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관계

by 제이티

정서윤


편지와 카톡을 사용하는 사람은 둘 다 뇌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편지를 기다릴 사람 없이 카톡 한 번 보내면 되는 세계는 뇌에 "참을성"이라는 단어가 삭제된다. 반면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은 "즉각적"이라는 단어가 삭제된다.


카톡은 심사숙고할 그 시간이 너무 짫다. 그리고 빠르다. 마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더욱 빠르게 전할 수 있듯이. 하지만 카톡을 사용한 사람의 뇌는 감정조절을 하지 못한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참을성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라도 거슬리는 게 있으면 기능을 추가한다. 한마디로 "발전된 사회에 감정분노조절장애"라는 뇌의 구조이다. 반면 편지인 사람은 심사숙고하고 고칠 수 있으며, 기회를 제공한다.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이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편지는 너무 느리다. 생각하기에 여러 감정이 들겠지만, 가장 인상깊은 건 "받는 사람이 글쓴이를 어떻게 해석하나"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니 그 편지에 "나"를 담아 쓰는 것 같다.


나도 편지와 카톡 둘 다 사용해본적이 있다. 카톡을 사용할 때에는 누군가에게 보낸다는 생각에 열심히 그리고 집중해서 쓰게 되었다. 느려서 조금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내 편지를 읽고 영향을 잠시라도 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뻐하며 썼다. 카톡을 쓰고 나서는 누군가에 대한 감정과 묘한 인내심이 없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사과하거나 장문 편지를 쓸때도 카톡은 엄숙하게 진지해질 뿐이다.


즉각적으로 빠른 뇌와 주기적으로 느린 뇌 중 무엇이 더 효율적인가? 사실 둘의 뇌는 "똑같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편지를 쓰는 사람의 뇌는 심사숙고와 인내심으로 차있지만, 또 글쓴이의 반응에 대한 즉각적인 관심과 참을성 부족으로 카톡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뇌와 구조가 비슷하다. 카톡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에겐 즉흥적으로 보내며 "인내심"이 없어지는 삶의 변화를 겪지만, 누군가에게 진지한 메세지를 보낼땐 누구보다도 엄숙하고 진지하다. 이런 구조들을 가지고 있는 카톡과 편지의 뇌는 "비슷하다"라고 판결났다.


느리고 빠르다의 차이보다, 그 사람의 마음에 대한 차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편지란 글쓴이를 해석하며 쓰는게 아니라 글쓴이에게 진정한 내 마음을 담는것이고, 카톡은 누군가에게 빠르게 쓰는 글이 아니라 그 글에 대한 내 감정을 담는 것이다" 기분 그대로를 마음에 표현할지 아니면 진정한 "나의 모습"을 담아서 나를 표현할지 결정하면 삶은 좀 더 나아질거라는 사실은 전부 거짓이다.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은 지금 우리를 카톡의 세계로 이끌지만, 지금도 몇몇 문구점에서는 편지지를 판다. 그런 곳에서는 나는 가끔씩 편지를 사 쓰곤 한다. 나에게 쓰기도 하고, 짜증날땐 엄마에게 쓰기도 하고, 고마울땐 아빠나 할머니한테 써주기도 하고. 그러면 내가 정말 어린시절로 돌아온 느낌이다. 내가 어릴 때 편지를 써서 매일 선생님에게 갖다주거나, 할머니에게 갖다준적이 있다. 그런 경험으로 나는 지금까지 자라왔고, 카톡이란 사실관계가 있지만 나는 아직까지 편지를 잊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편지와 카톡 중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똑같다고 " 말해주고 싶다. 누구나 자신의 내면을 들어볼 충분한 시간이 있지만, 누군가의 편견과 나의 편견은 다르기 때문이다. 편지를 쓰는 사람의 뇌와 카톡을 주고 받는 사람의 뇌는 똑같다. 거기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 뿐. 우리는 모두 똑같은 세계를 살고 있었다. 카톡과 편지 모두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다. 카톡은 누구나 감정을 담는 것, 편지도 똑같다. 어린시절에 슥슥쓰던 그 편지는 기억에 잊히고 나를 담는 카톡이 생겼다. 편지와 카톡 모두 나를 담는다. "이런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카톡 문장을 보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렇게 보낸 나의 진심은 항상 통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진심을 담아 보내면 누구더라고 내면을 찾아 애써본 내 진심을 알아준다고 생각한다. 진심이라는 건 언제나 통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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