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독서 감상문은 어떻게 써야 할까?(책 아몬드)
감정 비우기
(책 아몬드 서평)
2020. 4.23
나보다 글 잘 쓰는 제자 시우
아몬드. 왜 아몬드일까... 처음 이름만 들었을 때 딱 그 생각밖에 안 들었다. 사실 음식 이름으로 소설 제목 짓는 경우를 보기 쉽지 않은데 읽어보기 전에는 그렇게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는 건지는 몰랐다. 어쨌든 간에 가볍게 들었다가 심각해져서 덮는 책들이 종종 있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평범한 성장 소설이었다. 사고로 할머니를 잃은 아이, 잠깐의 실수로 평생 헤어졌던 아이, 마음대로 꿈꾸지 못하는 아이. 하지만 여기에 붙은 한 가지 수식어가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감정이 없는’ 아이. 울고 웃을 수 없는 아이. 할머니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일말의 느낌도 없는 아이. 윤재는 그런 아이였다.
사람들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친구가 내 일기장을 훔쳐봤을 때는 얼굴이 화끈거리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친구에 대한 분노도 생긴다. 실연을 당하면 속이 쓰리고, 그 상대가 다른 남자 혹은 여자와 함께 있는 걸 보면 다시 질투도 느낀다. 운동 경기에서 골을 넣었을 때, 그리고 그 장면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봤을 때의 자랑스러움, 친구에게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의 후련함, 무언가를 잘했을 때 느끼는 뿌듯함.
감정은 인간이기에 더 특별한 것 같다. 인간이 아닌 다른 살아있는 것들이 느끼는 감정은 대부분이 기본적인 욕구와 관련된 것들이다. 더 먹는 것, 더 강해지는 것, 우두머리가 되는 것, 살아남는 것 등이 그들 삶의 목표이자 이유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는 그게 좀 더 복잡하다. 너무 복잡해서 청소년기에는 자칫 그 말을 듣지 않는 마법의 빗자루를 제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인간은 말이라는 것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 말은 거의 대부분이 감정의 산물이다. 같은 말이라도 자신의 현재 상태에 따라 다르다. 같은 대상이라도 기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무섭고 낯설 때는 숨이 막히는 광경이라도 익숙해지면 그림처럼 감상하는 여유가 생긴다.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그래서 치명적 일지 모른다. 윤재의 엄마가 그토록 윤재에게 감정 없는 아이로 보이지 않도록 애를 쓴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런 윤재를 진정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한 건, 엄마도, 의사 선생님도 아니었다. 바로 10년이 넘도록 찾지 못하다가 고등학생이 되어 발견한, ‘문제아’ 곤이었다. 곤이는 일진이다. 세상은 그런 곤이를 다스리고 굴복시키려고 한다. 윤재는 죽음을 앞둔 곤이 엄마 앞에서 곤이 역할을 대신한 계기로 곤이를 알게 된다. 참 묘한 인연이다. 누군가의 대역을 했다가 그 사람과 친해지다니. 아무튼 불 보듯 뻔하다. 곤이는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윤재가 짜증이 났고, 어떻게든 일말의 감정이라도 보기 위해 가학적이다 싶을 정도의 것들을 한다. 그중에서도 나비 날개를 찢어놓고 본인이 후회하는 모습은 우스웠지만, 일반인이 보기에 무서울 수 있는 걸 윤재는 그냥 받아준다. 감정이 없다고 감각까지 못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두려움이라는 걸 모르는 윤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실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은 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곤이는 주변 인물 모두를 변화시켰다. 윤재의 친구가 되었고, 윤재에게 처음으로 지키고 싶은 누군가가 되었다. 그러면서, 어쩌면 윤재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곤이를 부각하기 위한 작가의 설정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왔다.
윤재가 감정을 느끼지 못함으로써 말 해고자 했던 것이, 감정의 중요성인지 아니면 편견 없음인지에 대해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후자에 가깝다. 사회는, 학교는 아이들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들이 기준을 정해놓고 따르라고 명령한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상처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마음의 상처가 잘못된 행동으로 표출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기관’은 ‘개인’을 치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온전한 모습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다른 개인, 그뿐이다. 결국 곤이는 윤재에게 말했다. 아빠라는 사람은 나를 모른다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고.
결국 윤재는 남들보다는 부족하지만 감정을 얻게 되었다. 흔히들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타인의 마음을 더 잘 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때로는, 먼저 다가가 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문 앞에 놓인 장애물을 치워주고 말없이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하다.
아마도 윤재의 모습이 부정적으로만 보이지 않았던 건 그 과묵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소소함
2020.4.20
나보다 글 잘 쓰는 제자 지예
모두가 웃고 있는 가운데 웃지 않는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윤재.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우리는 시시각각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누군가 다치면 울고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음악상을 타면 기쁨을 느끼는 등 다양한 감정이 있다. 우리는 항상 감정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하는 생각 중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감정에 대한 생각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떨까? 감정이 없다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을 것이다. 말을 할 때 내 기분과 상대방의 기분을 알아가면서 대화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내 기분과 상대방의 기분을 모른다면 친구 관계가 어려워진다. 친구가 유머를 하면 그 유머에 따라 반응을 해주고 같이 맞춰주어야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떤 일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어떠한 판단을 할 때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주면서 말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숨겨서 하지 못했던 말을 시원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느끼지 못했던 것을 무덤덤하게 사실을 말할 것이다. 우리는 감정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뉴스를 볼 때, 친구들이랑 놀 때 등등이다. 우리도 한 번쯤은 감정을 느끼지 않을 때가 있다. ‘내 일이 아닐 때’, ‘나랑 상관없을 때’이다. 감정은 내가 직접 경험해보아야 정확히 알 수 있다. 누군가 살인 사건을 당했을 때 ,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드는 생각은 ‘불쌍하다’, ‘슬프다’.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들은 더 많은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 것이다. 내가 직접 경험해보아야 할게 되는 감정. 하루에 몇 번씩 드는 생각과 감정은 어떤 사람에게는 부러움에 속할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이 하나에도 부러울 것이다. 윤재 엄마가 부러워하는 평범. 내가 생각하는 평범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과 비슷한 것이다.
평범은 가장 쉬워 보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다. 누군가 생각하는 부러움이 평범이다.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게 하는 건 평범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애들과 같아지고 싶고 애들이 다 갖고 있는 것을 가질 때 나도 다른 애들이랑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여러 애들이 갖고 있는 것을 나는 갖고 있을 때 소외감을 느끼고, 갖고 있을 때는 이것이 이만큼 중요한지를 모르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 없어지면 불안감과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다 평범을 원한다. 어떤 것을 원하다가 안되면 평범으로 가는 길이 슬프면서도 행복하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은 장난감이 아닌 평범. 애들과 같은 것을 원한다.
가장 작지만 가장 큰 것.
소확행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이 누구한테는 엄청난 부러움이고 소원이다.
위의 두 글을 비교해보자. 어떤 글이 잘 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어떤 기준으로 잘 쓴 글을 판단할 수 있을까? 저마다 경험과 관점이 다르고, 느낀 부분도 다 다르다. 하지만 수학처럼 점수를 매긴다면 어떤 기준으로 평가를 해야 할까? 첫 번째 글은 “감정”과 “편견” 중점을 두었고, 두 번째 글은 “평범함”이라는 단어에 무게를 두었다. 굳이 기준이라고 이야기하자면 아마 어떤 글이 더 독자에게 공감이 가는 글인지가 기준이 되겠다. 하지만 이 역시도 독자의 나이와 성별 환경 기분에 따라 공감 가는 포인트가 다 다를 수가 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마치와 새와 물고기를 비교하듯이, 공정한 룰을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글의 공통점은 있다. 독서감상문인데, 줄거리가 별로 들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보통 학생들에게 독서감상문 과제를 내주면, 주인공이 어떤 사건을 겪고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됐다더라 쓴 다음에는 느낀 점 한 줄 채운 후 과제를 제출한다. 아마 대다수의 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독서감상문을 쓴다. 줄거리 요약하는 글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학생들이 비슷비슷한 글을 써내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과 경험이 모두 다르다고 했는데, 어째서 대다수의 아이들의 글은 비슷할까? 그 원인은 바로 “줄거리 요약”에 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는 책을 안 읽고 요약 편집본을 읽었다는 뜻이라 봐도 무방하다. 인터넷 검색해서 쓰윽 긁어서 온 글은 귀신같이 티가 나게 돼있다. 필자의 경험에서 전혀 느낄 수 없는 추상적인 문체와 뻔한 도덕적인 스토리가 담겨있다면 100프로다. 핸드폰 티브이 광고도 제품의 성능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설명하지 않는다. 배터리가 몇 시간 가고 용량이 어쩌고, 몇 기가의 데이터를 처리한다. 이런 식의 마케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물건이 넘쳐나는 지금 이 시대에는 사람들이 원하는 건 다른 물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내가 그 제품을 꼭 사야 하는지 타당한 이유가 아니다. 살면서 우리가 얼마나 꼭 필요한 물건만 산단 말인가? 재미있을 거 같아서 신기해서 특이해서 사는 게 더 많지 않은가? 글도 마찬가지다. 검색하면 흔하게 나오는 글을 누가 읽고 싶어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써야 할까?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공감이 가고 쉽게 술술 읽히는 독서감상문을 쓸 수 있을까?
필자도,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정답이 아닌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내가 글을 쓸 때 어렵게 느껴진다면, 읽는 사람도 어려울 것이란 사실이다.
항상 학생들에게 주변의 경험과 자신의 일상에서 최대한 소스를 뽑아내라고 말한다.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으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도 한 번쯤은 감정을 느끼지 않을 때가 있다. ‘내 일이 아닐 때’, ‘나랑 상관없을 때’이다. 감정은 내가 직접 경험해보아야 정확히 알 수 있다. 누군가 살인 사건을 당했을 때 ,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드는 생각은 ‘불쌍하다’, ‘슬프다’.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들은 더 많은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 것이다. 내가 직접 경험해보아야 할게 되는 감정..
- 감정이란 키워드에 학생이 직접 느끼는 생각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예시는 본인의 경험 속에서 한 번쯤 겪어볼 만한 일이란 점에서 비슷한 나이 때의 독자에게 공감을 줄 수 있다. 초등학생 6학년의 수준은 다름이 아니라 초등학생 6학년이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수준이 된다. 만약 예시가 인터넷 기사나 속담 인용문 혹은 전문가의 말을 퍼와서 예를 들었다면, 물론 훌륭한 글이지만 재미있는 글이 되지 않는다. 왜냐 이미 비슷한 글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친구가 내 일기장을 훔쳐봤을 때는 얼굴이 화끈거리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친구에 대한 분노도 생긴다. 실연을 당하면 속이 쓰리고, 그 상대가 다른 남자 혹은 여자와 함께 있는 걸 보면 다시 질투도 느낀다. 운동 경기에서 골을 넣었을 때, 그리고 그 장면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봤을 때의 자랑스러움, 친구에게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의 후련함, 무언가를 잘했을 때 느끼는 뿌듯함.
-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주장에 대한 예시로 본인의 일상 속에서 경험한 예시를 나열하고 있다. 중학생이 경험할 수 있는 사례를 잘 찾아서 담아냈다. 이렇듯이 일상과 주변에서 학생 본인의 경험을 끌어내는 연습을 충분히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점은 나도 어렵다. 왜냐하면 무의식적으로 내 주변의 경험을 미화시키거나 왜곡하기 때문이다. 잔뜩 힘이 들어가 있고,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편하게 쉽게 나오지가 않는다. 인상파 화가 세잔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한다. 왜곡과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나타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아직은 돈을 벌지 않아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서 인지 힙합 랩 같은 과감한 문장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만약 이때 "이런 부분은 좀 그러니까 빼자"라고 도덕적 검열을 한다면 심의와 규정을 지킬 수는 있으나, 참신한 표현력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예의 있는 바른 글은 도덕 교과서로 족하다.
또 한 가지 팁을 말하자면,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를 한 개 정도만 정하라는 점이다. 작가가 의도했든 안 했든,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고, 아는 게 많고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많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글을 쓰게 되곤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맛있는 요리는 무엇일까?
몸에 좋은 갖은 재료를 몽땅 넣고 끓이면 되는 것일까? 한약재에 각종 제철 과일과 고기, 생선, 최고급 말 돈 소금에 캐비어 가루, 송로버섯 등등등 넣고 끓이면 어떻게 될 까? 몸에는 좋을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그 맛은 매우 쓸 것이다. 더군다나 식당에서 판다면 단가가 안 맞다. 떡볶이 팔 때 특별 소스로 인삼을 갈아 넣을 수는 없다. 떡볶이는 떡볶이다워야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아는 게 많고, 쓸 내용이 많다고 모두 다 적을 필요는 없다. 분명 그렇게 쓰다 보면 지친다. 우리는 백과사전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위의 두 글 모두 “편견” “평범함”에 키워드에 초점을 두어 자신의 느낀 점을 풀어냈다. 할 말이 많으면 꼭 실수를 하는 것처럼, 주요 키워드 하나에 승부를 걸자.
김치만 맛있어도 밥은 잘 먹는다.
마지막 필살기 결론 쓰기
그러나 때로는, 먼저 다가가 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문 앞에 놓인 장애물을 치워주고 말없이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하다. 아마도 윤재의 모습이 부정적으로만 보이지 않았던 건 그 과묵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장 작지만 가장 큰 것. 소확행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이 누구한테는 엄청난 부러움이고 소원이다.
결정적 한마디 바로 마지막 문장에서는 모든 뇌세포를 발휘하여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하고 멋들어지고, 쓰러질 만한 임팩트를 주어야 한다. 마치 어벤저스에서 아이언 맨이 손가락을 튕기며 “나는 아이언 맨이다” 했듯이, 명장면을 연출해야 한다. 음식에 비유하면, 설탕과 꿀이 잔뜩 발라진 디저트라 할 수 있다. 너무 달아서 더 이상 음식 생각 안 나게 그렇게 양도 적고 강렬한 그것!!
글쓰기 첨삭 지도를 할 때 항상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결론이다. 잘 썼는데 뭔가 아쉽다는 게 느껴진다면 십중팔구 영혼이 담긴 한 문장을 아직 못 찾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문장은 어떻게 찾을까?
나도 잘 안돼서 뭔가 레시피를 주고 싶지만, 딱히 뾰족한 방법은 없다.
그저 나올 때까지 썼다 지웠다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