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제이티

잠은 신기하다. 고통과 번뇌를 한 번에 않으면서 어제의 중요한 일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밀어내는 힘이 있다. 자고 나면 어른이 된다는 말은 사실인 듯하다. 어깨 근육의 긴장을 빼면서 눈을 감고 있으면 내가 여기에 원래 없었던 사람이라 느껴진다.


예전에 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생각했기에 유일하게 나에게 가진 자원이 '시간'이라고 여긴 만큼 이 귀중한 에너지를 감히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깨어있는 시간이 아무렴 자고 있는 누군가의 시간보다 나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잠을 오래 자거나 멍하니 시간을 보내면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 죄까지는 아니더라도 막연히 고여있고 머물러 있다는 불안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하다못해 책이라도 한번 펼쳐야 할거 같고, 뉴스 기사라도 한 번 더 클릭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시간이 조금이라도 비면 그 떠있는 시간은 나에게 여유가 아니다. 도태될 거 같은 뒤쳐질 거 같은 기분. 그렇다고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닌데 말이다. 난 분명히 남과 다르지만 그렇다고 남들과 다를 바도 없다. 모든 불행이 나한테만 일어날 일도 없으며, 그렇다고 행운이 나한테만 찾아오지도 않는데, 자고 있으면 그 시간에 누군가가 내 먹이를 낚아챌 것만 같았다.


묘하게 요새 잠에 드는 기분이 좋다. 통증도 사라지고 고민도 잠시나마 사라지는 느낌이 싫지 않다. 무엇보다 자고 나면 어제의 번뇌가 그렇게 쓸모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분명 내 일인데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어제의 나를 관찰하는 듯한 느낌. 고군분투하는 무대의 주인공을 바라보는 객석의 많은 사람 중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라 할까? 자는 동안 진짜로 영혼이라도 빠져나가는 것일까?


생각이 복잡하고 머리가 깨질 거 같고, 한 숨이 멈추지 않을 때 일단 눈을 꼭 감고 숨을 내뱉으면, 아침이면 기억나지 않는 의미 없는 장면들이 과거의 기억들과 포개어진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려고 기억해 내려는 순간 그 꿈은 저만치 멀리 가버린다. 전혀 상관없는 장면과 기억이 뒤죽박죽 섞이다 보면 회색이 된다. 어제까지 파도가 오르락내리락 심한 바다였지만 거짓말처럼 바람 한점 없는 고요한 바다처럼 말이다. 그렇게 어쩌면 어제의 나를 죽이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리셋 버튼이 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올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이제는 깨어있을 때 뭐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을 고쳐볼까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대신 잠을 더 깊고 편하게 잘 수 있는 사람이 돼보고 싶다.


쉽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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