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하
외할머니 집에서 D+6. 사정이 좀 생겨서 계획한 것보다 배로 머물게 되었다. 내 집이 아니라서 불편하기는커녕, 어릴 때부터 워낙 내 집 드나들듯이 다녔기 때문에 올 때도 친숙하고 반갑다. 외할머니집에 들어서면 오래되어 빛 바랜 낡은 가죽 소파, 언제나 뉴스채널에 고정되어 있는 텔레비전, 탁자에 가득히 쌓여있는 2주치 신문, 부엌에서부터 풍겨오는 두부조림 냄새, 이제 막 끓여놓은 숭늉이 담겨있는 파랑 주전자, 요즘에는 볼 수 없는 옛날 김치냉장고.....무엇 하나 정이 담겨있지 않는것이 없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오지만 변화하는거라곤, 들어올 때 나는 음식 냄새다. 계절별미는 물론 먹고 싶은것은 다 해주시는 우리 외할머니 덕에 찾아오는 걸음이 힘차다. 같은 여수라서 자주 다닐 수 있는 건데 외할머니집은 도시 속 시골에 자리잡아있다. 여수를 도시라고 하기에 명색이 부끄럽지만 우리 집에 비하면 그렇다. 아파트이긴 하지만 지어진지 40년이 훌쩍 넘어가 엄마와 우스갯소리로 '실버타운'이라고 부른다. 주민들의 97%가 노인분들이시기 때문이다. 위치는 좋은편이라서 여러 상가들이 모여 살고있다. 심지어 스세권,편세권이기도하다. 스세권으로 따지면 외할머니집이 도시다....우리집에서 스타벅스가 15분 거리니까. 쨌든 내일 집에 돌아가는데 실버타운에서 많은 걸 느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은 되게 슬프다. '기브앤테이크' 역시 그렇다. 자신에게 이익이 있어야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다는 뜻이어서다. 공짜가 없단것도 진심이 의심으로 전달된다는 의미같아서 씁쓸하다. 전에 수업한 <불편한 편의점>이 그랬다. 이유 없이 베푸는 친절, 이는 불편하지만 기분은 뭔가 좋은 아이러니를 퍼뜨리는 주인공들. 하루에 수시로 벨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택배도, 가스점검도 아니었다. 맛있는 반찬을 나눠주러, 안부 물으러, 반찬통 갖다주러...모두 나눔에 의해서 울리는 벨이었다. 나는 처음에 이 벨이 무척 성가셨다. 이상하게도 외할머니께서 주방일 하실 때만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방황하는 칼날> 한참 재밌는데 울리고, 허니버터칩 먹고있는데 울리고, 신문 읽으려고 바닥에 앉는 순간 울리고..... 하지만 그분들의 얼굴을 보면 원망함이 눈녹듯 사라졌다. 전부 웃으시면서 걱정도 해주시고, 맛있는 것도 갖다주시고 잘 컸다고도 해주시고. 문을 닫고 들어보면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택 내에서는 느낄 수 없던 이 묘한 감정은 뭘까. 그냥 몇마디 던진게 이렇게 고맙고 뭉클해질일인가 싶었다. 그렇다고 사택 내에서 교류가 없는 건 아니다. 정말 마음이 잘 맞고 친해보이는 가족들도 있다. 대화를 가만히 잘 들어보면 이는 '위장' 된 것을 알 수있다. 사택이라서 유독 그럴지 모르겠지만 말 속에 목적이라는 칼이 숨어있다. 우연의 일치라고하기엔 이해하기 힘들다. 챙김을 받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또는 직접 나에게 부탁이 들어오곤한다. 어쩔 땐 정말 급한지 챙겨주는 그 자리에서 말할 때도 있다. 처음엔 너무나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이곤했었는데 진심어린 부탁이 아니란걸 구분하는 어조와 말을 알았을 때부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참 재밌다. 목적을 갖고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나조차 머리를 굴린다. 그렇다고 만만히 보일 순 없으니. 이래서 난 더 외할머니집이 더 좋아졌다. 표정에서 나타나는 따뜻함이 이 키보드 앞까지 끌고왔다. 그냥 힐링만 됐던건 아니었다. 벨소리가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였다. 주민들의 미소가 나에게 새삼 좋은 경험이었다. 아마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할 기분이었다. 자본주의가 심화되가는 시대에서 따뜻함은 자취를 감춰갈 것이니까. 일주일 가까이 머물렀던 이 날들이 그리워질 것이다. 특별하지 않았지만 '사람'으로서의 따스함이 깃든 실버타운의 밤이 짙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