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의 마지막

by 제이티

12월 31일이다.. 새해가 내일모레가 아니라 오늘 밤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한 살 더 먹는 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이고 내일이라 해도 숫자 하나 바뀐 거에 불과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고 세상은 나를 그렇게 받아주지 않는다. 사람은 나이에 맞게 산다고 하지 않던가? 여전히 나는 10대의 영혼과 혈기를 가지고 있지만 몸은 그렇지가 않을 때가 있다. 혹은 마음은 청춘이지만 무모하고 철없던 그때의 모습이 이제는 보이지가 않는다. 마음보다 몸이 앞섰던 생각보다 감정이 먼저였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결말을 알고 보는 드라마처럼, 벌어지는 일이 그렇게 기대되지도 슬프지도 않은 무덤덤한 어른이 마음은 더 편한듯하다. 작은 거 하나 별거 하나에 울고 웃었던 그때가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조금 덜 아픈 지금이 나은 점도 있다.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매일 뜨고 지는 해를 보고, 다짐을 하고 떠나는 해를 아쉬워한다. 첨단과학 기술에 AI에 일자리를 대신하는 지금에도 여전히 태양신의 위엄은 여전한듯하다. 올 '해' 새 '해' 모두 기준이 태양인 이유가 분명히 있으니까 말이다 자고 나면 어른이 된다던 잔나비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를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태양이 아닐까 싶다. 시간의 절대적 기준이 되는 태양이 몇 번 뜨고 지면 그간 일어났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때론 그렇게 찌글찌글하고, 잔혹하고 무엇보다 불안했던 나날들이 또 그렇게 슬프게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올해 있었던 중요한 일은 꼽으라고 아이들에게 과제를 내주었지만, 정작 나의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니 머릿속이 하얘진다.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기준도 모르겠다. 그것보다 별로 기억해내고 싶을 만한 사건이 없었는지, 아니면 반대로 기억하기 싫어서 그런 건지도...


분명, 많은 일이 있었고, 수많은 인연이 스쳐갔다. 운동도 많이 했고, 책도 많이 읽었다. 무엇보다 술도 많이 마셨다. 분리수거할 때 텅 빈 병과 캔을 바라보며, 이렇게나 퍼마셨구나 하는 자부심과 공허함이 온다. 그런데 어느새 일상이 돼버린 듯한 비슷비슷한 하루가 많아져서 일까? 특별하지도 않고 기억에 나지도 않는다. 매일 밥먹듯이 일어난 일 분명 그때는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일조차 평범한 나날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이 먹으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이 맞는듯하다.


그렇다. 기억에 남는 일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대충 산 것도 아니고, 부지런히 살았는데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억을 별로 하고 싶지가 않나 보다. 과거의 불운과 행운이 내 발목을 잡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기억으로 지웠나 보다. 마음에 담아 놓고, 속앓이 했던 일과 불안하고 잠을 이루지 못한 날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힘든 일이었나? 싶기도 하다. 브런치에 올해 쓴 글과 올리지 못한 글만 세어봐도 주기적으로 고민과 번뇌가 찾아왔는데 놀랍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작가와 독자가 만나서 책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오해와 실망이 찾아온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이 썼던 글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독자는 자신의 입맛에 따라 해석한 글 때문에 두 사람은 처음부터 몰랐던 사람보다 실망을 하게 된다고 한다. 기억하는 사람과 망각하는 사람이 만났을 뿐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독자에게 기억해달라고 글을 쓰는 것일까? 그런데 정작 자신의 글을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할까? 그래서 가끔은 내가 아는 내 모습보다 남의 나를 보는 '나'가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는 게 좋은 글이겠지만, 가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독자들이 내 글을 읽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지금 끄적끄적 거리는 이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몇 번의 스크롤에 단숨에 읽어버리는 의미도 재미도 없는 한 쪼가리의 글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내가 기록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올해의 마지막 날처럼 이 글도 그저 그런 순간이 되겠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특별한 날이고 싶다. 내일 뜨는 해는 분명 나를 더 어른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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