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스크래치

by 제이티

처음 차를 산 차주라면 누구든지 공감하겠지만, 조그마한 기스에도 마치 심장이 긁힌 것처럼 마음이 아련해진다. 혹시나 누가 긁고 갔는지, 범퍼가 살짝만 긁혀도 이내 블랙박스와 인근 cctv를 동원해 범인을 꼭 찾고 만다. 유난히 내 차는 누가 긁고 간 적이 많았다. 무려 3번이나 똑같은 자리를 긁고 갔다. 처음 누가 긁고 갔을 때 차를 뽑은 지 한 달도 안돼서 그런지 새 차라 그런지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차는 소모품이라던데 내가 소모된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 긁고 간 사람은 뺑소니라서 cctv를 돌려보는 치밀한 수사극 끝에 진범을 잡었다. 그때도 역시 단지 차를 긁고 갔던 것뿐인데 며칠을 분노하고 화가 났던지 모르겠다. 세 번째 사고는 눈 앞에서 보고 있는데 긁고 도망가려는 범인을 현장 검거에 성공했다.

하지만 차는 정비소에 들어간 후 다시 내 품에 돌아올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끔하게 돌아왔다. 예전보다 더 반짝이고 새 것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누가 긁고 간 스크래치도 있지만 생활을 하면서 무심코 생기는 기스도 많다. 나무 아래 세워 두다가 수액을 맞기도 하고, 새 똥 테러를 당해서 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차 문을 열고 내릴 때 내 발로 내가 차를 차기도 한다. 이럴 때는 남의 탓을 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자책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 내가 왜 이 자리에 세웠지? 내가 왜 조심하지 못했지? 사실 후회해 봤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며칠 지나면 신경도 쓰이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 그 날 만큼은 그 사건이 온 우주에서 제일 중요하고 내 인생의 큰 사건 마냥 생각이 된다. 모든 신경이 쭈뼜서고, 모든 일에 짜증이 난다. 마음이 불안하고 우울해하는 것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는 편이 낫지만 이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스님도 아니고 재벌도 아닌 나는 아직 은행이랑 같이 갚고 있는 내 차가 더 귀중하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그마한 기스에 차를 팔고 새 차를 구매할 수도 없기 때문에 마음만 졸인다.


그런데 자동차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의 형태에서도 스크래치는 나기 마련이다. 가장 친한 친구나 가족이라도 몇 년을 넘게 알고 지낸 사람이라도 말이다. 서운한 점과 조금의 짜증, 귀찮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정도의 기스가지고 완전 관계를 정리하기도 애매한 관계들이 있다. 손가락에 베인 상처가 깊지 않으면 병원에 가지 않듯이 어물쩡 넘어갈 때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내 차 스크래치처럼 꼭 같은 자리에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다. 똑같은 자리를 긁고 가는 사람처럼 똑같은 조그만한 상처를 반복적으로 주는 사람.

차라면 범퍼를 갈면 그만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범퍼처럼 소모품이 아니다. 물론 상처가 아물고 난 자리는 더 단단해진다고 하지만 흉터는 남는다.


흉터를 남기기 싫다면, 절대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자외선을 받으면 안 된다. 집에만 틀어 박혀 있어야 한다. 완전한 관계를 바라는 건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이 결벽증의 결말은 결국 외로움이자 자기 손해로 끝나게 된다. 벤츠도 한 번 타면 바로 중고가 된다. 비바람을 피 할 수 없고, 날파리 떼와 도로 위의 스톤치드, 그리고 무례한 운전자를 피할 길 이 없다. 모든 존재는 쓰면 쓸수록 소멸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아까우니까 아끼기만 한다면 그거야 말로 똥이 된다. 차를 샀다면 부지런히 어디든 달려야 하지 매일 출퇴근만 하는 똑같은 길을 다닐 순 없다. 그러려고 차를 산 게 아니다. 때론 드라이브도 하고 난생처음 보는 길을 갈 때도 생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 간의 관계도 내가 원하지 않는 관계도 있고, 처음 보는 길과 익숙한 길이 있기 마련이다. 처음 보는 길은 다소 낯설기 때문에 핸들을 꽉 잡고 조심하지만 익숙한 길은 내비도 끄고 주위를 살피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운전을 하게 된다. 꼭 사고는 이때 나길 마련이다. 처음 보는 길이 아니라 익숙한 길에서 말이다.


지금 익숙한 사람과 갈등이 있다면 해결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이 사람이 나에게 주는 게 기스인지 폐차해야 하는 사고인지만 생각하면 된다.

스크래치 좀 났다고 차를 바꿀 수 없지만 계속 같은 자리에 반복되면 꼴배기 싫기 마련이다.


물론 타고 다니는데 지장은 없지만 그 기스는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에는 유독 크게 보인다. 그래서 볼 때마다 기분이 나쁠 수도 있고, 신경이 안 쓰일 수도 있다. 이 기스가 상처가 될 수도 있고, 그냥 흉터가 될 수 도 있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차를 바꿔도 새 차에도 기스가 나길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차를 계속 안 바꿀 수도 없다.


지금 내 마음의 스크래치가 단순 생활 기스일까? 아니면 엔진룸을 파고드는 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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