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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Jul 10. 2020

동양과 서양 싸우면 누가 이길까?

-중국의 4대 발명품과 엇갈린 운명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누구나 어릴 때 한 번쯤은 생각했을 만한 유치한 질문을 역사 속으로 대입해 보자. 서양과 동양과 붙으면 누가 이길까? 애석하게도 답은 지금 시대를 보면 정해진 듯하다. 우리는 지금 서양식 집에 살고 옷을 입으며 음식을 먹으며 헐리 우드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가? 하지만 과거에는 어땠을까?      


 15-16세기 이전까지 서양은 동양의 ‘쨉’도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병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군은 4만 명에 불과했지만 7세기 고구려 원정에 나선 수나라의 군대는 150만 명의 병력에 함선 3천 척의 규모였다.

     

쉬운 예로 중국 사극을 보면 압도적인 병력 규모의 전투 씬이 자주 등장하지만 유럽 전쟁 신을 보면 제작비 때문에 병력 수가 적은 것이라 착각을 할 정도로 규모가 작다.     


군사력을 뒷받침하는 경제력도 마찬가지다. 고대 사회의 경제력의 근간은 인구의 차이가 확연했다. 14~15세기 유럽 총인구는 약 3천만 명이었던 데 비해 동양은 중국의 인구만 해도 그 두 배였다. 또한 농사법 또한 중세 유럽에서 2 포제에서 3포 제로 넘어갔을 무렵 이미 중국에서는 펌프를 이용해 고지대의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와 신품종 벼가 개발되었다.     


군사력과 경제력보다 더 중요하고 큰 차이는 문화 부문이다. 중국의 4대 발명품이라 알려진 종이 인쇄술 화약 나침반은 모두 유럽보다 시기가 앞선다.


하지만 동양은 발명했을 뿐 널리 사용하지는 못했다.

반면 서양은 아주 널리 활용했다 그것도 아주 먹고사는데 실용적이게 말이다.     


화약은 중국에서 10세기에 처음 발명되었을 때 불꽃놀이나 폭죽의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점차 발달하면서 무기의 용도로 쓰이게 되자 점차 정부 차원에서 화약 제조법을 비밀로 규제하기 이르렀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듯 중국의 화약 제조법은 결국 실크로드를 통해 아라비아로 전해졌고 이 기술이 유럽에 전해지면서 곧바로 총포와 대포가 개발되기에 이른다.     


마찬가지로 아라비아 상인을 통해 건너간 나침반은 15세기 대항해 시대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 가마에 의해 개척된 새로운 신항로와 신대륙은 유럽에게 엄청난 부(후추, 은)를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다가 아니었다. 개척된 해로를 통해 무역을 하고 있던 포르투갈 상인은 태풍을 만나 우연히 일본에 불시착한다. 이때 바로 동양의 역사를 송두리 째 바꿀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조총 두 자루를 일본의 한 영주에게 그냥 줬을 리는 없지만 아무튼 선물을 한 것이다.


바로 이 신기술의 위력을 알아본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오다 노부나가와 2인자 히데요시 이 아이템 발로 일본을 통일한다.      


넘치는 자신감으로 바로 “화승총” 조총을 가지고 우리에게 1592년 우리에게 쳐들어온다. 바로 임진왜란이 발발한 것이다. 이때 조선을 돕고자 참전한 명나라는 새롭게 떠오르는 후금에게 중원의 자리를 내주게 되고 결국 망하게 된다. 말하자면 동양에서 개발된 화약과 나침반이 지구 한 바퀴 돌아 동양의 목줄을 겨누게 된 셈이다.          


동양과 서양의 이러한 역전 과정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종이와 인쇄술이다.  

   

종이 전래 전의 유럽에서는 양피지를 사용했다. 하지만 너무 비싸고 가공하기도 힘들다는 점이었다. 중세의 수도원에서는 그렇게 값비싼 양피지로 성서와 고전 문헌들을 필사했다. 필사를 담당한 수사는 정성껏 글씨를 쓰고 우아한 장식을 덧붙여 몇 년에 걸쳐 책 한 권을 베꼈다.    

 

그러나 중국의 제지술이 아라비아를 통해 유럽에 전해지자 사정이 달라졌다.나무와 천은 상대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기에 종이는 양피지처럼 값이 비싸지 않은 데다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거기에 인쇄술이 더해지면서 유럽 세계는 역사적 격변을 맞게 된다.     


유럽의 중세 천년을 기독교의 시대라 말하지만 당시 인구의 대다수는 엄밀히 말하면 기독교로 ‘자격미달’이었다. 기독교의 최고이자 유일한 경전인 성서를 읽는 것은 고사하고 손으로 만져본 적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비싼 가격 때문에 당연히 소장하기도 힘들었다. 또한 성서는 라틴어로 되어있어 설령 가지고 있다 해도 그림의 떡이었다.      


문맹률이 90퍼센트가 넘었던 중세에는 사제와 학자 이외에 라틴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전 인구가 기독교인데 성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이러니 하지만 사실이다.


중세의 교회가 최고의 권력을 누린 것은 그 때문이다. 성서의 내용을 알지 못하므로 사람들은 그들이 읽어 주는 대로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바로 교회는 성서를 독점했기 때문에 종교를 독점할 수 있었다.  

   

이런 사정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것이 종이와 인쇄술이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고 맨 먼저 인쇄한 책도 바로 베스트셀러 성서다.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가질 수 있게 되자 자연히 성서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로 성서를 번역을 시작한 이래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자국어로 성서를 번역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신성모독이라 간주되고 처형되기도 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순 없었다.성서를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되면서 교회가 독점해온 성서 해석이 크게 잘 못 되었고 그동안 얼마나 부패를 저질러왔는지 누구나 알게 되었다.     


“단언컨대 성서 어디에도 돈을 내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은 없었다.”     


이렇게 화약 나침반 종이와 인쇄술이 엄청난 혁명을 가져왔지만 서양보다 훨씬 앞선 기술을 가지고도 왜 동양은 서양과 같은 변화가 없었을까?     


우선 책을 살펴보면 관념부터가 달랐다. 동양에서 책은 지식의 보급이 아니라 지식을 보관하는 용도였다. 팔만대장경에서 보듯이 경전을 보급 하기보다 소장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역사서는 일반 민중이 봐서는 안 되는 금서였다. 역사는 천리를 읽은 학문이었으므로 함부로 알려져서는 안 되었다.


다른 발명품도 마찬가지였다.     


세종대왕 때 천재 과학자 장영실 이 후로 조선의 과학 문명을 배워 본 적이 있는가?

청나라의 문물과 제도를 본받자고 말하던 실학자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졌는가?   

  

지식이 쌓이고 발달해도 널리 보급되지 않으면 소용없다. 모든 면에서 동양에 뒤졌던 서양이 역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외부에서 전래된 지식과 기술을 독점되지 않고 민간에 널리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서양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개방 사회의 힘이다.     


4차 산업 혁명시대다. 어제 배운 지식과 기술이 쓸모없어지는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대할 때 항상 부정적인 여론이 많은 듯하다. 서양의 아이들이 드론을 띄우고 로봇을 조립하면서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달콤한 상상에 빠져있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학원과 학교에서 시험에 나오는 코딩을 배우고 있다. 용어와 개념을 외우고 있다. 또한 로봇이 일자리를 뺐어간다고 걱정하는 토론과 글을 쓰고 있다.      


물론 미래는 모른다. 아무도     


하지만  15-16세기 콜럼버스가 나침반 하나만 믿고 호기롭게 바다를 건널 때 우리의 청춘들은 과거시험에 목을 매고 있었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역사에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참고문헌-

시사에 훤해지는 역사-남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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