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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Feb 23. 2023

왜 열심히 살아야 할까’


“실로 기업이 공장을 대체하듯 영원히 끝나지 않는 트레이닝이 학교를 지속적인 통제가 시험을 대체하고 있다.” -들뢰즈


학교에서 선생님은 어떤 학생을 좋아할까? 간단하다. 지금 당신의 생활기록부를 다시 읽어보자. 우리가 좋아하는 단어 “적극적이고 발표를 잘하며 교우관계는 원만하다.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몇학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단어가 아마 적혀져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어를 본적있는가?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음. 적극성이 부족하고 열심히 하는 과목이 없음.’ 대단한 말썽꾸러기가 아니고서야 어떤 담임도 저런 용감한 생기부를 적지 못한다. 민원도 있지만 왠지 저런 단어는 학교에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더 크게 이 사회에 적합하지 않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설여 진다. 성실 근면 열심히 이런 단어는 긍정적인 늬앙스가 풍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며 땀은 정직하고, 노동은 값지다 등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하고, 자기계발을 끊임없이 하며 사는게 미덕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까? 최선을 다하면 보람과 성취감 때문일까? 아니면 어릴적 읽었던 동화때문일까?


누워있는 내 모습이 한심해 보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쓸모없는 존재로 느껴지는게 과연 본능적인 것일까? 물론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해야 사냥에도 성공하고 농사를 짓고 밥도 얻어 먹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사자는 사냥할 때만 움직이고 나머지 시간은 잔다. 심지어 다른 동물들은 추우면 겨울잠을 자지 않는가? 그렇다면 인간은 대체 왜 열심히 살아야 할까? 심지어 휴식도 재충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가? 열심히 살고 안 살고가 나의 단순한 선택이라면 언뜻 보기에  통제가 아닌 선택의 자유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보이지 않는 통제가 우리를 계속 압박한다.

더 열심히 살라고.. 그런데 왜 열심히 살아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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