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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Jan 08. 2024

<Hallucination>

<Hallucination>


정서윤




"사실 믿기지 않아 모든 게. 멋진 라이프를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나를 안아주고 싶지만 옆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고 늦지 않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만 있는 걸. 하지만 괜찮아. 12년간 버텨왔어. 이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난 반드시 바뀌고 말거야. 나의 모든 걸 다 걸고서라도.아무리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아"


오늘은 내 수능날이야. 기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타 스스로에게 빌었지. "그 시간동안 생명이 연명해 모든 문제를 끝까지 다 풀기를 바라며." 난 다시 한 번 신경쓰이는 필기구를 가지런히 정리하곤 했어. 그냥.. 신경쓰이니까 말이야.

"자 이제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감독관의 큰 소리와 함께 12년의 노력이 테스트되는 시간이 드디어 찾아왔지. 첫 과목은 국어였어,하얀 종이를 뒤로 넘기고 나서야 1번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어.


문장의 주성분은 무엇이 있는가?

("이건 주어, 목적어, 서술어, 보어가 있겠지.")


인생이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인생이란 알 수 없는 운명 같아. 어디로 가든 그것은 알 수 없는 힘으로 정해져 가고 있는 무언가같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며 세뇌할 수 있는 무언가. 마치 우리가 그것들을 조종할 수 있고 길들일 수 있는 존재들 같이 신비로워.")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에서 결국 기차는 탈선해 밑으로 떨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들의 피해자의 마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것은....모르겠습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적었다. 그 뒤로 어떻게 문제들을 풀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내 이름 탄정, 그동안 열심히 이것들을 공부함으로써, 모든 유형을 닥치는대로 다 풀었는데.. 왜 날 따라주지 않는거야. 나는 여태까지 모든 게 다 완벽했는데, 시험은 언제나 100점, 수능도 서울대 갈 거라며 모두의 총애를 받았는데 그깟 책에 있는 인물들 때문에 내 인생은 흐트러졌다니.


"난 믿었어, 너네들이 그런 상태였을 거라고 믿었다고! 내가 이런 사실을 깨닫지만 않았어도 난 수능을 잘 치고, 가족들을 박차 자유를 얻을 수 있었을거란 말이야. 근데.. 근데 왜 나를 방해하는 거야? 방해하는 거냐고!

하....됐다. 미안해. 시험지에다 대고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잠시 이성을 잃었나 보다. 지금, 이제 나를 세뇌시켜도 결국 무너지는구나."


그는 돌아서 터덜터덜 교실을 나갔다. 평범한 일상도 그에겐 모든 것이 부러웠었지. 그에겐 행복이란 것이 없었다. 모든 걸 벗어던질 수 있었던 수능은 그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동시에 그를 구원하게 만들었던 존재였다. 피해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됐으리라고 믿었다. 그는 결국 알아버렸다. 정말이지 결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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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내가 말했잖아. 행복은 조종시킬 수 있다고. 탄정이 말한 말 못 들었어? 그 책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며 한탄했잖아. 저거 얼핏 보면 정말 이상한 소리 같지? 자기가 문제 못 푼것 가지고 책한테 화풀이하는 것 같잖아. 그런데 그게 아니야.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문제를 못 풀어서 하는 한탄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런 문제도 못 푸는 자신의 인생이 하찮다고 깨달았기 때문이야. 피해자들도 물론 고통스럽지. 사랑하는 가족이 영원한 웜홀 속으로 빠지는 것과 똑같이 너도 고통스러울거야. 그에겐 지금 수능이 중요한 게 아니야. 모두들 아직 그를 공부 잘하는 16살때의 그로 본단 말이고, 집에 가면 시험을 잘 쳤나고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겠지. 피해자의 마음을 존중하지 못한게 미안한 것보다 지금 현실에 굴복해 움직이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태어났다고 생각이 되네. 정말 아쉽다."


"있잖아, 그는 세상에게 마지막 반항을 해 본게 아닐까? 지금은 감정이나 뇌를 조종할 수 있어. 한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세계라고. "피해자는 불쌍하다. 피해자는 정말 안타까운 존재로써 경의를 표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감정을 세뇌시키는 거지. 과연 그가 정말 피해자를 슬프게 보고 있는지를 보고 그 안에 있는 자신을 결국 깨달아버린 걸거야."


"맞아, 네 말이 다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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