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x 프리다이빙

숨을 참는 순간 보이는 건 오직 나

by 제이티


무턱대고 프리다이빙을 배우겠다고 내려온 지 일주일이 되어간다. 수영 좀 했으니까 뭐 비슷하겠지 하고 호기롭게 도전했는데, 첫날에는 1미터커녕 바다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생각보다 이퀄라이징(압력 평형)이 쉽지 않았다. 귀는 아프고 넘실대는 파도와 너울은 아 이곳이 수영장이 아니구나를 새삼 느끼게 해 주었고, 바닷속은 고요했지만 수면 위는 거칠었다. 물고기들이 대단하게 느껴진 것 처음이다. 이제 회를 먹을 때도 심심한 애도를 표하면서 한 점씩 음미해야겠다. 바다에서 3시간도 놀 수 있다고 호언을 하고 온갖 허세를 부렸지만, 겸손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자연은 경건하고 위대했다. 그리고 우리 강사님의 여유로운 눈빛과 높낮이 없는 목소리 톤이 대단하고 위대해 보였다.


다음날, 이퀄라이징이 조금씩 뚫리면서 바닷속에 점점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 이제 조금 되는구나 싶었지만 어김없이 10m 이상 깊어질 때 생각처럼 귀가 뚫리지 않았다. 몇 초만 더 참으면 충분히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거기서 갑자기 왜 두려움이 드는지 모르겠다. 귀는 막히고 숨을 밀어 넣어보아도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조금씩 물감이 생기고, 바다의 짠내음과 얼굴에 남은 따가운 소금기마저 좋아지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왔을 때는 단지 바닷속 물고기와 산호들을 구경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스쿠버 다이빙과 다르게 바닷속을 구경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수영장에서는 2분 50초가량 숨을 참았지만, 실제 바다에 나가면 1분도 참기가 쉽지가 않다. 강사님이 계속해서 외치는 릴랙스 하라는 외침도 파도와 너울에 묻혀버린다. 단순히 레저로 생각하고 배우러 왔는데 생각과 많이 달랐다.


프리다이빙에서 제일 중요한 건 “긴장완화” 다시 말해 온 몸의 긴장을 푸는 것이다. 들숨과 날숨을 부드럽게 뱉어주면서 온 몸의 힘을 쭉 뺀 다음 산소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물속을 들어가야 한다. 물고기처럼 인어처럼 우아하고 부드럽게 유영하고 싶지만, 역시 보이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말처럼 긴장완화는 쉽지가 않다. 긴장완화는 모든 생각을 버리고 하나에만 자신의 숨소리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하면 코끼리가 생각나는 것처럼 ‘하나에 집중하세요.’ ‘생각을 비우세요.’라는 큐사인은 오히려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생각에 갇혀 또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우리는 아니 나는 잡념이 많고, 많은 신경을 쓰고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프리다이빙의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생각을 비우지 않고 집중하지 않으면 애초에 물속에 들어갈 수 도 없다. 사실 두려움과 걱정은 일어나지 않을 불확실한 확률에 대한 막연한 일기예보 같은 것이 아닌가?


긴장완화를 하고 최종 호흡을 들어마신 후 바닷속에 압력을 느끼면서 들어가는 기분은 묘하고 새롭다. 살면서 평소에는 절대 경험해보지 못한 나의 허접한 글솜씨로는 도저히 설명할 순 없는 느낌이 든다. 이른바 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다이버들만 느끼고 말할 수 있는 기분이 있다. 수영장이나 욕조에서 머리를 푹 집어넣고 숨을 참는 것과 다르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숨을 참으면서 줄을 보면서 내려가면 지금 여기가 바닷속인지 우주인지 모르는 감정이 든다. 고작 10여 미터 내려갔는데, 바다 색이 푸른색에서 에메랄드 색으로 변하고, 온도도 슈트에 한기가 느껴질 정도다. 물 밖은 너울이 치고 바람이 불어오는데 물속은 그렇게 고요할 수가 있을까? 뻐끔거리는 소리와 물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바닥을 찍었다면 다시 힘차게 수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 고래처럼 우리는 포유류니까 숨을 쉬러 말이다. 회복 호흡을 내뱉고 나면, 몸안의 이산화탄소를 뱉어내고 새로운 산소가 혈관을 타고 심장에 들어간 그 짜릿한 느낌이 든다. 마치 땀을 흠뻑 흘린 후에 마시는 맥주 한 잔처럼 내 혈류에 산소가 들어감을 느낄 수 있다. 고작 1분가량인데,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든 건 기분 탓인지 아니면 실제로 효과인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까지 내 숨소리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경험이 있을까? 돈이 없는 것보다 먹을 게 없는 것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게 산소인데, 너무도 소중하지만 당연해서 느끼지 못했다. 당장 없으면 1분도 살기 힘든데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호흡이 생존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기능이 있다. 숨을 멈추면 보이지 않은 것이 보인다. 조던이 자유투를 던질 때 호나우두가 프리킥을 할 때 잠시 호흡을 멈추고 눈을 감는 것을 볼 수 있다. 들숨이 들어가고 폐에서 날숨이 나올 때 그 찰나의 순간에 생각이 멈춘다. 바로 끊임없이 떠오르는 잡념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멈추고 지금이 보이기 시작한다. 칙센티 미하이에 따르면 “몰입”이라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몇 시인지 구분이 되지 않고 나와 환경이 구분이 사라진다. 도교에서 말하는 ‘물아일체’ 나와 만물이 하나가 되는 감정 말이다. 고도의 정신집중의 행위로 무엇을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니도 남에게 보여주는 행동도 아니기에 그 자체로 만족감과 쾌락을 느낀다.


즉각적인 보상이 없어도 그 자체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몰입은 주로 예술가나 스포츠 선수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남들이 봤을 때 누가 알아준다고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가 있느냐 혹은 몸을 상해가면서 그렇게 혹사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묻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몰입의 쾌감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다.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몰입을 느끼기에 방해하는 현란한 네온사인이 너무나 많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상이나 성과가 없는 행동은 “시간 낭비”로 느껴지거나 한심한 “짓”에 불과하다.


누가 알아봐 줘야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건 외부의 보상을 바라고 하는 행동이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인생이 그렇게만 흐른다면, 굳이 내일이 올 필요도 없을듯하다. 어제와 비슷한 내일이기 때문이다. 비싼 물건을 샀을 때 혹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감은 순간에 불과하다. 특히 나같이 서른 중반에 흘러가고 있으면, 뭘 더 산다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통장에 돈이 더 들어왔을 때도 생각보다 기쁘지 않았다. 기쁘긴 했으나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허하고 허무했다고 할까? 물질로는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숨을 참고 있을 때 온전히 보이는 건 나다. 그렇게 대단하지도 멋있지도 않지만, 그냥 그 자체로 감사하다.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 나머지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는 ‘무’의 상태를 느낄 수 있다. 더 깊은 수심에 도달하지 못했었어도, 물속에서 더 남들보다 더 오래 참지 못했지만 나에게 1분이 남들의 5분과 비할바가 아니고 나의 폼이 어떻든 간에 내가 느낀 고요함은 인스타 피드에서 엿보는 현란한 프로의 몸짓보다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숨을 참았을 때 느끼게 되는 황홀한 경험이다. 살려면 숨을 쉬어야 하는데 숨을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다니 이순신 장군님은 이점을 미리 아셨나 보다.


여전히 바다는 무섭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하다. 거친 파도와 조류는 때론 멀미와 막연한 긴장감을 주지만, 파도 소리와 숨소리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준다. 거친 파도 아래 잔잔한 물속의 고요함이라 이것이 프리다이빙의 매력일까? 아니면 세상은 시끄러워도 복잡하지만 내면은 여유와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일까?



프리다이빙

무엇을 꼭 해야만 나의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세상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내뱉는 것 만으로 존재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이게 쪼렙인 내가 겨우 일주일하고 느낀 점이다.


다음에도 바다가 허락하고 내 실력이 더 쌓이면 더 다양한 감정과 지금 미처 보지 못한 점을 느껴보고 싶다.






끝으로 너울이 치는 바다에서 저를 살리신 #제주바당 슬기 강사님 감사드립니다.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