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채윤
실험을 해 보았다. 10만 원을 2명한테 나눠가지라고 해 보았다. 1번째는 나눠서 가질지 말지 생각해 보았다. 이때 상대방은 거부권이 있다. 그럴 때 거의 5:5로 나누고 그걸 수락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9:1로 해서 수락한 사람과 거절한 사람이 있다. 이때 수락한 사람은 대체 어떤 것 때문에 수락을 한 것일까?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꽁물이라도 얻기 위해서 일까? 이런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남의 이익을 막기 위함이나 불공평해서라는 이유로 다 같이 못 받게 한 사람도 있다. 여기서 불공평함이란 무엇일까? 9:1,8:2,7:3,6:4 같이 남보다 내가 더 적어서 이건 잘못 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남이 나보다 못났다는 것 상대방이 욕심쟁이이라는 것 하지만 꽁물이라도 받을빠엔 동반자살을 하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사촌이 잘되면 우리 집도 잘 될 수 있는데 왜 배가 아플까? 막상 나도 그렇게 된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지금 내 생각은 그렇다. 작은 것이라도 받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 합리적인 것을 버리는 게 남과 나의 진짜 불편함 아닐까? 그 불공평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나한텐 굴러오는 큰 깨달음을 버리는 것과 같다. 성공을 하고 실패를 할 수도 있고 실패를 하고 성공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이것은 큰 깨달음이라는 성공과 이것 얻을 수 있었던 성공 같은 실패를 버린 것이다. 나 자신은 이게 맞다는 성공을 주장하겠지만 반대로 조금이라도 얻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패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둘과 다른 실패와 성공 둘 다 아니다는 의견을 제시할 것이다. 아무도 없는 혼자 외톨이 같은 팀이지만 나의 의견은 지금보다 다음이 더 발전할 수도 있다. 그것은 모르는 일이지만 그것을 기다리는 게 내일 일 수도 있고 그동안 발전을 위해 노력해 계획을 짜서 발전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맞이 할 것이다. 도구를 써서 이기는 것보다 그냥 이겨보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알수록 내 한계는 점점 올라갈 것이고 성공이 많겠지만 올라갈 수 있는 데가 정해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구 없이 하는 것은 실패가 많겠지만 한번 성공할 때 크게 성장한다. 나는 그때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서 지금 이걸 쓴 것인데 진짜 어떨까? 홀릭이란 책에선 도박 중독이라는 것이 나왔는데 거기서 한번 성공할 때마다 불꽃이 터지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왔는데 나는 못 느껴봐서 모르겠지만 게임에서 한판을 성공했을 때 퀘스트 5개가 연속으로 깨지는 느낌일까? 나는 그때 짜릿함을 느꼈다.
최후통첩 게임은 편 가르기, 분열, 독재의 방법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나랑 같은 사람이지만 나보다 높은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장난감처럼 이용당하고 있다. 그 때문에 나는 언젠간 비싼 장난감이 돼서 성공하거나 쓰레기통에 버려진 장난감이 될 것이다. 남들은 이렇게 되질 않으려고 열심히 하는 것 일 수도 있다. 우리는 성장해야 한다. 성장이란 진짜 나이를 먹거나 진짜 성공한 것이 아닌 도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패를 경험해봐야 성공을 아니깐 말이다.
우리는 이성보다 감정을 더 중요시해서 망한다. 내가 카페 주인인데 어느 날 예쁜 아르바이트생 때문에 사람이 많아지자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그 예쁜 아르바이트생 말만 따랐다. 그래서 기분이 나빠서 해고를 시켜서 망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감정보다 이성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