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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Jul 07. 2020

나라는 왜 망하는가?

-왕토 사상의 한계-

  

현대자동차가 강남 신사옥 부지를 10조 원에 사들일 때 사람들은 자동차 회사가 차를 연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땅에 돈을 투자한다며 비아냥거렸다. 3년이 지난 지금 현대자동차가 매입한 한전 부지는 15조 원이 넘어가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가만히 앉아서 수익률 50퍼센트 대박을 터뜨렸다. 자동차 회사의 이 부동산 투자는 과연 반기업적인 투자였는가? 또는 비윤리적인 행위인가? 합리적인 투자였는가? 대한민국의 땅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공재는 맞는가?     


모든 나라는 흥하고 망한다. 쉽게 말해 흥하다 는 말은 잘 산다는 뜻이고 망한다는 의미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다는 경제적인 의미가 크다.      

그렇다면 나라는 왜 망할까? 왜 먹고살기가 힘들어 질까? 흔히 역사를 배울 때 지배층의 무능과 사치 그리고 탐욕 때문에 그렇다고 당연하게 배우며 자라왔다. 하지만 언제 지배층이 사치를 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으며 민중이 잘 산 시절이 과연 있었을까? 지배층 훌륭해도 망한 나라도 있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첫째도 둘째도 먹고사는 제일 중요하다. 당장 내일도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백성들에게는 왕실 집안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싸움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지금도 먹고살기 바쁜 현대인들은 연예인 걱정을 하지 않는다.     


예전 농경국가에서 먹고사는 원천은 땅이다. 그리고 인구다. 쉽게 말해 농사 지을 땅이 넓고 지을 사람이 많으면 강대국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모든 땅은 왕의 것이다. 유학에 따르면 천하의 주인은 군주다. 군주는 자신이 지배하는 나라와 땅 등 모든 재산을 소유하고 백성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이것을 왕토 사상이라고 한다. “천하에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왕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다.”라는 춘추전국시대 <시경>이라는 책의 구절에서 비롯된 사상이다.  

    

이 이념을 바탕으로 율령으로 법치를 확립하고 과거제로 율령을 지탱하고 균전제로 국가 재정을 유지한다. 당나라는 이 완벽한 제도를 만들었고 세계의 최고 선진국에 이르기 시작한다. 이 “3위 일체” 상품은 이후 나올 동양의 모든 왕조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이른바 왕조국가라면 모름지기 당나라 스타일을 따르기 시작했다. 왕이 왕국의 단독 오너라는 개념은 너무나 매력적인 주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토지 제도인 균전제는 왕은 건물주 아닌 모든 것에 주인이니까 백성은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다. 원래 왕꺼 니까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

  

그런데  바로 이것이 동양식 왕조와 서양식 왕조의 큰 차이를 만들기 시작한다.     


 로마 황제는 제국의 모든 것을 통째로 소유하지 못했다. 군사 원정을 벌이려면 군대와 합의를 보아야 했고 승리의 대가로 전리품을 약속해야 했다. 지휘관과 말단 병사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가령 도시를 점령해도 사흘 동안 병사들에게 약탈할 기회를 공식적으로 허락해야만 했다. 오너가 아니었기에 직접 전리품을 나누어 주지 못하고 스스로 챙기게 한 것이다. 15세기 대항해시대 엔리케 왕자가 해로를 개척한 것도 명령이 아닌 수익을 노린 ‘투자’였다. 17세기 영국 왕 찰스는 전쟁 비용 청구하다가 의회에 참수를 당하기도 했다.      


이 모든 사건은 동양식 왕조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동양의 군주는 권위와 권력으로 원정군을 파견하고 모든 물자를 마음대로 징발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국가 모든 재산의 소유자가 왕이라는 왕토 사상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


토지가 형식적으로는 왕의 소유이면서도 실제로는 사유화되는 모순 말이다.     

고려의 전시과와 조선의 과전법은 왕토 사상이 무너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고려의 토지제도 이른바 전시과라 부른다. 쉽게 말해 식량과 땔감을 준다 라는 용어인데

더 중요한 것은 전시과가 고려시대 공무원에게 주는 월급이라는 제도라는 것이다.

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서 월급을 주는 방식은 토지다.      

토지의 유일한 소유자가 왕이니까 토지는 원칙적으로 매매하거나 양도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고려 정부는 관리는 임용해도 토지 자체를 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급료는 줘야 한다. 땅은 줄 수 없는데 땅밖에 줄 게 없다. 어떻게 할까? 소유권을 주는 대신 생산물을 걷는 권리를 주는 것이다. 이것이 곧 조세를 받을 권리 수조 권이다.

왕토 사상의 이념과 현실적 필요성을 조화시킨 절묘한 발상이다.     

여기까지는 순탄하다. 문제는 관리가 나이가 들어 은퇴한 다음이다. 당연히 연금이나 보험 같은 건 없다. 그럼 그 집안은 어떻게 먹고살까?      


사실 관리가 은퇴하면 수조 권을 국가에서 회수하는 게 마땅하다. 관리가 없는데 급료가 계속 나간다면 국가 재정 낭비다. 그런데 그렇다고 즉각 회수하기도 어렵다. 자발적 반납은 꿈도 못 꾼다. 지금도 연금개혁과 세금 인상은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시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수조 권은 현실적으로 자식에게 상속되는 게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된다.     


수조 권이 상속된다면 이미 그것은 수조 권이 아니라 소유권이다. 원칙은 소유자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지주다. 제도의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토지가 무한정 남아돈다면 문제 될 게 없으나 정복왕조도 아니고 정복할 곳도 없다. 토지는 유한하고 새로 임용할 관리는 꾸준히 증가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수조 권이 설정된 토지에 새로 수조 권을 부과되기도 한다. 전 현직 관리 간의 다툼보다 졸지에 이중과세를 부담하게 된 농민들은 죽을 맛이다. 그럴 바에 차라리 토지를 버리고 떠나 산에 들어가 나는 자연인이다 처럼 화전을 일구며 사는 게 낫다. 농민이 토지와 고향을 버리고 떠난다. 농경 문명에 어울리지 않는 아이러니한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버려진 토지는 자연스럽게 매매의 대상이 되고 대토지 소유자는 토지를 겸병하고 나선다. 그래서 고려 중기부터 전시과가 완전히 무너지고 국가 재정도 붕괴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몽골 대륙이 패망하고 물러가자 이성계가 고려를 타도하고 조선을 세우고 새로운 토지제도 과전법을 세운다. 하지만 왕조 교체도 그렇듯이 토지제도도 이름만 과전법으로 바뀌었을 뿐 기본 취지는 전시과에 다름없다. 일단 정권이 바뀌고 고려의 땅 부자 권문세족을 소탕했으므로 토지 소유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빈 도화지에 그림 그리기는 어린아이라도 할 줄 안다.      


전시과와 마찬가지로 모든 토지는 왕의 소유이며 수조 권만 지급한다. 다만 국가 재정을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선 정부는 과전을 경기도에만 한정한다. 새 나라의 기백은 좋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는 세상에 이름만 바뀐 제도가 온전할 리 없다. 수조권은 고려 때처럼 자연스럽게 세습된다. 관행을 바꾸려면 제도가 아니라 문화가 달라져야 하는데 조선은 유학을 강조할 뿐 고려와 달라진 게 없었다. 조선도 역시 정복국가가 아니라 토지가 금세 부족 해 진다.      


연이은 쿠데타의 따른 공신의 남발은 공신전이라는 명목으로 세습되기 시작했고 왕토사상이 붕괴되는 모순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 중기 영 정조 전까지 강력한 왕이 나오기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사대부들의 조상 대대로의 토지 세습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땅을 가진 사대부 지주들은 점점 땅이 넓어진다. “흉년이 오면 지주는 웃는다”라는 말이 있다. 흉년에 높은 이자로 곡식을 빌리고 다음 해엔 갚지 못해 땅을 뺏기고 노비로 전락하는 이른바 환곡제의 문란은 지금으로 따지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악성 대출은 신하에겐 큰 권력과 부를 주었고 민중에게는 끊이지 않는 민란을 안겨다 주었고, 조선이라는 왕조에게는 망조라는 불운을 주었다.    

 

고려의 권문세족이 그랬듯이 19세기 후반 세도정치 시기에도 일반 백성은 송곳 하나 꽃을 땅이 없었다   

       

 한반도 왕조가 실패가 말해주는 사실은 한 가지다.      


실제로는 토지가 사유화되어 있지만 공식적으로 토지 국유의 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왕토 사상. 넓디넓은 땅을 자기 땅이라도 말해도 자기 땅에 누가 집을 짓고 밥을 해 먹고 사는지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 명이 소유는 할 수 있지만 관리는 불가능하다.     


한 당 송 명 역대 한족 제국들이 예외 없이 개국 초기 50~100년 번영을 누리다가 이내 추락의 길을 걸은 것은 그 때문이다. 개국 초기에는 건강하고 강력한 정치력의 뒷받침으로 각종 제도를 시행해 경제의 틀을 유지하다가 중기에 들어 그 틀이 무너지면서 몰락하는 식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인위적인 힘 (중앙집권)의 한계다 세계 제국의 위용을 자랑하다가 순식간에 붕괴해버린 당 제국의 바로 그랬다.      


나라는 왜 망할까? 결론을 내면 왕토 사상의 모순이다. 어쩌면 인위적인 것 정치가 자연스러운 것 경제를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다. 어제의 제도와 정책이 완벽하더라도 오늘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 크면 옷이 맞지 않는 게 당연하다. 늘리거나 바꿔 입어야 한다. 작년에 샀던 옷은 아무리 비싸도 여러 번 입으면 질리거나 해지기 마련이다. 옛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옛날에 좋았던 것일 뿐이다.      


부동산이 광풍이다.

내 집 마련이 어렵다고 아우성이면서 동시에 내가 보유한 토지 가격은 오르기를 바라는 모순이 대한민국을 관통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토지가 생산수단인 농경국가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자산은 부동산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꽃은 금융인데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은 부동산에 머물러 있다. 우리 모두는 왕토 사상의 자손들인가.


아이러니 한 점은 자본주의 현대 사회에도 누군가는 땅을 샀고 땅값을 올랐고 결국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꿈이 건물주인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왕토 사상 토지제도의 모순은 큰 울림을 주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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