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꽃이 시들 때
백지원
공부를 하면, 문제를 적어내려가다가 까먹은건지 틀린건지 멈칫멈칫하는 손의 존재를 알게 되고, 방금 막 내린 핫초코를 목으로 넘기면, 따가우면서 입 안이 헌 것처럼 까끌까끌한 목의 존재를 알게 된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몸의 일부분의 존재는 깨달을 수 있지만, 모든 것이 갖춰진 나라는 부분의 존재는 정말 가끔 빼고는 알아챈 적이 없다. 이 때 가진 감정은 아마도 불안이다.
나와 마찰한 것들은 많고 많지만, 내 존재를 밝힐 수 있던 건 겉이 따뜻한 것이 아닌 속이 따뜻한 것 뿐이었다. 핫초코는 아무리 뜨겁게 달궈 마셔도 그 몇 초 사이면 식어서 내 뱃속을 마구 휘젓고 다니며, 핫팩도 주머니에 넣어 수업시간 내내 가만히 냅둬도 집에 도착하면 집의 온기보다 차갑게 식어버린다.
그 순간에도 유일하게 오래가는 따뜻함이 바로 사람이었다. 핫팩은 손의 존재를 아주 잠시, 핫초코는 목의 존재를 아주 잠시 느끼게 해주었지만, 사람은 나라는 존재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도 아마 잠시였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사람이라는 것은 나의 존재를 느끼는 법을 알려준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존재를 느끼는 법에 포함되는 주 재료는 늘, 항상 사람이었기에, 내 몸을 모닥불로 아무리 지져봐도 모닥불은 내가 들어가면 금방이라도 까맣게 변해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사람이 유일하게 더럽지 않으며, 더 따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게 내가 사람을 찾는 이유이며, 살 계기였다.
영원하지 않은 사랑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 고민해보자면, 나는 연인에게 받은 꽃이 시들었을 때와 느낌이 같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꽃을 처음 받았을 때에 느꼈던 소유욕과, 막상 시간이 지나 시들었을 때에 느꼈던 후련함. 막상 처음 가졌을 때에는 누구에게 뺏기고 싶지 않아서 안달이었지만, 막상 지기 시작하면 그 누구보다 아쉽지만, 또 새로운 꽃을 위해서라면 거쳐야 한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다. 이것처럼 사랑은 그 때 그 순간을 즐기고, 보낼 때는 또 아쉽게 보내야하는 것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물론 이 과정은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꽃은 가장 예쁠 시기에 봐야 그걸 보는 나에게도 좋고, 보여주는 입장인 꽃에게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