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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Jan 01. 2024

<Destination>

<Destination>


정서윤


“인생에서 인간으로 태어난 거, 우주의 확률을 뚫고 우연히 그 기회를 가졌지만 넌 고마워하지 않고 주어진 역할대로만 살아가려고 하지. 그 78억명이 전부다 우주의 확률을 뚫었다 하니 갑자기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아? 하지만 네가 태어난 방향도 목적도 없이 흐리는 삶. 그 앞에서 나약하다고 느끼는 네가 얼마나 틀린지, 인간이라는 기회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걸 보여줄게."


"  내 이름은 의자에요. 인간에 의해서 태어났고, 나는 인간에게 헌신하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인간을 위해 나는 만들어졌고, 이 가는 네 다리로 인간의 무게를 받드는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답니다. 시간이 흐르며, 삶이 흐르며 매끈했던 내 시트는 조금씩 헐어가고 물러져요. 그러다가 결국 내 3번째 다리가 부서졌어요. 인간은 슬퍼하며 나를 동네 밖에 버려버렸죠. 내가 인간에게 태어났지만 인간에게 버려진다니 참 신기하죠? 신기하기보단 안타까울거에요. 이런 내 처지를 겪어보지 않은 당신은. 난 김성곤 안드레아처럼 끝없이 받들다가 결국 내 다리가 부서지며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졌어요. 캄캄한 암흑속에서 난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파쇄기에 들어갔어요.

부서지고, 또 부서지고, 또 부서져요.

제가 이런 최후를 맞을 거라 생각했어요?


"  내 이름은 가로등이에요. 저는 크면 높디 높은 하늘로 언젠가는 힘차게 날아갈거에요! 난 아주 중요해요. 힘찬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무서운 밤에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줘요. 나는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돼는 존재인데..근데 왜.. 사람들은 왜 나를 신경쓰지 않을까요..? 그들은 제가 어두우면 무섭다고 탓하고, 너무 밝으면 휴대폰 화면이 잘 안보인다고 나를 탓해요. 외롭게 서있는 나는 다른 가로등과 이야기할 수도 없어요. 2m나 떨어져있거든요. 예전엔 그렇게 긴 거리인줄 몰랐는데. 지금은 그 거리에 차있는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거 같아요. 우뚝 서있는 나는 언제나 외로워요. 사람들은 그 작은 핸드폰만 보면서 집으로 들어가요.

이젠 내 밝은 빛도 외롭게 소등할 시간.

모두 원망하진 않아요, 그냥.. 좋은 밤 되세요.


"  내 이름은 스피커에요. 난 오롯이 성능과 디자인으로만 판단되어 이곳에 왔어요. 그들은 나를 꽤 소중하게 여겨요. 사람들이 영화를 볼때나 음악을 들을 때 난 온힘을 다해 아름다운 목소리를 뽑아내죠. 그들을 만족시켜야만 난 여기서 살 수 있어요. 내가 불쌍하다고요? 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에요. 나에겐 불협화음이나 느린 속도도 용납되지 않아요. 그냥 이젠 적응해서 인간이 무슨 행동,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지도 잘 알죠.

에어팟만 없었다만 난 영원히 좋았을거에요.

사람들은 애플이라는 곳에서 에어팟을 사오고 좋아했어요.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죠. 이제 그들은 나를 외면하고 에어팟을 끼고 살았죠. 모두가 날 사랑할 순 없지만, 난 그에게 철저히 외면당했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좋겠어요. 다시 내가 사랑받던 그 시절로요. 여긴 외로워요. 아무도 없는 서랍장 안에서 내 옆엔 계속 먼지가 쌓여가고 있는 신세랍니다.

이제 내 배터리는 1%. 빨간 불빛이 깜빡거려요. 나, 영원히 행복할 수 있었을텐데.


" 어때, 이제 네가 정말로 나약해보이니? 넌 생각보다 나약하지 않았어. 그냥 검은색 안경을 끼고 다채로운 세상을 보려던 너의 허탕이었던거야. 근데 있잖아, 삶은 계속 흘러 강물처럼. 어떠한 방향도, 목적도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그것 말고, 네가 벗어날 수 없는 통제가 하나 있어. 그건 나도 알 수 없는 힘이지만, 원래 내가 갈 수밖에 없었던 길로 이끌어주지.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화살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자기의 길로 가고 있단 말이야. 인생을 화살표와 영원한 멜로디로 판단하지 마. 네가 13살이든 28살이든 40살이든 마음 먹으면 넌 뭐든지 될 수 있는거야. 가끔은 일을 하지 말고 즐겨. 연차를 쓰고 친구들과 놀아도 돼. 줌을 켜서 사람들과 소통해도 좋아. 옛날친구를 불러 같이 탕후루를 먹어도 아무도 널 쳐다보지 않아. 쳐다본다 해도 넌 눈치볼 필요 없어. 넌 너의 한 페이지를 채우고 있는것인걸.


내가 누구냐고? 음.. 그냥 너라는 아파트에 세들어 사는 작은 입주자가 지나가며 너에게 속삭이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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