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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Jun 16. 2022

생각과 감각

머릿속을 떠도는 바람처럼 때론 빗방울처럼 아무 이유 없이 뜬금없이 가시처럼 찌르고 가는 생각과 기억들. 분명 내가 지금 여기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때론 스무 살 때로 혹은 내일로 1년 뒤로 데려가는 타임머신.

생각의 끝은 언제나 고통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알 수 없고 딱히 근거도 없는 이 유령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5학년 국어 교과서에서도 나온다. 항상 말과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하고 말하라고,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진 뒤에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유는 따진다. 그런데 딱히 이유를 찾지도 못하겠고 말이 먼저 나갈 때가 어디 한 두 번인가? 그리고 후회하는 시간과 자책하는 밤이 나를 찾아온다.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보면 언제나 생각은 생각대로 계획은 계획대로만 남을 뿐 방학생활계획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은 원래 그렇게 이성적이지도 않는데 억지로 짜 맞혀져 문명에 적응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은 아닐까? 애들을 관찰하다 보면 혼나는 애는 또 혼나고 싸우는 애는 또 다음 날 매일 싸운다. 왜 그랬냐고 물어보는 게 입이 아프게 그 아이의 입에는 이른바 합리적이고 납득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나오지 않는다. "그냥" "갑자기" "기분이 나빠서" 그랬다는데, 진짜 맞는 말이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과연 생각과 계획인지   없는 충동인  점점 헷갈린다. 전두엽이 지배하는  인간의 행동일까? 아니면 타고난 기질이라는 나침반이 정해진대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인생일까? 살다 보면 계획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언제나 돌발변수와 예상치도 못한 사건이 생기고 그로 인해 후회자책이라는  상실에 빠진다. 애초에 계획하는 것도 후회하는 것도 생각과 관념의 영역이라면 이게 고통으로 이어진다면, 생각 없이 사는  고통 없이 사는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언제나 생각의 9할은 쓸데없다. 일어나지도 않고,  괜히 불안만 가져오고, 나의 몸은 여기에 있는데 정신을 과거에 가져다 놓아서 만지지도 잡을 수 도 없는 무지개를 잡게 한다. 이상이 높은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는데, 별을 보느라 밥 먹는 것도, 비바람이 오는 것도 모른 채 그렇게 서서히 죽는다고..


모든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끔찍한 트라우마를 않고 현실을 살아간다.  기억에 질식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인다. 그러다가 해가 지고 근육이 움직이지 않는 밤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에 잠긴다. 티브이를 보다가도,  밖을 보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분명 몸은 여기 있는데 말이다. 영혼이 있다는 말은 실제로 맞는 말인 듯하다. 분명  몸인데   같지 않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영혼은 시간을 거슬러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분명하다. 과거에서 미래로 영혼이 여행을 다닐 때마다 시간낙타의 등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낙타의 등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지울 수 없는 과거와 트라우마 혹은 내일에 대한 불안감 그것보다 행복했던 시간과 장소에 대한 추억이 더 있을 듯하다. 그 아름다운 추억이란 짐을 차마 버릴 수 없기 때문에 시계의 바늘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현재를 살라는 말은 어쩌면 지금 보이는 곳에 집중하라는 말. 다시 말해 내 몸의 감각과 신경과 호흡에 집중하라는 말 같기도 하다. 사진첩을 자주 열어 볼수록 시간은 흘러가지 않는다. 사진과 기록 추억이 아니라 저주일 수도 있겠다. 다시는 못 올 순간이니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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