈 얼마가 적당할까?
3. 롱 패딩 열풍 어떻게 생각해?
4. 쉬는 시간 10분은 적당한가?
5. 장래 희망 꼭 지금 정해야 하는가?
6. 음식은 꼭 골고루 먹어야 하는가?
7. 친한 친구 하고만 놀기 어떻게 생각하는가?
8. 내 세뱃돈은 어디에?
9. 이성 짝꿍 vs 동성 짝꿍
10. 급식 체 무엇이 문제인가?
11. 게임은 약인가? 독인가?
12. 험담은 왜 하는가?
13. 노 키즈 존 논란?
14. 개는 가축인가? 가족인가?
15. 왜 선생님은 급식을 많이 주는가?
16. 초등학생 화장해도 되는가?
17. 스마트폰은 필요한가?
18. 급식 순서는 어떻게?(선착순, 번호순?)
19. 외모는 중요한가?
20. 우리는 왜 아이돌에 열광하는가?
21. 탕수육 찍먹 vs 부먹
22. 먹방 쿡방 어떻게 생각해?
23. 수박 vs 빙수
24. 빼빼로 데이는 필요한가?
25. 음식은 꼭 골고루 먹어야 하나?
26. 치킨 가격 얼마가 적당?
27.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28. 오늘 저녁 뭐 먹지?
29. 만약 200살까지 산다면?
30. 콜라 없는 피자 vs 무 없는 치킨 이 중 최악은?
모든 주제가 아이들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더 쉬운 말로 말하면 모두가 할 말이 많은 이야깃거리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42.195km 풀코스를 완주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일단 운동화 끈을 묶는 법을 알고, 자기가 좋아하는 트렁크를 입고 당장 뛰쳐나가 동네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체력이 될 때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 누구나 알지만 우리의 급한 교육환경과 현실은 아이들에게 글 쓰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배움이 마찬가지겠지만 그 과정 자체를 즐겨야지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다.
당장 잘 깎인 연필을 한 손에 움켜쥐고, 휜 종이 위에 머릿속에 흩날리는 나의 생각과 경험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적어보자.
지금 여러분은 인간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