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한창이다. 밖을 나가면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웃는지 화가 나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모두 입을 가리고 있는 마스크 때문에 묘하게 길거리에 눈이 라도 마주치면 오랫동안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마 마스크 안의 얼굴이 궁금해서 인지 아니면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서 확인하려고 하는지, 마치 네이버 댓글창처럼 완벽한 이제 오프라인에서도 완벽한 익명성이 보장되는 듯하다. 소위 연예인들의 아이템이었던 마스크는 이제 필수품이 되어서 안 하고 다니면 개념 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나라 특히 미국 유럽권 나라를 보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드물다. 우리의 입장에서 도무지 이해가 안 가고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어떻게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다닐 수가 있지? 이에 반대로 한국은 철저한 국민성으로 k-방역에 성공하며 현재까지 타의 모범이 되는 국민성으로 코로나를 적절히 이겨내고 있다. 일단 숫자상으로만 비교하면 우리나라를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철저한 방역과 마스크 착용이 한몫을 했고 드라이브 쓰루 검역은 세계에 자랑해도 손색이 없다.
그동안 선진국이라 믿었던, 나라 미국은 마스크보다 마트에서 총기를 사고 있다. 경제 봉쇄에 따른 불만으로 치안이 불안정해지면서 총기로 자기 무장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백인 남자의 전유물이었던 총은 이제 여성과 다른 소수 인종까지 구매에 앞장서고 있다. 이상하지 않는가? 우리나라는 총기가 없어서 마스크를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는 것일까? 그리고 왜 서양은 마스크에 대해 깊은 반감이 있을까? 선진 시민의식과 훌륭한 국민성 덕분일까? 질문에 완벽한 답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생각을 해보면 그리 어렵지도 않다. 우리는 “눈치”를 보고 살아간다.
“눈치” 다른 말로 파악하면 분위기 파악 정도라 해도 되겠다. 나의 성향과 가치관보다 사람들 간의 관계나 집단의 목표를 우선시하는 문화에서 나오는 눈치. 조화와 안정을 추구하고 사회의 긴장과 갈등을 낮추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적어도 늦은 밤에 돌아다녀도 우리는 총을 맞지 않고, 차에 짐을 나 두고 내려도 창문이 부서지지 않는다. 심지어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카페에서 아이패드를 나 두고 화장실을 다녀와도 내 것은 그 자리에 있다. cctv 덕분인지 우리는 매우 훌륭한 치안에 살고 있다. 오랫동안 군사정권의 장기 지배가 가져다준 커다란 축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눈치 보는 문화 속에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기 식상이다. 우리는 대답을 할 때도 자신의 신념과 생각이 아닌 부장님과 동료가 기분이 나쁘지 않을 만한 말을 골라서 해야 되기 때문이다. 속절없이 머리에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했다가는 눈치 없고 건방진 사람이 낙인이 찍히게 되고, 사회생활 못한다는 등의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짬뽕이 먹고 싶어도 짜장면을 시켜야 하고, 롱 패딩이 나오면 다 같이 입어줘야 하고, 커피도 스타벅스가 아니면 안 된다. 일단 남들이 하는 건 좋아 보이고 해야 한다. 인스타의 셀럽들이 입은 옷을 사야 하고, 골프를 치면 나도 골프를 쳐야 한다.
군대 시절 나의 선임이 이런 말을 했다. “탄 형은 참 집단과 안 어울리는 사람이야.” 그냥 맞추고 넘어가면 되는데 말이야!
맞는 말이다. 그냥 넘어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난 미군들의 계급과 어울리지 않는 당당함과 이른바 스웩이 너무나 멋져 보였다. 그리고 가장 부러웠던 건 무심함. 뭘 먹든 걸음걸이가 어떻든 신경조차 안 쓰는 자유 말이다.
문화는 공기와 같아서 잘못된 것을 알아도 바꾸기가 어렵고,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어쩔 수 없이 숨을 쉬어야 하기에 그게 나를 짓누르더라도 살아가야만 한다.
덕분에 우리는 k-방역에 성공한 배려있는 한국이 되었다. 하지만 마스크 속에 숨기고 있는 표정은 무엇을 말할까? 어쩌면 생각이란 게 존재하기는 할까?
어느 순간 그 까칠하고 반골 기질이 강한 나도 더 이상 회의를 할 때 반론을 제시하거나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이런 나를 두고 이제야 철들었다고 한다. 이제 서야 남들을 배려한다고 칭찬을 듣고 말았다. 사실 말해도 안 바뀌어서 입을 다문 건데 말이다. 드디어 난 개념 있는 어른이 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