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살다 갈까? 살러 갈까?

by 제이티

내일이면 벌써 떠나는 날이다. 하루하루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돌아보면 너무 짧게만 느껴지는 2주다. 처음에 혼자 무작정 제주를 온다고 생각했을 때는 생각 좀 비우고, 머리 좀 식힐 겸 왔는데, 일주일이 지나가다 보니, 아직 제주를 느끼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것 같아 시원섭섭하다.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다음에는 한 달을 계획하고 와야지 하는 마음이 크다.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던 나는 혼자서 여행을 떠나 본 적도 없고, 프로 여행객처럼 멋진 사진을 담을 재주나 맛집도 잘 모른다. 더군다나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의외의 mbti ENTP의 성향(?)을 가진 나는 굳이 인스타 피드 속의 화려한 뷰가 그다지 부럽지도 않았다. 원래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 법이라 사실 떠난 적이 거의 없었던 나는 당연히 공감하고 부러워할 질투의 취향마저도 없었던 것 같다.


제주 와서 했던 짓은 뛰고, 다이빙하고, 책 읽기, 그리고 글쓰기 정확히 4개만 한 것 같다. 달리고 책 읽고 글 쓰는 것은 원래 하는 것이고 거기에 다이빙만 추가된 것 같다. 명색이 관광지인데 이곳저곳 가봐야 될 것 같은데, 혼자여서 그런지 아니면 다이빙의 피로 때문이지 굳이 가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번 여행은 좋았다. 그저 좋았다. 비바람 불고 태풍이 휘몰아칠 때는 조용히 카페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달릴 때는 넘실대는 파도와 반짝이는 연산호의 초록색 빛깔이 취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프리다이빙 포인트로 향하는 보트 위의 바람은 모든 덜 중요한 것들을 밀어내는 데 충분했다.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게 나에게는 큰 치유가 되는 것 같다. 사주에 물의 기운이 없어서 인지, 수평선 넘어 색종이 두 장 같은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선’을 보고 있으면 멀미도 사라지고, 잡념도 사라진다.


그리고 줄을 잡고 바닷속으로 들어갈 때 귓가에 맴도는 물방울 소리와 숨을 참을 때 잠시나마 느끼는 절대적인 평온함. 잊을 수가 없다. 신기하고 오묘한 경험이다. 프리다이빙은 레저나 스포츠보다는 내가 볼 때는 요가나 명상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인터스텔라의 우주 속으로 빨려드려 가는 느낌과 두려움과 긴장이 가득한 채 배에서 뛰어내리지만 이내 들숨과 날숨의 반복으로 긴장을 풀어헤친다. 특히 날숨에 집중할수록 파도와 너울이 치는 바다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아직은 숨 찾기와 이퀄라이징에 부담이 크지만,

어느덧 20m가량 잠수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면서도 더 욕심이 난다.


다이빙이 끝나면 별로 한 것도 없는 거 같은데 상상 이상의 피로감이 몰려온다. 누워있어도 침대가 파도처럼 느껴지고, 멍하고 눈은 잠기고 입맛은 없어진다. 자연스럽게 술이나 카페인은 멀리하게 되고 배부르거나 기름진 음식이 생각나지 않는다. 실제로 프리다이버 중에 채식주의자가 많다고 한다. 육식 파였던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조금이나마 속을 비워야 산소 소비가 덜 되므로 몸에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저절로 입맛이 변하는 듯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꿀잠을 선사한다. 사실 이 점이 가장 좋다. 제주 와서 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그렇게 잠을 시도 때도 없이 잤던 것 같다. 오전 다이빙 후 낮잠 오후 다이빙 후 또 잠. 이렇게 살다 보니 지금이 몇 시인지 며칠인지 감이 오지도 않는다.


무슨 전지훈련을 오는 거 마냥 나의 이상한 여행은 새벽에 뛰고 다이빙하고 먹고 잠만 잤다. 하긴 이렇게 잠을 자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하루에 20시간 이상자는 새끼 고양이처럼 푹 자기만 했다.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굳이 돈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사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이 사라진다. 자연이 주는 여유와 느긋함이 나를 변하게 하는 걸까?


제주에 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지만 살아보니 더 아련하게 쏟고 쳐 오른다. 물론 관광과 이민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여행지가 일상이 되면 푸른 바다가 주는 감동을 못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저녁 7시면 닿는 상점에 불편함을 느끼고, 만만치 않은 집값과 물가에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결정적으로 여기가 싫어서 떠난 곳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이른바 ‘도망친 곳에 낙원 없다.’라는 진리의 말씀도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내가 겪어서 나온 말이 아니고, 누군가의 경험에서 온 느낀 점일 뿐이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관점과 평점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여행을 온 나는 제주 이곳이 아름답게만 보일 것이다. 나는 지금 민낯과 생존 경쟁의 치열함이 가득한 세계를 못 보는 게 아니라 안 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돈을 쓰러 왔을 때와 돈을 벌러 왔을 때의 차이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외국인 관광객과 외국인 노동자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어디든 나름의 고민과 애환이 있듯 여기 아름다운 제주의 뒤편에도 말 못 하고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먹고사는 게 그렇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처럼..


떠나는 날이 다가오니 더 고민이 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정신없다 보면, 한 여름의 꿈처럼 그렇게 잊힐는지 모르겠으나, 숨 막히는 아파트 숲과 입만 열면 부동산 얘기만 하는 그곳이 이제 싫다. 어릴 때는 반짝이고 화려한 건물이 가득한 도시에서 살고 싶어서, 그렇게 공부하고 상경했는데 말이다.


여기 살면 원 없이 뛰고, 다이빙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이거 4개면 될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땡볕에 원 없이 뛰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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