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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May 25. 2022

망설임은 사치

영원한 건 없다고 분명히 알고 있지만 사람은 시간이 영원한 줄 알고 살아간다. 나 역시 똑같은 일상에 하루하루 어제와 비슷한 날을 지내다 보면, 매일 하는 일과 매일 하는 루틴이 어느새 포개어져 권태와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지금 글을 쓰는 수요일은 지난주 수요일과 과연 같을까? 비슷하지만 같지 않다는 것을 않다. 지난 주보다 옷차림을 더 가벼워졌고, 어제 뭉친 허벅지는 오늘은 조금은 살 것과 같다. 이제는 가습기를 틀지 않고 자도 되고 온수매트는 정리하고 에어컨을 틀고 자야 하는 때가 왔다. 이맘때 쯔음 수박이 나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 수박은 꼭 이때 먹어야 한다. 하우스 수박이라 틀림없이 달고 시원하다. 그리고 수박은 참고로 이마트 수박이 실패 확률이 낮다. 동네 마트나 홈플러스는 성공 확률이 반반이다. 


비슷하게 살고 있고 먹는 것도 어제 먹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데, 오늘이 대체 뭐가 특별할까? 책일 읽다 보면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고,  매 순간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솔직히 공감이 가지 않았다. 매년 고학년만 하는 나는 이제 눈을 감고도 수업을 할 수 있으며  아이들이 무슨 문제를 어려워하는지 혹은 틀리는지 패턴이 보인다. 그런데 같은 수업을 했는데도 반응은 언제나 다르다. 별거 아닌 거에 웃는 아이가 있는 반면 죽어라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학생이 나오기 마련이다. 처음엔 내가 잘못했나? 아니면 어디를 수정해야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책 속의 말처럼 똑같은 내용 똑같은 '나'가 수업을 해도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죽어도 사람은 안 변하고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하는데 그 말도 일리는 있지만 맞는 말은 아닌 듯하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람은 유해지고 생각이 바뀌는 듯하다. 비슷한 상황과 경험 속에서 시행착오 끝에 나만의 요령과 정답을 찾은 것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일 뿐 그게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점점 겁이 많아지고 두려워지고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은 과거의 상처의 아픔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달리다가 신발이 작아서 물집이 잡힐 때 고통을 알기에 발에 테이핑을 하고, 매운 것을 먹고 고생한 적이 있기에 이제 불닭 같은 음식은 시도하지도 않는다. 무심코 뱉은 말과 생각 없는 나의 행동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기에 조심하려고 한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는다. 어제와 비슷한 실수를 매일 반복하지만 그렇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지도 않다. 어제 보다 더 망설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를 때 패기와 두려움을 모르는 젊은 날의 취기와 객기로 계속 그렇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속이라도 편하겠지만 이제는 사랑과 열정이 가끔은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섣불리 일도 인연도 관계도 애를 쓰지 않으려 한다.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은 같을 수 없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이라면, 반대로 남의 뜻대로 내가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생각만 가득했던 몇 년 전의 '나'와  이제는 별생각 없이 운동만 하는 '나'가 같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안다. 망설이는 것은 시간을 잃는 것이고 꽃 피울 수 있었던 감정을 잃는 것이고, 내 인생의 장면을 하나씩 지우는 것이다. 뭘 해도 후회하고, 반성하고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지도 않다. 모든 사건의 책임을 나로 돌렸던 쓸데없는 죄책감과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 망설였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나의 소중한 시간들이 떠오른다.


우리 반 아이가 시간은 되돌리라고 있는 게 아니라 현재 '시각'을 보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한다.


현재만 보고 사는 게 인생을 구멍으로 빠뜨리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이다.


까먹고 잊어버리고, 훌훌 털어버리고, 매일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 하고 싶다. 오늘도 뜨는 달이 어제의 달이 아님을.. 지겹다면 지겹고 특별하다면 특별한 평범한 하루에 왠지 모를 답답이 밀려온다면 이제는 주저하지도 망설이지도 말고  


무엇을 하든 그냥 해야겠다.         


심각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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