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구체적 사례에서 추상적 개념으로
"구체적 사례에서 추상적 개념으로”
새벽의 고요한 공기를 깨는 기분 나쁜 자명종 소리가 울린다. 무척 시끄럽지만 베개로 귀를 막아본다. 참다못해 일어나 자명종을 신경질적으로 눌러 끈다. 그러고는 다시 돌아가 잔다. 불과 3주 전까지만 해도 나의 아침 일상이었다. 아마도 일생에 이런 경험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나 자신에게 너무나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매번 일찍 일어나겠다고 다짐해 놓고서 막상 새벽이 되면 자 버리는 ‘나’의 의지와 열정이 거기까지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어떤 글귀를 인터넷에서 보았다. “알을 깨고 나오라.” 이 말은 나에게 비장함과 용기를 주었다. 하지만 나는 섣불리 감정을 앞세워 행동하지 않았다. 대신에 매번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데이터가 쌓이면서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원인 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공통적인 패턴이 있었다. 바로 내가 자명종을 너무 손이 닿기 쉬운 곳에 놓아두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으로 치고 자는 습관이 반복된 것이다. 우선 이것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자명종을 책장 가장 윗 칸에 올려놓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도 나는 이불의 따뜻함을 이기지 못하고 도로 잠이 들고 말았다. 나는 다시 한계를 체감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절대 ‘포기’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시 패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해결책을 찾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이 너무 추웠던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답은 따뜻한 물을 몸에 뿌리는 것, 즉 몸을 일으키자마자 화장실에서 따뜻한 물로 세수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둘째 날, 나는 돌같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수도꼭지를 트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세수를 하고 나니 의식이 좀 들었다. 그리고 어제 받은 숙제를 풀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참 오랜만에 느끼는 새벽의 고요함은 오히려 나를 공부에 더 집중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만큼의 시간을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힘든 일, 시간이 필요한 일에 쓸 수 있는 나만의 시간 관리법을 찾아 나가기에 이르렀다. 나는 오늘도 많은 친구들로부터 밤을 새워 공부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자랑 반 생색 반의 말에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들이 밤의 어둠 속에서 공부할 때, 나는 새벽의 ‘밝은 어둠’을 즐기니까 말이다.
- 이시우-
“새벽의 고요한 공기를 깨는 기분 나쁜 자명종 소리가 울린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 강력한 이끌림에 다음 문장이 벌써 기대가 된다. ’ 자명종 소리에 깨서 일어났다’라는 평범한 문장에 생명력을 더한 문장이다. 읽는 순간 독자는 머릿속에 새벽의 공기와 자명종 울리는 아침에 눈앞에 그려지듯이 떠오른다. “베개로 귀를 막아보며 신경질적으로 자명종을 끈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독자는 귀신같이 알 수 있다. 이 학생은 진짜 자명종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깼구나.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이게 바로 첫 문장이기 때문이다.
보통 ’ 그릿‘에 관해 쓰라고 하면 먼저 ’ 그릿‘ 뜻에 집중하게 된다. 대충 성공하려는 열망과 끈기구나 라고 생각하고 이에 관련된 경험을 억지로 끌어다 붙인다. 끈기 있게 해서 영어 단어를 꾸준히 외웠다거나 피아노 연습을 해서 대회 나가서 상 받은 경험, 체육 시간에 줄넘기를 하나 더한 경험을 주로 가져온다. 그런데 읽다 보면 이게 진짜인지 거짓인지 구분이 안 갈 때 가 있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글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보고 쓴 것은 아니지만 왠지 다음 글은 안 읽어봐도 똑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도대체 어떤 이유일까?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 그릿‘에 관한 경험이 없어서 대충 지어서 썼기 때문일까? 위 학생의 글을 요약해보면 아침에 일어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이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글이 생명력 있고 문장 하나하나가 단단해 보인다. 일단 모든 사례와 예시가 자기 본인의 이야기다. 어디서 유명 작가의 말을 인용하거나 인터넷에서 퍼온 글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나는 돌같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수도꼭지를 트는 데 성공했다.”
이 문장이 살아 있는 건 마치 문장 표현이 식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했다 ‘라는 사실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건 바로 묘사의 힘에 있다. 묘사를 할 수 있는 것 도 학생 본인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묘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낼 때 나오는 것이지, 억지로 짜 맞추려고 하는 순간 금방 들통이 나기 마련이다.
“그들이 밤의 어둠 속에서 공부할 때, 나는 새벽의 ‘밝은 어둠’을 즐기니까 말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아이는 이미 나를 능가했구나 를 느꼈다. 사실 이 정도의 표현력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본인의 문학적 감수성과 치밀한 관찰력에 기반 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시적인 표현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죽었다 깨어나고 힘든 표현이다. 왜냐 하면 먹고살기에 바쁜 어른들에겐 하늘이 저러한 표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릿’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을 제시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본인 만의 경험을 통해 나타내었다. 그것도 ‘있을 법한’ 경험이 아닌 별거 아니 지만 ‘진짜 있는’ 일상에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법을 이미 터득했으니 나는 이미 성장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외치고 있지 않은가?
“어젯밤 배가 고파서 치킨을 배달시켜 먹었다.”
→ 지금 시간 10시 55분 밥은 먹었지만 배가 고파오는 시간이다. 그냥 잘까 시킬까 오늘도 고민한다. 그러면서 어느덧 내 손가락은 스마트폰을 열고 거침없이 요기요 배달 앱을 누르고 있다. 친절한 세상이다. 손가락 하나로 치킨이 오다니.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똑똑하는 소리는 나의 허기짐을 아는 듯이 아저씨의 분주한 목소리가 나를 부린다. “치킨이요!!” 언제 들어도 그 소리 참 곱다 “
”집에 돌아오니 강아지가 벽지를 뜯고 난장판을 만들었다. “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역시나 불안했다. 나의 늦은 귀가에 항의라도 하듯이 그 녀석은 오늘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왜 이제야 왔냐고!!
왜 나를 혼자 두고 외롭게 했냐고 너 없는 시간 동안 난 벽이랑 대화를 하고 있었다고!!
”출근길에 앞차가 끼어들어서 사고가 날뻔했다. “
→7시 58분 넘어가는 순간 기흥 ic는 이미 전쟁터다. 저마다 사냥감을 찾으러 떠나는 맹수들처럼 그렇게 먹고살기 위해 회사로 전쟁터로 서로 먼저 달려간다. 그러다 사냥감을 먼저 봤는지 내 앞에 당당히 들어온 너 때문에 내가 오늘 사냥감이 될 뻔했구나.
”심심하고 외롭다 “
→ 카톡 친구는 168명인데 하루 종일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보면서 친구들 프사를 하나씩 쳐다보고 있다.
”보고 싶어 “
→ 지금 내 눈앞에 네가 없지만 눈을 감을 때마다 네가 보여
이처럼 ‘묘사’는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때 비로소 쓸 수가 있다. 외롭다는 추상적인 개념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는 ‘구체적 행위’를 통해서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과 에피소드 모두가 훌륭한 글감이 될 수 있으며 지금 내가 여기에 느끼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쓰다 보면 어느새 감정표현을 하고 있는 내 손가락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