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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May 25. 2024

풍선

박재영


-풍선-


한 인간이 태어났을 때 그 인간의 몸에는 보이지 않는 사슬이 감겨있는 것만 같다. 어릴 때 일수록 사슬은 느슨하게 풀어져 있지만, 점점 커가면서 사슬은 단단하게 조여오고, 숨통을 자꾸만 꽉 조이게 만든다.

내 어릴 적 꿈은 직업군인, 장교가 아닌 국방과학 연구소에서 무기를 설계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까지만 해도 혼자서 두꺼운 총기 백과, 무기 백과, 전차 백과, 항공기 백과, 군함 백과 들을 찾아보면서 스케치북에 무언가를 그렸다. 탱캣(초소형 전차)를 현대화 시켜 토우 대전차 미사일이나 발칸포 등을 장착한 것부터, 거대한 공중 항공모함을 만들어서, 커다란 모체 안에 여러가지 전투기가 이 착륙하고 재보급 받을 수 있는, 아바타에 나오는 것 같은 무기들을 많이 만들었다.

2022년, 내가 5학년 때,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나자 활약하고 있는 블랙워터나 바그너 그룹 PMC가 멋있어 보여서, 학기 초 장래희망을 적는 조그만 칸에 민간 군사기업 CEO 라고 억지로 글씨를 우겨넣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덧 6학년이 되고 오락가락 하던 내 진로 역시 무언가 비현실적이고 수증기 같은 존재가 아니라 닿으면 차갑고 단단한 얼음이 되어야 할 시기에, 어른들은 내게 이런 허황된 일은 집어치우고, 수학이나 영어 같은 것들을 공부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했다.

'비 자발적 선택.' 제시문 (가)의 조이라는 친구는 자신이 만든 드론 프로젝트를 총장이 거부하자 결국 자살의 길에 빠지고 만다. 마치, 강압적인 신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한스 기벤라트 처럼 말이다.

결국 나는 그래서, 예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직업군인이라는 길을 선택했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무기를 만들거나, 분쟁지역에서 활약하는 용병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무기를 사용하고 실전에서 구르며, 나라에서 꼬박꼬박 월급과 미래의 연금이 나오는 직업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언제나 선택하는 직업들은 사회에 의해 묵인되고, 공동체의 통일해 해가 가는 것들이었다. 그 누구도 용병단 수장을 하고 싶지 않아했으며, 그 누구도 군사무기를 설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저 수직적으로, 명령에 가까운 충고에 의해서 나는 나 스스로를 점점 더 옥죄었다.

대한민국은 농경사회다. 조선시대, 아니 언제일 지도 모르는 먼 과거부터 호남평야, 철원평야에는 쌀 농사를 지었고, 밭에서 작물을 재배하거나 모내기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인도 역시 마찬가지 였다. 그리고 냉전기에 독립해 고속성장을 이루었고, 아직도 보수적인 인식은 변하지 않았고, 공동체의 모난돌이라는 난봉은 허용되지 않았다.

우리 학교에서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영어 토론' 수업을 연다. 물론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형식적인 발표를 끝마치고 태블릿을 가지고 놀거나, 원어민 쌤도 같이 하는 수요일 교과보충 축구를 더 기다린다. 예쩐 내가 초등학교에서, 토론 도중 "말귀 더럽게 못알아먹네." 라는 망언을 한 적이 있다. 즉시 실격당했고 반성문을 작성했다. 토론이라는 것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하는 것이지, 남의 기분을 좋게 말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의미없이 "귀하의 의견은 매우 훌륭한 의견이지만, 제 미약한 지식과 의견을 약간 보충하자면..." 으로 시작되는 기다란 부사절을 붙이기 마련이고, 더 좋은 결과를 위해서 시작된 토론은 더 좋은 관계라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 노란 풍선을 타고가는 예쁜 꿈도 꾸었죠.."

동방신기의 풍선이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틀어주던 흔한 노래였지만, 다시 들어보면 그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를 옥죄는 사슬의 존재를 풍자하며, 그 어린 시절에 풍선을 타고 날아가던, 용병단 수장을 꿈꾸던, 국방과학 연구소에서 무기설계를 꿈꾸던 그 꿈 대신, 현실 적인 꿈을 선택한 우리에게 미약한 위로나마 되는 노래 같았다.

성경에서 나오는 지옥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누군가는 성경을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을 것이고, 지옥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지옥을 만드는 것은 우리였다. 그 지옥을 행하는 것도 우리다. 지금 내 글에 따르면 모든 것은 주입식 교육을 강요하고 묵인하는, 수직적 관계의 공동체와 사회 같지만, 우리 개인의 마인드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돈만 벌면 돼, 그냥 안전빵이지. 같은 마인드가 사회의 비 자발적 선태을 만들고 묵인을 만들고, 수직적인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 관계형 토론을 만드는 것 아닐까. 존 F 케네디는 이런 말을 남겼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뭘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하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하라." 어쩌면 지옥이라는 것은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행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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